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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Apr 01. 2024

쓰기 일기

성실하고 외로운 시인의 기록 


 작년 가을부터 꽤 열심히 기록을 하는 중이다. 시작은 간단한 메모부터였던 것 같다. 때로는 감정을 기록하는 앱에 하루의 짧은 감상을 적곤 했는데 어느 날 앱 업데이트를 하며 오류가 나서 다 날아가 버렸다. 무료도 아니고 유료로 쓰던 앱이었는데. 낙심하여 기록 따위 관둘까 하다가 그래봐야 나만 손해겠다 싶어 손으로 다이어리에 짧은 기록과 메모를 이어가고 브런치에 거의 매일 기록을 남기고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시인의 일기가 궁금해졌다. 


  <쓰기 일기>에는 서윤후 시인의 2023년부터 2017년의 일기가 때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내용의 연결성에 따라 편집되어 실려 있다. 시인의 일기라서일까 시를 쓰는 일, 가르치는 일,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주된 내용으로 나온다. 한 도서관에서 무례한 질문을 연거푸 던지는 수강생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감정이 들끓을 정도로 분개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집어 바닥으로 집어던지고도 모자라 발로 마구 짓밟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극악무도한 무례함을 어떻게 견뎠을까. 도서관 사서가 대신 사과할 일이 아니라 직접 사과를 받아야 마땅한 일이었겠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촘촘한 일기와 글 쓰는 마음을 마주하면서 이 성실하고 외로운 시인의 마음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었다. 저자인 시인은 직장인이며 아마도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회사를 다니고, 시를 쓰고, 강의를 하고, 삶에 충실한(인테리어와 필름 카메라 촬영과 요리에 재능 있는 시인) 모습이 그려졌다. 


 궁금해져서 시인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았다. 스스로의, 동생의, 고양이의 생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인스타그램에 취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오늘도 시인은 고료 3만 원임을 에둘러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비밀 코드처럼 숨겨두고 청탁하는 가난한 계간지, 무례하기로는 전국 1등을 해내고 말리라 작심한 수강생, 하루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고양이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AI가 쓴 시를 구별해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으며 그만의 시를 쓰고 있을 것 같다. 시를 쓴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참 귀하다. 내게는 그저 아득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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