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늦은 2024년을 마무리하며.
글쓰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나에게 글을 쓸 힘이 사라졌던 날들.
'오늘은 정말 무언가를 쓸 테야!'라고 마음먹었지만 점심을 먹고 왜 이렇게 몸이 무겁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긴 연휴, 하지만 나에게는 왜 이리 균형이 맞지 않는 연휴인지 모르겠다. 2024년이 어떻게 흘러갔던 걸까. 정말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 없기 때문에 더 잘 흘러가는 방법을 경험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뼈저리게 느꼈던 한 해였다
작년 4월, 5년 차 직장인이 되었던 상태였지만 갑작스러운 퇴사보다는 미루고 미루던 퇴사를 결정했던 시기였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삶의 불균형을 증명하듯 몸은 바로 탈이 났고, 수술 후 금방 회복을 할 줄 알았던 몸은 두 달이 지나서야 겨우 내 몸이 다시 돌아왔구나 를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몸이 조금 회복되고 나니 또다시 일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삶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는, 온전히 내가 내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기쁘기도 막막하기도 했던 시점이기도 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마음
9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다시 교육생 신분으로. 34살의 교육생 이라니, 예전의 나는 30살쯤의 나는 단단한 어른이 되어야 하며 무조건 안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30살의 중반쯤에 머물러 보니 결코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수많은 불안 속에서 어떻게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배워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한 해가 아니었을까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 각오는 했지만 더 많은 노력들이 필요했다
5년 차 직장인에서 새로운 곳에서 교육생 신분으로 모든 게 다 낯설어 떨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럼에도 무언가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는 동기들이 있었고, 직급으로 불리던 전 회사와 달리 '윤슬님'이라고 이름을 불리는 상황이 꽤 즐거웠던 교육 기간이었다
물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모든 일이 쉽지 않다는 것, 어쩌면 내가 또 원하는 가치를 따라 내가 또다시 교육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번 더 배우게 되었던 2024년. 뒤늦은 도전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어디에서든 또 잘해 나갈 수 있다는 마을 배우기도 했던 한 해.
그렇게 5개월이 지나 가는데 어찌 5년을 살아 낸 기분이다.
꽤 뿌듯하고 단단해지기도 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을 배우기도 했던 날들.
내 삶은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글쓰기를 하지 못했던 날들의 마음
글쓰기를 자꾸만 미뤘던 이유는, 체력적으로 마음적으로 자주 소진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왕복 5시간의 출퇴근 시간과 매주 주말마다 해야 하는 과제와 일들, 다시 반복되는 하루하루.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흔들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일상이 안정되지 않으니 글쓰기를 할 마음도, 매일 보는 업무용 노트북을 덮고 내 노트북을 열어 글쓰기를 이어갈 힘이 생기지 않았다. 유독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소진되는 나였기 때문일까.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만나면서 감정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글쓰기를 통해 내 마음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갔으면 하는지의 방향을 찾는 나에게 글쓰기의 부재는 꽤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글쓰기를 이어 나가지 않으니 SNS을 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 읽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저 쉬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꾸준한 글쓰기가 사라지자 글쓰기 근육이라도 빠진 걸까.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운동의 재미를 금방이라도 잃듯 글쓰기의 근육도 잠시 빠졌던 게 아닐까.
2024년에는 글쓰기를 이어오지 못했던 날들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듯하다
2025년에는, 조금 더 글쓰기를 통해 글쓰기 근육을 더 단단하게 키워야겠다.
삶이 깊어질수록
깊어지는 사랑의 의미
삶이 깊어질수록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이 커지는 게 아닐까.
예전에는 다양한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처럼 몰려오곤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해가 안 가' 그 불편한 마음들이 어쩌면 사람들과 불편함이 되곤 했고, 그런 마음들이 쑥쑥 자라나 어색한 사이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몇 년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말이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아무것도 없었다.
나 역시 큰 아픔은 아니었지만 수술을 경험하고 나서야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결국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그 마음이 조금은 고요해졌다. 서운함이라고 느꼈던 감정들은 누군가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누군가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느꼈던 마음들도 어쩌면 그게 그 사람이 살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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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90세를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였다.
매년 모였지만 유독 내 마음이 돈독해졌음을 느꼈다.
내 건강 상태를 매번 물어 주던 사람들, 어쩌면 그 마음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2024년이 아니었을까. '가족' 그저 어떻게 연결이 된 우리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낌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아닐까.
삶이 깊어질수록,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소소한 사랑의 의미를 배워 가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간 통영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만났다.
겨울이었지만 봄을 만났던 날,
세상에 이토록 많은 아름다움을 계절마다 느끼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피어오른다.
매일매일 윤슬이 다르듯,
내 삶에서 반짝이는 윤슬도 다르겠지만 그 윤슬을 바라보면서 행복함을 가득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2025년 1월,
1월의 끝자락에서 2024년을 다시금 돌아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힘들었던 시간은 언제였는지,
내가 어떤 날들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살아왔었는지.
2024년은,
새로운 시작을 하기가 늘 두려워 머뭇 거렸던 시간을 뒤로하고 알을 깨고 나왔던 한 해,
앞으로는 나를 더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건강이 최고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줬던 한 해,
내 사람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알게 해 준 고마운 한 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한 해,
내가 더 빛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다는 마음을 더 키워준 한 해,
매일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속에서 별 다를게 없이 흘러갔던 2024년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통영에서 혼자 돌아오던 날
할머니는 내 손에 용돈을 쥐어 주셨지.
오후 근무가 있던 나는,
월요일 새벽에 일어나 홀로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할머니, 저 먼저 가볼게요! 건강히 지내고 계셔요!"
할머니는 어딘가에서 주섬주섬 만원 짜리를 꺼내 나에게 건네 셨다.
"아니에요! 할머니 저 진짜 괜찮아요!"
"아잇! 그러는 게 아니다!"
가면서 맛있는 걸 사 먹으라며 내 손에 꼭 쥐어 주신 3만 원.
혼자 떠나는 손녀에게 건네는 할머니의 사랑,
어렸을 때는 몰랐던 그 마음들을 조금씩 알 것만 같았던 날, 통영의 마지막 여행.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할머니가 내년에도 건강하셔서 함께 통영에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삶은 또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흘러갔던 2024년,
그리고 어떤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더 깊게 고민하게 되는 2025년의 시작.
어떤 고민이 조금 해결된 듯하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그 어떤 마음들을 안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
2025년은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려 하고, 너무 애쓰지 않으려고 한다.
온전히 나를 믿고,
한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유연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루의 뿌듯함을 채워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2025 년아, 유연하고 단단하게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