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프로직장인의 꿈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by 김준용

희망퇴직 관련 세션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여전히 라운지에 남았다. 스탠팅 파티에 온 것처럼 서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라운지 소파에 드러눕듯 몸에 힘을 빼면서 긴장을 이완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생각할 거리가 있을 때 자주 앉아 있던 행잉 체어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하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먼저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회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금융 시장이 얼어붙은 게 맞았다.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가 기준금리를 계속해서 올려갔고 그 여파로 많은 스타트업이 위기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면서 1차적으로 실리콘밸리에 있는 여러 스타트업들이 위기에 놓이거나 실제로 서비스를 중단했다.


초기부터 투자를 계속해 위어스의 지분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곳도 미국의 벤처캐피털 기업이었다. 그곳에서는 위어스가 짊어지고 있는 적자를 감당하면서 시장을 장악한 뒤 비용구조를 개선해 흑자로 전환하거나 주식시장에 상장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획되어 있던 후속 투자도 어그러졌다.


그 상황에서의 진성을 비롯한 코파운더들의 판단은 존중할만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나이나 연차에 비해 꽤 높은 연봉을 받아왔고 적자를 상쇄시키면서 서비스를 마무리하면 금전적으로 따졌을 때 손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위어스를 이어가기 위해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희망퇴직과 권고사직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나올 것은 당연히 예상했을 테니 진성과 코파운더에게 책임을 묻는 시선과 비난의 화살을 견뎌내기로 한 것이다.


우진은 이제 이 상황이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사실에 도달했다. 희망퇴직을 하든 계속 회사에 남든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깔끔하게 우진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우진은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었지만 답을 정하기 어려웠다.


“오늘 우리 축구하나요?” 나연의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동호회 정기 모임이 있는 화요일이다. “당연히 해야죠. 뭐라도 집중하면 나아지겠죠. 끝나고 다 같이 밥도 먹고..” 대체로 비슷한 의견이었다. 열명 남짓 되는 참석자들과 오늘 그냥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직원들 몇이 함께 풋살장으로 향했다. 어차피 퇴근 시간은 지났고 회사가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일할 사람은 없었다. 우진도 가방을 챙겨 뒤따랐다.


풋살장은 잠실종합운동장 내 119 방재센터 건물 옥상이었다. 119 방재센터는 야구장 바로 옆에 있었다. 오늘 프로야구 경기가 있는지 주차된 차들이 빼곡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풋살장으로 걸어가면서 시끌벅적한 종합운동장의 분위기와는 달리 모두 말이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아무도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우진 역시 불과 몇 시간 전에 새로운 정보를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은 농담이 잘 나오지 않았다.


으레 그랬던 것처럼 6:6으로 팀을 나눠 친선경기를 시작했다. 우진은 오늘따라 체력이 금방 소진되는 것 같았다. 나연과 한 팀이 되어 공격을 할 땐 서비스가 다시 살아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수비를 하러 내려올 땐 커리어가 이대로 폭망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반복했다. 12명의 선수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잊기 위해 뛰는 게 아닐까 싶었다. 평소보다 더 힘들고 쉽사리 힘이 나지 않았지만 뛰었다. 뛰면 답답한 마음이 좀 풀릴 거라 믿었다.


그 순간 누군가 홈런을 쳤는지 함성이 터져 나왔다. 2점이나 3점 홈런을 친 것 같았다. “엘지의 김성원! 엘지의 김성원!” 타자의 응원가가 울러 퍼졌다. 야구장은 축제분위기였고 그 소리에 풋살장의 괜스레 초라해 보였다. 마침 우진의 패스를 받은 나연이 슛을 때렸고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나연은 가벼운 하이파이브를 하며 우리 진영으로 돌아오다가 문득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그대로 인조잔디에 누워버렸다. 우진도 터질 것 같이 숨이 찼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12명 모두가 잠시 풋살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홈런을 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진은 생각했다. 관중이 아닌 프로 선수가 되고 싶었다. 남들이 성공하는 걸 보며 부러워하고 손뼉 치는 역할이 아니라 한 번쯤은 주인공이 되어봐야 하지 않을까. 동료들과 고생하며 준비해서 큰 경기에 나가고 싶었고 멋지게 홈런을 치며 다 함께 그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위어스의 정우진!” 누군가 열심히 응원하고 외칠 수 있는 이름이 되는 것. 어쩌면 스타트업에서 시간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아직 내가 주인공인 무대가 펼쳐지지 않았다고 믿는 직장인들이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연봉이 실력을 의미했다. 프로 야구에서는 더 좋은 실력을 가진 선수가 더 높은 연봉과 명예를 거머쥐었다. 아마도 우리는 스스로를 프로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더 좋은 실력을 가진 직장인이 되면 멋진 팀에서 일하면서 스타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업계에서 내 이름 석자만으로도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직장인이 되는 것. 그에 상응하는 대우까지 꿈꾸는 사람들. 우진은 동고동락하며 일하는 이 사람들이 떠올렸을 생각들을 떠올려봤다.


경기가 끝나고 뒤풀이를 가졌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다른 직원들도 합류해 자리가 커졌다. 축구 동호회가 아니라 회사 뒤풀이 같았다. 회사가 끝났으니 회포를 풀자는 분위기였다. 한 명씩 마음속에 있던 선택지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누구는 고향으로 내려가 당분간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 일을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누구는 이미 다른 회사에서 이직제안을 받았고 혹시 같이 갈 사람이 있는지 묻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비스를 계속하고 싶어 했다.


“제 생각에 위어스는 커뮤니티를 더 발전시켜야 할 것 같아요” 나연이 말했다. 여전히 서비스를 더 나아가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는 나연이었다. 우진은 나연의 그런 모습이 멋있으면서도 안쓰러웠다.

“아 그러지 말고 위어스 로또번호 생성기 같은 거 만들면 앱 방문자 계속 늘지 않을까? 크크“ 시니어 개발자 한 명이 농담을 던지자 여러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럼 오늘의 운세도 만들어서 넣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좋은 분위기의 회식처럼 보였을 것이다. 가라앉는 배 위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또 일 얘기를 했다. 이렇게 하면 좋겠다 이러면 괜찮지 않겠나 농담도 잊지 않고 섞어가며 한참 시간이 갔다.


나연은 술이 들어가자 말이 많아졌다.

“제가 어제 출근길에 차를 타고 오는데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가 너무 좋아서 같이 듣고 싶은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나요. 그게 뭐였냐면... 약간 여기가 어딘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내용이었는데... “

"조용필의 꿈?" 시니어 개발자가 단박에 알아맞힌 듯했다.

"그런데 여자 목소리였어요.” 나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노래 제목을 검색했다. 이내 이제야 알겠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우진이 있는 쪽으로 보였다. “태연이 리메이크한 조용필의 꿈이네요!”


나연은 휴대폰 화면에 조용필의 노래 가사를 띄워 놓고 한 문장씩 읽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약간 시를 읽는 것도 같았고, 진심이 담긴 하소연 같기도 했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이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이제 고깃집에는 우진과 동호회 사람들만 남은 시간이었다. 사장님도 나머지 테이블은 정리하고 우리를 위해 가게를 열어두는 것 같았다. 그 사이 누군가 사장님에게 신청곡을 넣었는지 가게에 조용필의 <꿈>이 흘러나왔다. 우진과 나연은 가사를 들으며 각자 생각에 잠겼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을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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