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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Oct 28. 2024

할머니 이야기

#나의피난처 #내기억속유일한안도

가을이 되니 자꾸만 창밖 나무들을 쳐다보게 된다.

수업을 하다가도 수시로 창밖을 내다본다.

길을 걸을 때는 자꾸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서 누군가 만나야 할 사람이 내려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새카맣게 타버리는 것 같은 여름을 지나고 나니, 가을이 이토록 반갑다.

온종일 예쁜 가을에 고맙기까지 하다.

무릎 시린 찬공기도 그럭저럭 참아낼 수 있다.





가을이 되니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내 어린 시절 유일한 나의 안식처였던 할머니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누구에게도 '안도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던 내게 할머니는 편안하게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안도'를 주었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날에는 정말이지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들이 가득했다.


#생각보다, 다정한세상. 참조


어린 시절에 나는 고기보다 과일을 좋아했다.

할머니는 시장에 다녀오실 때면 과일을 꼭 사 오셨다.

할머니 방은 연탄을 때던 온돌방이었는데, 학교 가기 전 외투를 꼭 아랫목에 넣어주셨다.

그리고 따순 기운을 머금고 옷을 입게 하셨다.

학교를 다녀오면 차가운 내 손을 할머니가 앉아 계신 아랫목에 넣어주셨다.

할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실 때쯤, 나를 깨워 새벽기도를 같이 데려가셨다.

나는 주로 엎드려 잤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말없이 나를 데리고 오가셨다.

그 시절, 할머니의 기도로 지금의 내가 신앙 가운데 굳게 믿음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하교 후 엄마가 한없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가 위암이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수술에 들어가셨고, 수술 후 회복도 잘하셨다.

약 2년 후, 할머니는 자꾸 목에 무언가 걸리는 것 같다고 하셨다.

식사 후에 헛트림을 하시고, 무언가 얹혀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모두 출근을 하신 어느 날, 할머니는 혼자 짐을 싸셨다.

병원에 다시 입원을 하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실 것을 아셨을까?


아직도 나는 할머니를 따라 배웅 나간 골목길이 기억난다.

할머니가 "어서 들어가라" 하시며 뒤돌아 걸어가신 뒷모습이 떠오른다.

내게 얼마 없는 어린 시절 기억 가운데 하나다.

할머니가 걸어가시고, 뒤돌아 집으로 들어오면서 눈물을 쏟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 유일한 안식처였던 할머니가 이제 돌아오지 않을 길을 가신다는 것을 어린 내가 알았을 리 없지만, 그저 알 수 없는 슬픔이 나를 뒤덮었다.


할머니는 위암이 재발했고, 그것으로 할머니의 60여 년의 이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하셨다.

초등학생이었지만,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집에 돌아온 날 웃을 수 없었다.

친구들과 놀 수 없었고, 숙제도 할 수 없었다.

내게 안도감을 주었던 할머니가 떠나고 나니, 이제 정말 덩그러니 혼자인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 때는 몰랐는데.

타들어가는 여름날에는 기억도 안 났는데.


찬바람이 부는 날이 되니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리운 내 할머니.

나를 위한 사람 같았던 할머니.


"고마워! 할머니! 나 이만큼 컸어. 아들도 둘이나 낳아서 잘 키우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나중에 천국 가면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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