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만에 퇴사를 결정하게 된 진짜 이유
사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술을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던 내내 스스로를 다그쳤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다들 힘든데 나만 힘든 게 아니야'라고.
하지만 재발 소식을 듣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이대로는 계속 살아야 한다면,
건강과 마음까지 모두 잃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꽃피는 4월 나를 지키기 위해 1년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4월, 하늘도 파랗고 곳곳에 핀 꽃이 어찌나 아름다운 한 달이었는지 모른다
일을 하는 날이면 날씨가 너무 좋아서 매일 나가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작년 한 해 아프고 힘든 일이 많았기에 그 시간들을 잘 이겨냈으니 모두 잘 흘러 가리라 믿었다.
작년 이맘때쯤, 5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고 갑작스러운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을 하고 두 달쯤 쉬었던 9월,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서울로 출퇴근은 왕복 5시간이 걸렸고, 긴장 또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며,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같은 길을 걸어 나간다는 일이 꽤 즐겁고 끈끈함을 느꼈다
영업 직군이다 보니 실적에 대한 압박감은 늘 가지고 살았지만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작년 회사를 퇴사하면서 작은 목표를 세워두기도 했었다
'일 안 하는 팀장 보다 내가 더 돈을 많이 벌 거야!'라고 다짐하고 나오기도 했다.
인정받지 못했던 업무, 늘어나는 업무량, 가장 적은 급여.
모든 게 부당하다고 느꼈기에 5년간의 시간을 정리했고,
내가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게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했다.
다만, 매달 돌아오는 월급날 꽤 높은 급여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싱숭생숭한 날이 많았다.
'이 일을 내가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전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욕구가 이곳에서는 월급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회사 자체 평가 기간이었던 5개월은,
매일매일 일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부족한 실적을 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동기들보다 조금 느린 듯 하지만 월말이 되어 결과를 돌아보면 꽤 높은 실적을 유지하며 마무리를 하곤 했다.
3월, 평가가 끝나고 내 평가 결과는 좋지 못했다.
회사의 평가 기준을 들었지만, 백 프로 모두에게 적용되는 평가 기준이 아니었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달려온 만큼 좋은 평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평가는 객관적이지 못했고 마음속에는 물음표만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던 걸까?
4월, 너무 빛나는 날씨와 다르게 싱숭생숭했던 마음을 안고 병원을 찾은 날이었다.
"그동안 배가 안 아프셨어요?"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셨나요?"
초음파를 봐주시던 선생님의 의아한 표정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이 말씀해 주실 거예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
늘 웃는 얼굴로 맞이해 주시는 선생님을 보면 마음이 좋아진다
"네네, 선생님. 근데 저 근종이 다시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선생님도 당황,
나도 당황했던 순간.
작년 수술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는데,
수술을 한번 해봤다고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까. 애써 덤덤한척 한 걸까.
"1년 만에 이렇게 재발할 수 있나요?"
"그런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한데.."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온전히 쉬지 못하고 새로운 일을 한 탓일까, 수면 부족이 문제일까, 음식이 문제일까, 생활 패턴이 문제였을까. 수술을 하고 회복을 위해서 나름대로 몸에 좋다는 걸 더 많이 하려고 노력했는데 역시 모든 병의 원인은 스트레스로부터 비롯되는 걸까.
수술을 하고 매일매일 긴장 속에서 살았던 탓일까.
타인보다 유독 예민한 안테나를 가지고 살아간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몰랐다. 원래 예정이었던 1월 검사에 일을 빼는 게 눈치가 보인다고 미뤘던 탓일까, 그동안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살아온 탓일까. 1년 만에 다시금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컴컴해져 병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재발 소식을 듣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길일까?'
여전히 회사에서는 실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는 실적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료들끼리 하는 이야기도 어느새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해졌다. 매일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 내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의 시간 속에서 또 다른 높은 파도를 만나 흔들거리는 중이었나 보다
흔들리고 있었지만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만 같아
스스로 포기하지 못하고 마음은 끙끙 앓고 있던 걸까.
병원에 다녀오고 난 후에야 천천히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나를 돌보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구나
내 몸은 제발 살려 달라고 다시 한번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구나.
1년 만에 다시 한번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작년 4월 퇴사를 하고 다시 1년 만에 백수가 되었다.
퇴사를 완벽하게 결정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숨을 쉬기 시작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모르게 나만 뒤처져 가는 것 같아 불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에게 재발 소식을 전하며,
'엄마 나 아무래도 다른 일을 해야 할거 같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 재발 소식에 다시 한번 놀란 엄마와 나를 위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마음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져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엄마가 살아온 30대와 내가 살아가고 있는 30대가 완전히 다르다 보니,
엄마는 어떤 마음일지 상상이 어렵지만 아마 서로가 서로를 백 프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 역시 30대 중반의 나를 깊게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30대가 되어 보니 20대의 시간보다 더 빠르게 흘러감을 느끼곤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이들이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한 직장에서 승진을 하는 듯한데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여전히 불안함이 커지곤 하지만 각자의 삶의 속도가 다른 게 아닐까라고 마음을 다독여 본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남지 않는다
'잘했고, 잘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빌딩 숲속을 달려 회사에 노트북을 반납하러 다녀왔다
파란 하늘, 푸릇푸릇한 나무들 사이로 1년 만에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더 이상 후회는 없다
다만, 앞으로의 시간들은 내가 행복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하며 살아야겠구나 라는 책임감을 느꼈던 날이었다.
회사를 나오고 소란스러웠던 채팅방을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초록초록한 추억이 가득한 이곳으로 떠나 왔다.
나를 위한 쉼이 필요한 순간,
그동안 애쓰며 살아왔던 나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주고 싶은 날.
흔들려도 괜찮아.
흔들리는 나무가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리듯,
지금의 나는 분명히 더 깊어지고 있어.
많이 흔들리고,
많이 사랑하는 시간으로 채워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