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내향인이 살아남는 법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 피천득
"너는 우리보다 그 팀에 더 잘 맞는 것 같아 (You are fit for that team rather than ours)"
인터뷰에서 핏(Fit) 운운하던 놀놀이는 예상대로 나를 A사의 사업부로 밀어냈고, 내 이력서는 A사 리처치에서 사업부로 전달되었다. A사 리서치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몰랑이는 사업부 HR 직원 '툴툴이'를 나에게 소개했다. 그동안 함께해서 즐거웠다는 인사와 함께.
새 HR 직원을 만나고 새로운 부서와 인터뷰를 시작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들였던 내 노력이 초기화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점에 내가 '귀사는 나와 핏이 안 맞는군요'라며 발을 빼지 않았던 이유는 사실 놀놀이가 추천한 아키텍트 직군도 미래의 커리어중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심기일전해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었다.
툴툴이를 통해 사업부 팀 X에 대해 소개를 받았고 그 팀의 매니저 '돌돌이'와 연결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 돌돌이는 내 오랜 지인이었다.
나는 돌돌이를 S사 재직 당시 학회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해마다 학회에서 재회할 때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교류를 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또 다른 반도체 회사인 N사에서 엔지니어링 매니저로 근무 중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학회 활동을 해왔기에 업계나 학계에서 꽤 영향력이 있었다. 내가 출장을 다닌 지 얼마 안 되어 어리바리했을 때 돌돌이는 변방의 연구원이었던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주었고 그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다.
돌돌이는 나를 학회 운영위원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커미티라 불리는 운영회는 일종의 '그들만의 리그', '내부자들' 같은 그룹인데, 해마다 학회를 준비하기 위해 꾸려지는 모임이었다.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일종의 봉사의 개념인데, 인맥도 넓히고 연구원으로서 경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은근히 지원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덕분에 학회 핵심 관계자들과 인연을 맺고 인지도도 넓힐 수 있었다.
꽤 오래전 돌돌이와 학회에서 재회했을 때 그가 좀 특이한 질문을 던졌다.
"예나빠.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네가 지금 S사에서 하고 있는 연구말이야. 그거 사업화까지 계획된 거야? 아니면 순수하게 연구만 하는 거야?"
"구체적인 계획은 말해주기 곤란한데 그저 열심히 연구 중이야"
"아, 그렇구나. 미안. 사실 내가 지금 N사를 떠나려 생각 중이거든, 그래서 같은 주제를 연구 중인 너희 회사가 궁금했어"
"응? 너 혹시 우리 회사에 관심 있어?"
"응"
귀가 번쩍 띄었다. 지금은 이미 최고가 되었지만 당시에도 N사는 반도체 업계를 선도하는 회사였다. 모두가 선망하는 그곳을 떠난다는 것이 이상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상사와 불화 때문'이라 했다. 역시 인간관계는 국적을 불문하고 어려운가 보다.
N사의 인재라면 S사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S사도 미국 법인에 새로 랩을 신설해 미국의 인재를 공격적으로 채용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회에 함께 참석 중이던 미국 법인 랩장에게 돌돌이를 소개했다. 랩장도 N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둘은 서로 말이 잘 통했다.
학회에서 돌아온 몇 달 뒤 메일을 통해 돌돌이가 S사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흔히들 미국은 네트워킹의 나라라고 한다. 한국도 인맥이 중요하지만, 미국에서는 '관계'를 통해 해결되는 일들이 훨씬 많다. 특히 추천서나 레퍼런스(평판 조회)를 받는 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다. 입시, 진학, 취업, 비자 신청을 할 때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이직이 확정되었을 때 전 직장의 레퍼런스를 요구하곤 한다. 하다 못해 사소한 집수리를 위해 수리공을 부르더라도 레퍼런스를 따진다.
그래서 미국 현지인들은 평판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쓴다. 평소에 직장 상사, 동료, 지인, 동창, 이웃 등 자신의 관계망에 연결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졸업생 모임, 동종 업계의 협회나 학회, 지역사회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하곤 한다.
