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우리 스타트업 정상 영업 못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희망퇴직 메일이 왔다

by 김준용

"3번 회의실에서 잠깐 볼까요?" 며칠 뒤 HR팀장으로부터 슬랙 메시지가 왔다. CPO가 공석인 상태에서 우진은 사실상 프로덕트팀을 리드하고 있었다. 물론 CEO와 그로쓰팀 리드 기찬의 의견을 전달받아 조직이 굴러가도록 만드는 정도였다.


3번 회의실은 다른 회의실과는 다르게 건물 바깥쪽으로 난 창만 있었고 복도 쪽으로 창이 없는 구조였다. 지나가는 사람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고, 구석진 곳에 있어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누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비밀스러운 면담을 할 때 많이 쓰는 회의실이었다. 누군가 3번 회의실에서 보자고 한다면 열에 아홉은 퇴사한다는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설마 HR팀장이 퇴사를? 우진은 순간적으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자신에게 따로 이야기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 내일부터 레이오프(lay-off)가 시작될 거예요. “

HR팀장이 말했다. 순간적으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허공을 바라봤다. 우진은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네? 직원들을 해고하신다는 건가요?”


“처음부터는 아니에요. 먼저 희망퇴직을 진행할 거예요. 목표는 조직의 인원을 3분의 1로 줄이는 겁니다. 만약 희망퇴직이 그 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선택적으로 해고 절차도 밟게 될 거예요.?” HR팀장은 준비해 온 원고를 읽는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또박또박 말했다. 우진이 더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말을 이어갔다.


”아시다시피 지난 1년간 회사는 좋은 분들을 많이 모셔오려고 엄청난 투자를 했어요. 신사업도 여럿 진행했고 마케팅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쏟아부었고요. 벤처캐피털과 약속한 대로 투자금을 1년 안에 소진해 아주 빠르고 큰 성장을 이뤄내야 했지만 기대만큼 크지 않았어요.” 이번에도 HR팀장은 준비한 말을 하는 듯했다. 거침이 없었다.


“이제 다음 라운드 투자를 진행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기존 투자자들은 시리즈 C 펀딩에 소극적이었습니다. 다행히 실리콘밸리 쪽 벤처캐피털에서 저희 회사를 긍정적으로 검토했고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뉴스에서 보셨다시피 실리콘밸리뱅크가 파산하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하게 쪼그라들었어요. 결국 그 투자 건은 잘 안 됐어요. 기존 주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들도 후속투자에는 여전히 회의적이었고요.”


우진은 호프집에서 우연히 본 뉴스가 생각났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사건이 우진의 삶에 이런 식으로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최근 성장이 정체된 몇몇 스타트업들이 후속 투자를 못 받아서 문을 닫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게 위어스가 될 줄은 몰랐다.


“결국 저희 경영진은 회사를 매각하는 걸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잠재적인 구매자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조직의 규모를 줄일 거라고 해요. 만약 조직이 계획한 대로 콤팩트 해진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구매자들은 몇몇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라서 설명드릴 수가 없네요. 구조조정 관련해서 디테일한 건 내일 공지가 될 거예요. 제가 우진 님을 따로 불러서 말하는 이유는 경영진 입장에서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다른 생각을 할까 봐 미리 얘기하는 거예요. 회사가 매각이 되고 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아쉬웠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될 것 같은데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회사와 서비스와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과 고객들이 가진 맥락을 자세히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그랬다. 이번 위기만 잘 넘기면 아주 크게 점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재의 수치만으로는 그 맥락을 설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걸로 끝이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설득은 배로 힘들었을 거고 끝내 온전한 기업으로서 비전을 펼치는 데 실패한 게 아닐까 싶었다.


위어스가 매각에 성공한다면 두 가지 상황이었다. 하나는 규모가 있는 기업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서 인수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사모펀드였다. 전자라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들이 있었지만, 만약 사모펀드라면 완전한 랜덤이었다. 결국 비즈니스를 계속 이어가기보단 재매각을 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모펀드가 어떻게 위어스를 바꿔버릴지는 알 수 없었다. 우진은 내일 공식적인 공지 메일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니 이미 오피스가 어수선했다. HR팀에서 각 팀의 리더들에게는 어느 정도 언질을 줬고 어떤 리더는 회사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함구했지만 일부는 팀원들을 불러 모아 회사의 사정을 간단히 얘기하고 공식 발표를 기다리자고 했다.


후자에 속한 팀원들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개발자인데도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라운지에 나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휴게실은 계속 문이 닫혀 있었고 항상 누군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은 라운지로 나와 생각에 잠겨 있거나 삼삼오오 모여 자그맣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대회의실에는 회사의 모든 리더가 미팅을 위해 한 회의실에 모여있었고, 그 미팅의 끝나면 아마도 회사의 시간은 잠시 멈추게 될 것이었다. 사람들은 동요할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어수선한 분위기가 될 것 같았다.


한 시간 뒤,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담긴 메일이 왔다. 우진이 들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인원을 얼마까지 줄이겠다는 내용은 없었고, 희망퇴직자에게는 한 달치 월급을 추가로 제공한다고 적혀 있었다.


추가로 메일이 발송된 순간부터 회사의 모든 현금성 복지가 사라진다는 내용도 있었다. 야근 식대와 교통비 지원이 끊기고, 주택자금지원과 회식비도 사라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오후쯤이면 알아서 채워지던 탕비실의 간식들도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스낵 공급 업체와 계약을 중단하면서 업체에서 남아있던 약간의 간식도 모두 회수해 갔기 때문이다. 남은 건 미리 구매해 둔 캡슐 커피와 커피 믹스가 전부였다.


