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하여 만남

인터뷰 함 봅시다.

by 예나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
바로 그곳에 열매가 있다"
- H. 잭슨 브라운(H. Jackson Brown)


"진짜? 인터뷰 보러 미국 가는 거야? 이번 전화는 매니저랑 인사하는 수준이었다며. 폰 인터뷰 먼저 안 봐?"


남편이 인터뷰 때문에 미국에 초대받았다고 하자 아내의 눈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그간의 시큰둥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은 생긴 걸까. 아내의 눈동자에는 다소 거만해진 내 모습이 반사되고 있었다.

남편의 거만함이 안중에 있던 아내. 이미지 출처=예나빠 태블릿


"글쎄. 일반적으로는 전화로 기술 면접 한번 보고, 그걸 통과해야 현지로 부르거든. 그게다 당신 남편이 유능해서 그런 것 아닐까?"


"또, 또, 시작이다. 겸손하세요. 예나 아버님!"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기는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도 오랫동안 떨림이 가시지 않았다. '폰 인터뷰도 안 보고 바로 온사이트 인터뷰를 부르다니, 진짜 웬만하면 나를 뽑으려 그러는 걸까? 그렇지 않고서는 굳이 비용을 들여서 후보자를 부르지 않을 거 아냐?'라는 나만의 행복회로를 돌렸다.


후일 알게 된 것이지만, 온사이트 인터뷰를 초대받았다고 채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저 검증 테이블에 올라올 자격이 생겼을 뿐, 현지 인터뷰에서 기준에 못 미치면 그대로 안녕이었다.


'미국에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저희가 보내준 직불카드 갖고 계시죠? 그걸로 식사 잘하시고, 남은 시간 관광이나 잘하다 돌아가셔요'


라고 이야기 듣기 딱 좋은 상황이 된다. 인터뷰 부르느라 쓴 비용정도는 자격 미달 후보자를 뽑았다가 해고까지 해야하는 비용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인 것이다.




인터뷰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S사에 휴가를 내야 했다. 인터뷰는 하루 일정이지만 하루 휴가로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비행시간을 생각해 최소 앞뒤 하루씩을 붙이고, 시차적응을 위해 앞에 하루 더, 인터뷰 끝나고 바람이나 쐴까 해서 뒤에 또 하루를 붙이다 보니, 최소 4박 5일 일정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정도 연속 휴가는 여름이나 연말 시즌이나 가능했다. 다행히 그때는 12월 초였고, 연말 휴가기간을 활용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에서도 연말이 휴가 시즌이었던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12월 셋째 주를 인터뷰 여행주간으로 잡고 I사에게도 알려줬다.



"이 전문님, 12월 셋째 주에 휴가 가세요? 연말에 나와서 일하시게요?"


"아.. 아니 그게.. 가족 여행 계획을 잡는데, 성수기를 피하려다 보니..."



내 이상한 휴가 일정에 동료들은 의아해했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로 시작해서 이듬해 설까지 쉬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남들 다 일할 때 휴가 가고 다들 휴가 갈 때 일한다 하니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누군가 물어보면 성수기 어쩌고 하며 대충 둘러댔다. 뭔가 찔렸다. 뒤에서 '이전문 인터뷰 보러 가는 거 아니야?'라며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좌불안석.gif 사실 그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이미지 출처=예나빠 태블릿



우여곡절 끝에 휴가를 올리고 나니 여행 준비는 쉬웠다. I사와 연계된 여행사에서 항공권, 호텔, 렌터카를 예약해 주었다. 예정대로 4박 5일 일정. 인터뷰는 하루였지만 고맙게도 I사는 5일의 체류를 지원해 주었다.




'면접'.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다. 발음할 때마다 오만가지 불쾌한 기운마저 샘솟는다. 긴장, 스트레스, 압박, 고민, 염려, 불안, 식은땀, 모골송연 등등등. 사전적 뜻은 '서로 대면하여 만남'이란다. 하지만 아무도 '얼굴 보며 수다 떨다'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한번 면접하며 밥이나 먹자'라고 말하지 않듯이.


출퇴근 시간이면 만원 전철에 빼곡히 들어서고, 점심시간이면 빌딩밖으로 쏟아지며, 밤이면 동료와 거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그런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 누구나 이 '서로 대면하여 만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저 높은 빌딩 숲 그 많은 사무실에 내 작은 자리 하나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나는 긴장감을 즐기는 방법 따위 모른다. 만일 면접 없이 구직을 할 수 있다면, 고민 없이 그 방법을 택했을 것 같다. 하긴, 우리 부모 세대들의 면접은 거의 형식적이라 했다. 서류전형에서 이미 당락이 결정되었다. 만일 쓸만한 대학 졸업장까지 있다면 회사는 골라서 입사했다고 한다. 그러니 당시 면접엔 '아부지 뭐하시노'같은 질문이 다였다.


