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위한 한강 산책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2016년 시작한 플로깅은 이삭 등을 줍거나 모은다는 의미의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다. 직역하면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일. 물론 걷거나 스케이트보드, 자전거를 타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도 포함한다. 수영을 하다 강바닥의 폐플라스틱을 주워 올리는 것도 일종의 플로깅인 것이다.
플로깅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서울에서 내게 가장 소중한 공간이 어딜까 생각했다. 한강이었다. 지방에서 버스로 5시간을 달려 처음 서울에 도착한 날. 철교를 건너는 지하철에서 본 한강이 생각 난다. 고속버스터미널의 복잡한 길과 낯선 풍경에 기가 죽어있을 때였다. 지하철이 캄캄한 터널을 나오는 순간, 드라마처럼 해질녘 한강이 펼쳐졌다. 처음으로 서울이라는 도시가 내 생각 보다는 따뜻한 곳일 지 모른다 생각했다. 그 후로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한강에 갔다. 목적지 없는 긴 산책을 하거나 하염없이 강 너머를 보며 앉아 있으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첫 플로깅 장소로 한강을 택한 건 당연한 일이다.
본격적인 플로깅에 앞서 준비물이 필요했다. 집게와 장갑, 쓰레기 봉투였다. 유난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아 집게는 패스. 가볍게 산책하는 느낌으로 봉투만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간단한 준비에도 고민을 하게 된다.
"일반 비닐봉지를 가져가는 게 맞아? 환경을 보호하려고 하는 건데 플라스틱 비닐을 쓰는 게 말이야."
"이미 나온 쓰레기인데 거기에 쓰레기를 담는 거니 괜찮지 않을까?"
"그럼 우리가 비닐봉지를 안 써서 그게 없으면? 플로깅할 땐 뭘 가져가야 해?"
"그러네. 종량제 봉투를 사서 가져가야겠지?"
"맞아. 근데 가득 채우지 않으면 그것도 낭비일 수 있겠다."
배려는 간편하지 않다. 상대의 입장에서 깊이 고민하지 않은 배려는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 지구를 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가정의 가정의 가정을 거쳐 적확한 방법을 찾는 것. 배려는 생각보다 복잡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을 발견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하다.
우리 반 교실 뒤편에는 공용 연필깎이가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여러 아이들이 멋대로 이용하다 보니 곧잘 고장이 나곤 했다. 보다 못한 담임선생이 안내문 하나를 써 붙였다. “학급 물품을 내 것처럼 아끼자!” 이 문구를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그때까지 내가 외국에서 받은 교육에 의하면 이 문구는 응당 이렇게 쓰여 있어야 했다. “남의 것처럼 아끼자.”
- 김한민, <아무튼, 비건> 중에서
우리는 한강을 걸으며 쓰레기를 주웠다. 트인 공간에선 대부분 쓰레기를 가져가는 분위기였지만, 수풀이 있는 보행로로 들어가니 페트병이나 과자봉지가 꽤 보였다. 환경미화원이라도 된 것처럼 쓰레기를 담으며 긴 산책을 했다. 소중한 한강을 ‘내 것처럼’이 아니라 ‘남의 것처럼’ 아끼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한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