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빠 Apr 18. 2024

반도체 학과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의 고심

오늘은 어머님께 전화라도 드려봐야겠어요.



얼마 전 같은 한인 교회를 다니는 지인분과 자녀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얼마 전 둘째 아이를 일리노이주에 있는 주립대에 보냈는데, 아이가 전공을 선택할 때 오랫동안 함께 고민했다고 한다. 그분은 미국에서 대부분의 엔지니어 커리어를 보낸 아버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아들도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공학도로서 공대에 가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첫째를 버클리 CS로 보냈지만, 이번에 둘째를 대학에 보낼 때는 EE, 즉 '전자공학과'로 보냈다고 했다. 미국에서 CS는 여전히 인기 학과이지만 예전만 하지는 않고, 둘째가 SW보다는 향후 더 유망해 보이는 로봇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 한다. 아들이 '로봇'을 하려면 기계공학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아빠는 기계 전공이면 mechanical 즉 '역학'측면에서 로봇의 '외관'을 다루면서 공부할 테니, 더 중요한 로봇의 '신경계'를 다룰 수 있는 학문, '전자'를 권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우리 아이들이 후일 대입을 준비할 때 어떤 전공을 추천해줘야 할지도 기대도 되고 살짝 걱정도 되었다. 얼마까지만 해도 하늘을 찌르던 미국 대학의 CS 인기가 주춤한다니 참 세상이 빨리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우리 아이가 대학을 갈 때는 또 어떤 분야가 유망하려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부모라면 좋았을 텐데.



한국에서는 주요 대학에서 대기업과 연계한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한 지 3~4년 정도 된 것 같다. 기사를 보면 학과 설명회 때 부모님들이 자녀가 걱정되어 많이들 함께 참석하시는데, 자녀를 둔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간다. 국가가 '반도체'를 집중 육성한다고도 하고, 장학금 혜택에 졸업 후 입사도 보장되니 '좋은 것'은 충분히 알겠지만, 과연 자녀가 '반도체학'을 전공했을 때 향후 졸업 후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도 잘하고 엔지니어 커리어도 잘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다. 


대기업에 취직이야 되겠지만, 내 아이가 힘든 조직생활을 잘 견딜지, 어차피 나이 들면 정리해고로 쫓겨나는 거 아닌지, 온갖 생각이 많으실 게다. 그게 부모 마음이니까. 반도체 학과에 합격한 학생들이 입학을 포기하고 대거 의대로 향하는 일이 많은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고민하던 부모의 권유가 한몫했겠지. 


생각해 보니 우리 부모님도 그에 못지않았다. 20년도 더 된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내가 대학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부모님, 특히 어머님은 참 기뻐해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그런데 며칠뒤 갑자기 어머니가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되겠냐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내가 들어간 연구실 이름이 '병렬 처리 연구실'이라는 것을 들으시고, 당신께선 '병렬 처리가 과연 괜찮은 곳인지' 불안하셨던 게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모 대학 CS 교수님과 통화가 닿았고, 교수님 왈 '병렬 처리가 예전에 좀 인기 있었는데, 한계점에 봉착해 지금은 한물 간 분야예요!'라고 하셨다는 게 아닌가. 


물론 그 교수님의 말씀은 맞았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미국 슈퍼컴퓨터 산업이 성장하면서, 병렬처리분야가 각광을 받았지만, 마땅한 응용을 찾지 못해 이내 쪼그라든 산업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들어갔던 연구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연구 분야를 전환하고 있었다. 올드한 냄새가 팍팍 나던 연구실 이름도 '미디어 시스템 연구실'로 곧 바꾸려 했고.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병렬 처리'는 모든 반도체의 근간이 된 기반기술로 다시 쓰이고 있다. 주파수를 올려 속도를 향상하는 것에 한계에 다다른 CPU는 2005년부터 코어를 여러 개로 나눠 병렬 처리하는 구조로 바뀌었고, GPU는 아예 수천 개의 코어에서 무지막지하게 병렬 처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러 개의 CPU와 GPU를 묶어 병렬 처리하는 슈퍼컴퓨터 시장과 클라우드는 다시 살아나 가장 돈을 잘 버는 사업이 되었다.) 


나는 어머님을 조곤조곤 설득... 이 아니라, '암 것도 모르면 이야기하지 말라!'며 생떼를 부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었다. 어머님은 아들을 이길 수는 없으셨다. 결국 걱정을 한가득 안으시고 그저 묵묵히 아침마다 연구실에 출근하는 아들에게 밥을 차려주실 뿐이었다. 


그동안 브런치에 한국에 있는 후배 엔지니어를 위해 글을 써왔지만, 의외로 엔지니어 또는 예비 엔지니어 부모님들이 많이 읽어주시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씩 부모님들이 댓글을 남기시고, 아니면 아들에게 '읽어 보라'며 직접 전달하시기도 한 것 같다. 자녀가 고교생이라면 아이가 선택한 전공이 맞는 것인지, 대학원생이나 현업 엔지니어라면 아이가 나중에 미국에 가고 싶어 하는데 부모로서 어떻게 지원해줘야 할지 고민이 많으실 테니.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부모님들도 답답하셨으니 인터넷을 찾으신 것이 아니겠는가. 


엔지니어로 살아오면서 아들이었다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아빠가 된 입장으로서, 이런 부모님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드릴 대답은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시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때마다 내려야 하는 선택이 있는데 당연히 그 선택마다 다른 결과를 맺는다. 그런데 당장은 아주 좋지 않은 결과를 낳더라도, 시간이 흘렀을 때 전화위복이 되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요지는 불안함을 거두실 수는 없겠지만, 아이가 내린 선택을 존중해 주고 기다려주시면 하는 것이다. 아이가 그 선택으로 찾아온 세상에서 열심히 좌충우돌하다 보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낼 힘을 기를 것이고, 또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엔지니어 자녀를 둔 대한민국의 부모님,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내가 어머님께 생떼 부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라니, 아 시간 빠르다. 오늘은 어머님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예나빠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은 정말 사교육이 없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