X세대인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회사는 면접으로 사람을 걸러내기 시작했다. 채용 기준을 더 이상 학력과 지식으로 국한하지 않았다. 인성과 잠재력을 점차 중요시하기 시작했고, 면접은 이를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어갔다.


공채의 의미가 거의 없어진 요즘, 서류는 형식이고 면접이 본방이다. 학력, 지식, 인성, 잠재력뿐 아니라 창의성, 성취의식, 가치관, 도성성, 논리력, 발표력, 글로벌 역량에 심지어 순발력까지 본다. 이쯤 되면 면접은 '대면하여 만남'이 아니라 '대면하여 탈탈 털기' 수준이다. 나는 이 세대의 구직자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인생을 통틀어 면접을 줄곳 피해왔고 실제로 경험도 많지 않았다. X세대에겐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IMF시기, 나는 '학문에 뜻이 있다'며 도피성 진학을 했다. 그리고 대학원 시절 산학 장학생이 되기 위해 한번, 입사하기 위해 한번 본 것이 전부였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제 연구 내용을 경청해 주신, K전문님, L전문님, M전문님, P전문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XX 슬라이드 좀 다시 띄워주실래요?"


S사 입사 면접은 발표였다. 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채용할 때, 후보자는 자신의 과거 연구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리고 S사의 연구원들과 질의응답을 가졌다. 대학원생이라면 이미 익숙한 방식이었다. 발표 후 날아오는 지도교수의 삿대질, 랩 선후배들의 따끔한 조언을 견뎌낸 대한민국 이공계 대학원생이라면, 졸업과 동시에 강철 멘털이 된다.


면접에서 학위 심사 때 발표했던 슬라이드를 재활용했다. 학회, 랩 세미나, 지도 교수 미팅에서 사용했던 PPT를 영혼까지 끓어모은 뒤 적당히 미화한 자료. 재탕, 삼탕, 사탕.. 사골 육수처럼 푹 우려진 자료였다. 이미 닳고 닳은 익숙한 내용이었기에 발표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30대 초반이었던 그 시절의 난 패기가 넘쳤고, 면접에서도 긴장하지 않았다. 대학원 재학 중 이미 S사와 산학 협력 과제를 함께하고 있었고, S사의 연구원들은 '빨리 졸업하고 입사하라'라고 재촉했다. '받아주시는 겁니까?'라고 능글맞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기고만장했다. '아, 일단 더 좋은데 있나 좀 알아보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는 진정 운이 좋았다. 훌륭한 선배, 지도교수가 좋은 연구 주제를 추진한 덕분에 S사가 내가 속했던 랩을 주목했다. 덕분에 나는 S사와의 산학 과제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졸업 전부터 S사외 인연을 맺어 자연스럽게 입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미국으로 말하자면 인턴쉽. 그 인연이 없었다면 S사는 당시 내가 넘기에 꽤 높은 문턱이었을 것이다.




여행 계획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인터뷰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개발자 자리라면 주야장천 코딩 연습을 할 텐데.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라니 오래전 S사에 입사했던 것처럼 발표를 준비하면 될까 고민했다. 게다가 척척이는 전화에서 '인터뷰'라고 하지 않고 '미팅'이라 했다. 혼란스러웠다.


일단, 무작정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대학원 연구 내용은 이미 오래되었기에 가볍게 몇 장으로 정리하고, S사에서 연구한 내용을 정리해 PPT를 만들었다. 보안 문제가 있기에 철저히 회사에서 검수받고 외부 논문으로 발표한 자료만을 이용했다. 퇴근 후 짬짬이 시간을 내 D-day까지 자료를 만들어가며 그간 발표한 내용을 머릿속에 다시 정리했다.


내 출국일이 가까워오자 아내는 비로소 실감하기 시작했다. 기대, 두려움이 몰려왔다고 했다. 미국에 몇 년을 지내다 오는 정도면 모르지만, 어쩌면 기약 없이 이 나라를 떠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냥 남편을 응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출국일이었다. 집을 나서는 남편을 향해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내는 손을 흔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돌이 아직 안 지난 딸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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