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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엔 이가체프 May 15. 2016

Rainy Days And Mondays

비오는 월요일은 항상 날 우울하게 해

Carpenters
<Rainy Days And Mondays>


 내가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카펜터즈의 목소리에는 시간을 거슬러 추억으로 향하게 하는 특유의 힘이 있었다. 그리고 이 노래의 가사에서 전해지는 고독이 비오는 날과 잘 어울렸다. 그후로 비가 오는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쥬크박스에서 이 노래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비오는 날을 싫어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외출할 때 비가 오는 것이 싫다. 하지만 실내에서 차를 마실 때면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에 마음이 후련해지곤 했다. 창밖으로 굵다란 빗줄기가 동시 낙하하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빗속을 걸어야 하는 것은 싫었다. 왜 나는 비를 싫어할까.


 딱히 비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비에 대한 재밌는 추억들이 내겐 많이 있었다. 동경의 한 골목을 혼자 걷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비를 피해 들어간 지붕 밑, 자판기에서 꺼내 마신 캔커피맛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고교시절 라디오 캠프에 신청하려고 소나기 내리는 교정에서 친구와 비를 맞으며 사진을 찍으면서도 뭐가 그리 즐겁다고 웃었던지.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폭우를 만나 비 피하기를 포기한 채 빗길을 저벅저벅 걸으며 서로의 모습을 보며 폭소했던 날은 아직까지도 우리를 웃게 하는 추억이 되어 주고 있다. 그러고보면 내게는 오히려 비에 얽힌 재밌는 추억들이 많았다. 게다가 모두가 빗속에서의 추억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비오는 날을 싫어할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밖에 비가 내리고 있으면 습관적으로 한숨부터 나왔다. 우중충한 날씨엔 기분이 착 가라앉는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문득 생각해보니 맑음은 좋은 기분, 흐림은 우울한 기분과 이어지는 그 연결고리를 풀어내는 것도 명확하지가 않다. 밝은 성격과 어두운 성격, 밝은 생각과 어두운 생각처럼 밝음에 좋은 의미를, 어둠에 그에 반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왜일까 라는 의문까지 든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따라가다보니 점점 깊은 의문에 빠지기만 해서 그저 나의 경험만 놓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빗속에서의 좋은 추억들이 있으면서도, 비가 내리는 소리와 모양을 좋아하면서도 비가 싫다고 하는 이유. 곰곰이 생각해보니 있는 그대로의 비를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비가 성가시게 느껴졌다. 놓아버릴 수 없는 무언가를 쥐고 있을 때. 이를테면 출근길, 중요한 약속길에서 단정한 옷차림과 깨끗한 신발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예쁘게 단장한 머리가 축 가라앉는 것도 싫었다. 그럴 때 비는 내가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한 방해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것을 다 놓아버릴 때, 옷차림이 틀어지고 신발이 다 젖어도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젖은 거' 라고 아등바등 꼭 쥐고 있던 마음을 놓아버리니 오히려 해방감이 들었다.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비는 더이상 방해자가 아니었다.


 추억을 되짚어 보니 비와 나의 사이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방적으로 싫다고만 했던 마음, 비도 그걸 알까 싶어서 괜히 미안했다. 아직은 비가 오는 날을 기분 좋게 맞을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대해 본다. 비를 대하는 마음이 좀 더 관대해지기를. 자연(自然)스럽게 내리는 비를 애써 밀어내지 않기를. 생각해보면 비가 내리는 날 이 좋은 노래들이 탄생한 것도, 그래서 나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 아닌가.


Talking to myself and feeling old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늙었다고 느낄 때
Sometimes I'd like to quit
그럴땐 가끔 끝내고 싶어져요.
Nothing ever seems to fit
아무것도 맞지 않는 것 같고
Hangin' around, nothing to do but frown
주위를 둘러보아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뿐
Rainy days and mondays always get me down
비오는 월요일은 항상 날 우울하게 해요.
(중략)
Feeling like I don't belong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것 같은 느낌이에요.
Walking around some kind of lonely clown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외로운 광대와 같이
Rainy days and mondays always get me down
비오는 월요일은 항상 날 우울하게 해요.

-Carpenters <Rainy Days And Mondays> 중



-그런데 오늘은 비가 와도 너무 온다.-





* 메인 사진은 비오던 날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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