이들이 이렇게 네트워킹에 신경 쓰는 이유는 인맥에 기반한 추천이 실제로 꽤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특히 채용 시장에서 두드러지는데, 회사는 새로 사람을 뽑을 때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냐'며 직원들에게 우선 추천을 받는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의 말만큼 믿을 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천 자체도 가볍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추천을 부탁하더라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정중히 거절을 한다. 단순히 지인의 부탁이라고 해서 모르는 이를 추천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누군가를 추천한다는 것은 내 이름을 걸고 피추천인을 보증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맥 관리라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일하기도 바쁜데 모임에 쫓아다니고,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해 안부를 묻는 것도 꽤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특히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태생적으로 힘든 나 같은 내향인들에게는 사실 이마저도 꽤 부담스럽다. 있지도 않은 사교성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맥 관리가 어려운 경우 다른 대안이 있다. 그것은 현직장 동료와의 관계만이라도 잘 쌓아두는 것이다. 사실 단순히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다 내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모임에서 스쳐 지났던 인연 100명보다 1명의 직장 동료가 기억에 더 남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현직장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영향력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는 넓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사내에서 대인 관계와 평판을 잘 유지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인맥 관리인지도 모른다.
노동 유연성이 높은 미국이기에 같은 업계에 남아있는 한, 지금의 동료는 언젠가 다른 곳에서 또 만나게 되어있다. 그에게 내 평판이 좋게 각인되어 있다면 그는 후일 반드시 힘을 써주게 되어있다. 그리고 원조 아싸 엔지니어인 내게도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S사를 떠나 I사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돌돌이도 얼마 뒤 S사에서 Q사로 이직했고 개발팀 디렉터로 근무했다고 했다. 내가 A사 리서치에서 한참 인터뷰 중일 때, 돌돌이는 또 Q사에서 A사로 이직해 자신의 팀을 새로 꾸리고 있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서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참 좁은 세상이었다.
지신 찬스덕분인지 돌돌이 팀에서의 인터뷰는 비교적 수월했다. 내가 지원하는 회사의 팀에 지인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전 직장 동료, 학교 선후배 그 어떤 경로든 나에 대한 경험이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지인은 그 팀에 레퍼런스를 하게 된다. 물론 그 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경우에 한정해서 말이다. 지인의 의견이 "그 친구 굉장히 똑똑해요"라면 좋겠지만 "아, 사실 별론 데요"라면 그 지인은 없으니만 못하다.
직무 적합성, 지인 찬스 등의 이유로 이전과는 다르게 팀 X와의 인터뷰를 속전속결로 마쳤다. 돌돌이나 HR 직원 툴툴이를 통해 건너 듣기로는 인터뷰 결과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모험을 감행했다.
돌돌이에게 직급 인상을 문의한 것이다. 최초에 내가 지원한 아키텍트 직급이 P였는데 내 경력으로 그 윗 직급인 F를 요구해도 될 것인가를 문의했다. 물론 '친구로서 묻는다'는 전제를 달았다. '회사를 옮기려면 그 정도 진급효과는 있어야 동기부여는 될 것'이라는 똥배짱을 아주 아주 아주 젠틀한 영어로 부렸다.
안 돼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질문을 던지면서 전화기 너머로 난색을 표하는 돌돌이의 목소리를 예상했다. 그런데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아, 그래? 흠. 니 경력상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 다만 F부터는 디렉터급이라 인터뷰 절차가 달라져. 면접관을 시니어 멤버들로 다시 꾸려야 하거든. 그래서, 채용부터 입사까지 시간이 더 걸리지"
"시간이 더 걸리는 건 괜찮아.."
"알았어. F 직급 면접을 보기 위해서는 이력서 외에 필요한 서류가 더 있어. 전 직장들에서 달성했던 다양한 실적, 리더십 결과 등을 증빙하는 서류들 같은 것들이야. 목록을 이메일로 보내줄게"
"OK. 고마워!"
통화를 마치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쳐다봤다. 어울리지 않게 상기된 중년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인터뷰를 다시 봐야 함에도 이전과는 다른 기대감이 충만하게 차올랐다. 이것이 미국 인맥의 힘인가. "여보!" 곧바로 아내에게 달려갔다. 며칠 후 A사의 웹 사이트에 공고된 포지션의 직급이 P에서 F로 바뀐 것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이것이 미국 이직시장 궁극의 희망고문 그 서막이었다는 것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