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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Aug 08. 2022

핀란드에서 쓰는 <광장> 이야기

밥 먹는 술집 <광장>이 발행하는 소식지 <반도>에 실은 글

집만큼이나 내 마음을 쉬이 누일 수 있는 곳, '단골 술집'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내가 이 공간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다 전할 수 없는 곳, 서울 을지로의 밥 먹는 술집 <광장>. 사장님은 <광장>을 사랑하는 손님들이 직접 쓴 이야기들을 담아 정기적으로 <반도>라는 소식지를 발행하시는데 작년 이맘때 나는 <반도> 4호의 필진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필진으로 참여해줄 수 있는지 요청을 받은 것은 공교롭게도 내가 사장님께 "저 다음 달에 유학 가요"를 알리려던 날의 바로 며칠 전이었다. <광장>을 드나든 2년의 시간, 그 '한 챕터'를 갈무리할 기회인 것 같아 무지 기뻤다. 


2021년 비건 파티 메뉴 중에서. <광장>은 정기적으로 비건 요리만을 판매하는 날을 연다.


"안녕하세요, 광장입니다. 광장의 소식지 반도는 광장을 찾고 즐기는 사람들로 채우는 잡지입니다. 우선 4호의 필진으로 기꺼이 참여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늘 광장장이라는 스스로 이름 붙인 저의 이야기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공간입니다. 광장이 그랬듯 반도도 각자의 광장으로, 그런 공간을 누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기록하는 매체로 만들고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라도 좋습니다. 광장의 메뉴와 이벤트, 광장 안에서 즐긴 에피소드와 순간들은 물론 일상의 순간에서 떠오른 광장도 좋아요. 나만의 광장을 함께 기록해 주세요." (작년에 사장님께 받은, 글 작성 관련 안내 메일 중 일부.)


아래의 글은 사장님께 전달한 내 원고의 원본. (먼저, 글에 적힌 '타코야키'는 '오코노미야키'임을 밝힌다.)




유학을 떠나기 3주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 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한 2021년 7월 둘째 주. 그 주에는 <광장>을 두 번 갔다. <광장>은 서울에서의 내 시간을 돌아보기에 좋은 곳일 뿐 아니라 서울에서의 내 시간 그 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니까.


2021년의 마지막 <광장>은 7월


7월 6일 화요일에는 타코야끼에 ‘지리산 기운 내린 강쇠주’ 한 병을 먹었다. 참고로 ‘강쇠주’는 내가 <광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술이다. 청주와 막걸리 사이의 색감에 살짝 단맛, 살짝 쓴맛이 조화롭다. 순한 음식, 기름진 음식 모두와 어울려서 <광장>의 어떤 메뉴와 곁들여도 좋다.


가게에 들어서서 왼쪽을 바라보면 큰 창과 그 바깥의 풍경이 반긴다. 여름에는 수목원이 따로 없다. 여름을 기준으로 밤 8시쯤이면 창밖 눈높이 살짝 아래의 가로등에 불이 켜진다.


그날은 여느 <광장> 방문 때처럼 혼자 ‘수목원’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며 밥과 술을 먹었다. 밤 10시, 문 닫을 시간이 돼서 일어났다. 그때 사장님께서 말씀을 꺼내셨다. “<반도> 다음 호 필진으로 참여해주실 수 있으세요?”


사장님께 내가 유학 간다는 사실을 아직 말하지 않은 때였다. ‘내일모레 한 번 더 올 거고 그때 인사 나눠야지.’ 생각하던 참이다. 나에게는 <반도> 필진 참여가 ‘나의 <광장> 1막’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그 제안이 더 설렜다.


7월 8일 목요일. 이날은 토마토냉우동에 생맥주를 먹었다. 사장님께서 시음해보라며 한 잔 주신 술과 양배추 스테이크도 먹었다. 실은 <광장>에 가면 두 개 메뉴를 기본적으로 먹고는 했다. <광장>에 자주 가는데도 갈 때마다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먹던 나. 맛있는 걸 어떡하죠.


사장님께 드디어, 유학을 고백했다. 꽃다발 하나와 미리 써온 편지를 드리면서. 그쯤 <광장>에는 붉은색 꽃이 있었기에 푸른색 꽃을 준비했다. 편지에는 내가 처음 <광장>을 알게 된 계기, 자주 온 이유, 사장님께 전하고 싶은 마지막(?) 인사가 담겼다.


<광장>이어서 좋았다


<광장>을 알게 된 건 2019년 11월, 두 번째 퇴사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사장님이 쓰신 책 <밥 먹는 술집을 차렸습니다>를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기 시작해 이틀 만에 완독하고 <광장>에도 직접 가본 것이다.


<광장>에 가기 시작한 그 무렵은 내가 ‘혼자 있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나아가 ‘혼자 있음’을 마음 깊이 좋아하게 된 시기와 겹친다. ‘우연히’ 그 책을 읽게 됐다고 했지만 아주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혼자 오면 더 좋은 술집’이라는 표현처럼, 딱 한 번 친구와 같이 ‘비건 파티’에 간 걸 제외하면 언제나 혼자 <광장>에 갔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 창밖을 보며 멍을 때릴 때도 많았다.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광장>에서 할 때가 몸도, 마음도 가장 든든했다.


사장님께서 <광장> 인스타그램에도 올리셨는데, 사장님께 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이랬다. ‘사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사장님께 배운 게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을 잘 알고 실천하는 게 곧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고 그게 가능하구나 하는 것.’


이건 사장님께 전하는 말인 동시에 유학을 가는 나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세상을 구한다’는 결연한 목적으로 떠나는 유학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상으로 내 배움, 내 성장이 이 세상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고 있고.


(왼) 베지누들수프와 강쇠주 (오) 소고기 카레와 따뜻한 사케
명란마요우동과 생맥주


우리, 죽지 말고 꼭 만나요!


사장님께서 8일 그날, 스타벅스 조각 케이크에 초를 붙여 주셨다. 다른 직원 분을 비롯해 그날 손님으로 오신 <순환지구> 사장님께서도 유학을 축하하고 응원해 주셨다. 혼자 가서 혼자의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던 <광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따뜻한 소란’의 시간을 보냈다.


8월 1일 핀란드로 출국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한국에서의 소중한 사람들, 공간들이 때때로 그립다.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혼자 있음’의 시간을 통해 그 그리움과 외로움을 흘려보내거나 겪어내는 중이다.


<광장>을 찾는 수많은 ‘혼자들’은 오늘, <광장>에서 어떤 음식과 사색으로 위로받고 있을지 궁금하다. 건강히 ‘오늘’을 살다가 너무 늦지 않은 어느 날에 <광장> 문을 열고 말하고 싶다. “사장님 강쇠주 하나랑 양배추 스테이크 하나 주세요!”


2021년 기부파티. 나는 <몽당연필>과 <인디스페이스>에 기부했고 비혼세 그립톡, 강쇠주 한 병이 당첨됐다. 최고다!




2021년 11월 발간된 <반도> 4호 외에도 <반도>는 <광장>을 비롯해 제주 무명서점 등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광장> 인스타그램에서. @gwangz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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