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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윤슬 Dec 11. 2023

드라마 안 보지만 재미있게 삽니다

드라마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내향인 입니다만.

내향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소심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내향인의 모습은 내성적인 사람의 모습일 뿐이지 모든 내향인이 소극적이고 말을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향적인 사람은 타고난 관심사가 내면세계에 있을 뿐이다. 외향인이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면 내향인은 내면세계에 집중하면서 고독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곤 한다


'우리 얼굴 한번 봐야지!'

20대에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얼굴 한번 보자는 약속에 부담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거절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사람을 만나곤 했다. 어설픈 관계에 놓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기껏 아껴두었던 에너지를 다 쓰고 온 느낌이었다


'나 지금 뭐 하고 온 거지?'

밥 먹고 카페에 다녀온 동안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눈 걸까. 비슷하게 살아가던 시절을 지나 각자의 의견이 생기고 삶이 달라지기 시작하니 공통점보다 서로의 의견이 다름을 존중해야 하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꾸준히 만났더라면 다르겠지만 가끔 만나는 관계는 점점 더 내 에너지를 갉아먹었는듯한 기분이었다


한동안 어색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할 말이 없는데 굳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헬스장에 출석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잘 지내?' 어쩌다 보니 중학교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았다. 밥을 먹고 카페에 갔는데 여전히 큰 의미 없는 이야기들만 오갈 뿐이다. '조심히 들어가!'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기본 에너지가 낮은 상태의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에너지가 생성되기보다 더 소모되는 사람임을 한번 더 느꼈던 만남. 앞으로는 만날지 말지 고민이 되는 약속은 잡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경험이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
시작점은 어디일까.


'나는 어떤 계기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된 걸까?'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걸 잘했던 것은 아니다. 혼자 있고 싶어도 사회의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기에.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했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찾아보기 드물었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 제주도에서였다.


24살, 자고 일어나면 바다가 보이는 삶을 꿈꾸었고 나는 결국 제주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소풍을 떠났던 날이었다. 오름으로 가는 길 커피를 사기 위해 금능의 한 카페로 향했다. 이들은 매우 익숙해 보이던 곳, 육지에서 볼 수 없었던 고요함과 사장님의 묵뚝뚝함이 더욱 낯설게만 느껴졌지만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곶에서 처음 경험해 보는 고요함이 낯설어 주위를 여러 번 둘러보곤 했다

아무래도 예민한 안테나를 가지고 있던 나는, 처음 경험해 보는 고요한 분위기를 탐색하느라 뾰족한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고요한 공간, 바다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 곶 만의 평온함이 느껴졌다. 도시에서는 경험해 볼 수 없었던 분위기에 낯설었지만 불필요한 친절이 없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그곶에서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 곶에서의 시간은 자유롭고 고요했다

각자 좋아하는 커피와 빵을 곁에 두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도 사장님은 전혀 눈치를 주지 않으셨다. 온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 커피를 마시며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그 곶. 육지에서 카페는 쉴 틈 없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었다면 그 곶에서의 시간은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우리 그곶 갈까?'

오전 청소가 끝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곶을 향했다



함께 지냈던 친구와 바다를 따라 키가 큰 야자나무 숲을 지나 그 곶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웃음이 가득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우리는 오전 청소를 마치면 그곶으로 향하곤 했다. '우와아 진짜 이쁘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산책을 하는 일상의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저기 서봐래이, 예뽀다' 표현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의 감탄사를 들으며 함께 걸었던 길. 그 곶으로 떠나는 산책은 늘 다정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커피를 주문하고 각자 테이블에 앉아 서로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책을 읽고 일기를 쓰기도 하고, 그 곶 에서 보내는 각자의 시간이 자유로웠지만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공간의 온도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곶에서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그곶에서의 시간이 있었기에 혼자만의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고 타인의 시간을 배려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그 곶, 사장님들의 고요함을 닮았던 공간에서의 시간을 여전히 떠올리곤 한다


고요한 공간에서 온전히 혼자가 될 수 있었던 시간,

그 곶에서의 시간은 여전히 묵묵한 다정함으로 남아 있다.


제주의 그 곶에서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난 홀로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배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던 혼자 만의 시간의 소중함을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고,

나는 그 배움을 통해 내향인으로서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다.


내향인은,
에너지를 내면에서 얻을 뿐이랍니다.


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웠던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주말이 되면 조용한 공간을 찾아 떠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과 노트 한 권을 들고 카페로 향한다. 조용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가 좋아하는 문장을 발견하면 그 문장을 일기 장에 옮겨 적고 내 생각을 따라 적기 시작한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게 행복이냐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작은 행복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퇴근 후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에 크게 행복을 느낀다

성공한 내향인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조용한 공간에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내향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건강과도 연결된다. 선천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행복을 추구하도록 설계된 사람들이다. 외향인 기준의 행복을 찾아다니면 오히려 내향인은 더 지치고 만다. 자연스레 내향인은 본질과 핵심만을 추구하고 군더더기를 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대화 스타일에도 묻어난다. 그렇다고 재미를 모르는 게 아니다. 취향이 다를 뿐이다

- <내향인이지만 성공은 하고 싶어>


나는 내향인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내향인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내향적인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은 다르기에. 에너지를 내부에서 얻는 사람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회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내향인들의 잔잔한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릴 수 있도록. 나 역시 내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당당해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에.


누군가에게는 따분해 보이는 내향인의 혼자 만의 시간은,

내향인에게는 홀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럼 무슨 재미로 사세요?


"ㅇㅇ 드라마 안 보세요?"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듣는 질문들이다


사실 나는 연예인도 잘 모르고, 드라마도 잘 보지 않는 사람이다

요즘 핫한 무언가를 잘 모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대화를 하다가 유명한 무언가를 모르는 나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무슨 재미로 사세요?' 퇴근하고 나서 아니면 쉬는 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냐는 질문들을 들을 때면 조금 당황스럽긴 하다. 굳이 드라마를 피하거나 안 보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이 달라서 다른 시간을 보내는 것뿐. 조금 다른 성향을 설명하려니 에너지가 쏙 빨려 머쓱하게 웃어 보이고 만다


퇴근을 하면 혼자만의 시간으로 도망을 치곤 한다

이어폰을 꽂고 운동을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책을 읽는다. 소음에 예민해서일까, 티비를 키는 일보다 고요함 속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좋은듯하다



여전히 혼자 떠나는 여행,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가족들이 서운해 할 수 있겠지만 가끔은 가족들과의 시간도 버겁게 느껴지는 나는, 철저히 내향인이다. 숨이 막혀버릴 듯한 답답함과 예민함이 찾아올 때면 스케줄표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그럼 한 달 동안 홀로 보낸 시간이 부족했기에 찾아오는 현상들임을 이제는 안다. '좋아! 그럼 혼자 시간을 보내보자' 혼자만의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사람, 나는 혼자 만의 시간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찐 내향인이었던 것이다


내가 내향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하면서부터 삶이 가벼워졌다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내가 행복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오늘은 글쓰기를 하고 책을 읽고 홀로 운동을 다녀올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해 보이는 일상이, 나에게는 에너지를 가득 채우는 소중한 일상이기에.


여전히 외향적인 사람들이 빛이 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채워 나가는 고요한 내향인들이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을 알고 각자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타인의 시선에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혼자 만의 시간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내향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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