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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Nov 09. 2024

나는 우울증 생존자입니다


여기도 생존자가 있다. 바로, 나! 매해 생일을 생존 자축 내지는 응원, 잘 버티고 있다는 감정으로 맞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 생존자입니다. 이 문장은 여러 가지 다른 단어로도 완성될 수 있는데 우울증과 생존이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면 아마 아직도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와도 같은 거라던데, 감기로 죽은 사람이 있긴 한가? 그런데 왜 우울증과 생존을 연결 짓나? 이런 의구심을 가진 사람일 것 같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는 것은 우울증을 가벼이 여겨서 쓰는 표현이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증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중증인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완화하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확실히 감기와 같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감기는 독하대, 이번 감기는 진짜 잘 안 낫는대. 이런 말이 매해 반복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 감기라고 통칭되는 감기 바이러스가 수없이 진화하고 다르게 매번 사람들에게 침투하여 증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우울증 또한 그러하다. 감기가 몸의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그 증상을 심화시키듯이 우울증 역시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야금야금 마음의 건강을 갉아먹는다. 


 한차례 우울증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나서 이제 살았다 싶어 좀 살만한 시절을 보내나 하고 희망을 품고 방심하는 사이 환절기에 감기가 찾아오듯 계절성으로 우울증이 반복적으로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동일한 아픔을 남기기도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딱 한 번 우울한 시기가 있었는데 상담을 받거나 혹은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약을 처방받아서 먹고, 의사의 지시대로 잘 치료했더니 두 번 다시 내 삶에 우울증 같은 건 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건 마치 우연한 검진에서 상당히 초기의 암을 발견해서 간단한 약물 치료 내지는 시술 정도로 완치 판정을 받고 완치로 인정하는 5년이란 시간을 지나 10년이 지나도록 암이 전이되지 않아서 그 후로 아무 걱정 없이 자연노화하는 연령에 이르도록 건강하게(다른 질병이 설혹 있더라도 암과는 무관한) 지냈다는 것만큼이나 희박한 확률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의 표지에 우울증으로 삶의 고통에 절규하며 몸부림치듯 살아낸, 누구나 아는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바로 처칠, 아이작 뉴턴, 라흐마니노프, 뭉크, 베토벤, 톨스토이, 링컨이다.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이렇게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도 우울증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며 살았구나 하는 것을 훌륭한 방패로 위안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지겹도록 반복되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우울증은 정신력이나 의지가 나약한 사람이 걸리는 질환이 아니라는 것. 여전히 스스로를 탓하며 내가 뭔가 잘못해서, 또는 문제가 있어서 우울증이라는 것에 걸렸다고 자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책을 걷어내고 스스로를 돌보고 치료하기 위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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