라운지가 시끌벅적해졌다. 사람들은 이제껏 하루 종일 일만 하느라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친하지 않던 사람과도 옆자리가 비어 있을 때 잠깐 앉아 그간 못했던 얘기를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했다. 이때 사람들은 며칠 전 혹은 몇 달 전 서랍 속에 챙겨놨던 과자와 비스킷 같은 간식을 꺼내 나눠 먹었다. “오, 감자칩! 언제 이런 귀한 간식을 챙겨두셨나요. 역시 선구안이 있으시네요.” 같은 시답잖은 농담으로 얘기를 시작하면 이내 자신의 경제 상황이나 커리어에 대한 고민 같은 것으로 깊어지기도 했다.


조금씩 각자 논의를 진행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의사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남기로 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하고 떠나기로 한 사람들도 그들끼리 이야기를 했다. 일이 없는데도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20대 직원들은 대체로 자취를 했고, 좁은 방에 혼자 있으면 우울하기도 하고 생각이 복잡해질 것 같다며 회사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부는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서울역이나 시청 근처에서 술을 마셨다. 메일을 받은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근처에는 술자리가 있었고, 사람들은 술자리를 오가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했다.


“아무래도 답답하니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같은 정보를 가진 사람들과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게 선택에 더 좋은 영향을 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부정적인 에너지가 이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게 내 상황이나 의지와 맞지 않는데도요.” 나연은 결국 남기로 한 것 같았다. 대표의 메일이 있은 직후부터 우진을 포함해 다른 사람과 논의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아 떠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아닌 듯했다.


희망퇴직 메일이 있은 후 3일째, #WEUS-All 슬랙 채널이 다시 활성화됐다. HR팀장이었다. “잠시 후 5시부터 약속드렸던 대표님의 Q&A 세션을 진행하겠으니 라운지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EO의 메일에는 일주일 내로 상황을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있었고 그게 오늘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때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희망퇴직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다들 마음이 좋지 않으실 거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회사의 존속을 위해서 이렇게 뼈아픈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지금부터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한 상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이후에 혹시 궁금한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CEO 진성은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약간 긴장한 듯했지만 목소리를 차분했다. 진성은 회사의 존폐 위기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려 있었다.


“먼저 저희 위어스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와 7명의 코파운더가 만든 작은 서비스였지만 이제는 월간 사용자가 150만이 넘는 플랫폼이 됐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이루는 그 과정에서 여느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사용했습니다. 투자라운드를 지날 때마다 신주를 발행해 투자를 받았고 코파운더의 지분은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위어스 경영의 많은 부분을 벤처캐피털에서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C레벨의 채용 부분이 그랬고 투자금을 빠르게 소진해야 한다는 조건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1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폰을 보거나 노트북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화산폭발로 굳어버린 폼페이의 시민들처럼 움직임 없이 진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대주주가 더 이상 회사에 추가적인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다른 주주들도 그에 따라 회사에 대한 지원을 중지했습니다. 저희는 여러 루트로 추가적인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체적인 금융 시장의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위어스는 의도된 적자를 내면서 매출을 높여가면서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고 주주들은 후속 투자를 통해서는 위어스의 적자를 해소하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적자를 손해로 처리하고 더 이상 서비스 이어나가기 위한 비용을 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저희 경영진에게 이 회사를 폐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입니다.”


진성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고, 120명 가까이 모인 라운지에는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저희 경영진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대로 그만둬도 괜찮을까? 우리가 이 서비스를 만들 때 원했던 결과를 아직은 보고 싶은 게 아닐까? 같은 꿈을 꾸면서 모인 사람들이 더 있다면 한번 더 가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회사는 다른 주인을 찾기로 했습니다. 다른 투자자에게 회사를 매각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매수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직의 몸집을 줄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저와 면접을 보고 입사하신 분들이라 이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더 뼈아프고 힘들지만 앞으로 같이 이 꿈을 꿔갈 분들을 위해서는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CEO의 Q&A 세션에 하겠다는 질문이 많았지만 쉽게 하지 못했다. 우진이 봤을 때 진성은 더 많은 이득을 보기 위해 결정했다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경영진의 입장에서 단기적으로 예상되는 보상이 너무 적었다. 상황을 요약하면 회사가 거의 망했으니 나갈 사람은 나가달라, 그리고 도박을 같이 할 사람은 남으라는 말이었다.


“저희가 가진 현금으로 회사는 얼마나 유지할 수 있나요?” 침묵을 깨고 질문이 나왔다.

“앞으로 짧으면 2주, 길면 한 달 이내에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회사는 문을 닫습니다.” 진성이 답했다.


Q&A 세션이 마무리되고 진성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뒤이어 HR팀장이 희망퇴직의 절차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설명했고 이어서 질문을 받았다. 몇몇이 대표에게는 하지 못 했던 사소한 질문들을 했지만 그도 아는 것이 없고 결국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희망퇴직과 권고사직, 실업 급여에 대한 답변은 그냥 구글에 검색하는 게 더 나은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마이크를 이어 잡아 날카로운 질문들은 했고, HR팀장은 미안한데 본인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질문도 답변도 의미 없어지며 모두 지쳐가던 때에 CFO가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경영진을 믿고 열심히 일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저를 포함한 경영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긴밀히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인원을 감축하게 됐고, 희망퇴직을 신청하신 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한 달치 월급을 준비했습니다. 현재는 시간 단위로 많은 결정이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확정적으로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정말 없다는 점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CFO가 다시 한번 허리를 깊이 숙였다. 순간적으로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 침묵의 공기는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분노와 불만이 가득한 침묵이 아니라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침묵이었다. 열정적인 발언이었지만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초상집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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