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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Apr 23. 2024

상자 속 우주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우주가 상자 속에 있다니? 더구나 이 책은 sf 소설이 아니라 영국의 우주론 학자 앤드루 폰첸이 저자다. 앤드루 폰첸의 주된 연구분야가 우주론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나자 비로소 궁금증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다. 우주 시뮬레이션이란 컴퓨터를 이용하여 은하와 블랙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등 우주 전체를 재현하여 우주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발히 연구 중인 학문이다. 그러나 연구의 역사가 길지는 않아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연구의 발전 가능성은 더 무한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작부터 바로 우주 시뮬레이션 연구에 대해 들어가면 독자들이 준비운동도 하지 못한 채 바로 물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릴 수 있으니 친절하게 독자가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리가 거의 매일 뉴스에서 접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는 날씨에 대한 이야기다. 기상 캐스터가 내일, 그리고 이번 주 날씨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해 주는 것에 대해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내일과 이번 주 날씨를 미리 아는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렇게 매일의 날씨를 예측할 때 지구의 대기 상태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여 다가올 날씨를 예견하고, 그 정보를 받아 사람들은 일정에 참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있다. 일기 예보의 적중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을 보면 마치 과학계의 점쟁이를 보는 것 같을지도 모른다. 


 이런 시뮬레이션의 작동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기상학자가 하는 일이 천문학자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상학이라는 단어 meteorology가 meteor(유성)에서 파생된 단어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대에서 혜성과 하늘을 덮은 구름은 높은 하늘을 연구하는 사람의 연구 대상이었고 기상학과 천문학은 불가분의 관계였던 것이다. 우리가 매일 익숙하게 듣는 일기예보는 사실상 가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100% 적중은 불가능한 영역에 가깝고 이를 90%에 이르도록 적중시킨 것이 현대 과학의 최고 업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앤드루 폰첸이 책의 말미에서 내세운 하나의 가설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던 저자는 영화 속 이야기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는 진짜 인간인가, 시뮬레이션 속의 가상 인간인가. 황당하다는 이유로 가설을 부정할 수는 없으며, 따지고 보면 물리학이야말로 황당함으로 가득 찬 과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시간은 위치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입자는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우주는 풍선처럼 팽창하고 있다는 현대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정말 황당한 가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 넷플리스 시리즈 <삼체>를 흥미롭게 보았다. 중국에서 만든 시리즈도 같이 보고 있고, 시리즈를 다 보고 나면 원작도 읽어 볼 생각이다. 인류가 가설을 세우고, 미지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류의 가능성은 아직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상세계에 존재하고 있건 아니건, 우주에 우리와 같은, 혹은 엄청나게 뛰어난 문명이 존재하건 아니건 현재로서는 입증할 방법이 없다. 다만, 그것을 시뮬레이션하고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을 멈추지 않는 한 무한한 인내를 지닌다면 끝내 밝혀내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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