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괜찮은 걸까?
매주 화요일은 축구동아리 친선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우진은 요즘 그로쓰팀과 개발팀 모두에게 압박을 받고 있는 터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어 땀을 흘리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나마 축구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고, 위어스의 축구동아리는 남녀가 같이 뛰는 혼성 팀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풋살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개발자인 나연이 축구 동아리에 자주 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더 마음이 생긴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우진은 축구를 마치고 간단히 치맥을 하러 동아리 팀원들과 근처 호프집에 들렀다. 호프집에서는 여러 대의 대형 TV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NBA 같은 스포츠경기와 몇몇 뉴스를 동시에 틀어두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뱅크가 파산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벌써 몇 일째 중요 경제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스타트업씬에도 투자금이 말라간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다른 동료들도 뉴스를 보며 몇 년 전 유니콘 기업으로 유명했던 회사에서 최근 희망퇴직을 진행했다는 내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진은 감자튀김을 집어 들면서 습관적으로 슬랙을 켜 혹시 긴급한 내용의 메시지가 없는지 확인했다. 위어스의 모든 직원이 들어간 #Weus-All 채팅방에 누군가 메시지를 작성한 것 같았다.
대부분 HR부서의 공지사항이나 타운홀미팅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는 채널이었다. 퇴근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잘 활성화되지 않는 채널이라 우진을 고개를 갸웃하며 새 메시지가 있다는 표시로 굵게 처리된 채널 이름을 눌렀다.
"내일 부로 업무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여정도 응원합니다." 누군가 퇴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진은 반사적으로 메시지 옆에 표시된 프로필 사진과 작성자로 시선을 옮겼다.
CPO 주형이었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뇌가 두개골 안에서 진동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그리고 왜 이런 식으로 퇴사를 하게 된 거지? 그럼 앞으로 누가 CPO 역할을 하는 거지?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른 동료들도 메시지를 봤는지 테이블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주형의 영향력은 단순히 프로덕트 조직에 그치지 않았다. 개발팀과 그로쓰팀도 CPO의 의사결정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그렇기에 간혹 차가워 보이지만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해 내는 주형의 캐릭터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주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벤처캐피털의 100억대 투자 직후 혜성처럼 회사에 합류했고, ‘이 회사 뭔가 되나 보다'라는 분위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인사였다. CPO로 합류하자마자 의욕적으로 제품의 퀄리티를 높이면서도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집중했다.
대학생들이 창업동아리에서 만들었던 기존의 앱은 거대 IT기업들이 만든 좋은 퀄리티의 앱에 비해 부족하 점이 많았다. 고객들은 이미 높은 퀄리티의 앱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위어스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력한 제품 조직이 필요했다.
CPO가 된 주형은 앱을 바닥부터 다시 지어 올렸다. 특히 고객 불만이나 환불처리 같은 고객센터 업무를 앱에서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만드는 프로젝트는 사실상 위어스가 가지고 있지 않던 기능을 새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사용자의 피드백도 좋았고 고객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고객관리는 매출이 나는 모든 회사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다들 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 주형은 플랫폼 대기업이 된 N사 초기부터 고객 접점의 서비스를 담당해 온 베테랑이었다.
우진의 주형이 왜 이렇게 급히 퇴사를 결정하게 됐는지 떠올려봤다. 주형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문제는 코파운더들이 주형을 대려오기 위해 CPO라는 직함을 내줬지만, 그가 잘하는 고객 접점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난 뒤에는 그 이상의 권한을 주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이다.
그저 고객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그 부서를 키워주길 바랄 뿐이었고 개발팀의 리소스를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비즈니스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 주형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CPO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권한을 원했다. 이곳에서 높은 자유도를 가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앱을 성공시키는 경험을 원했고, 그 경험으로 다시 업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더 공고히 하고 싶어 했다.
코파운더들은 겉으로는 그를 응원하고 어떤 터치도 하지 않았지만, 개발팀을 지원해주지 않았고 마케팅 비용을 최소로 책정했다. 주형이 데려온 사람들은 서업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팀을 부수고 다시 모아야 했다. 결국엔 어떤 부서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다가 대부분 이직했다.
그런 상황에서 주형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직함과 권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비공식적인 루트로 지인을 채용해 팀에 소속시키거나 사업을 위해 필요한 에이전시 계약을 코파운더들과 공유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코파운더들과 CPO의 갈등이 CPO의 퇴사라는 결론을 불러온 것 같았다.
우진은 딱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주형은 연봉도 높았지만 스톡옵션도 많이 받으면서 위어스에 합류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주형이 위어스가 폭삭 망하기 전까지는 절대 퇴사하지 않을 거라고 하며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주형은 몇 년 전 1조 원대로 외국계 플랫폼 기업에 매각되며 큰 화제가 됐던 모바일 채용 플랫폼의 초기 멤버였다. 당연히 꽤 많은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었는데, 몇 년간 회사가 망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제 스톡옵션이 종이쪼가리가 될 거라는 얘기도 나왔던 것이다. 실제로 회사는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었고 주식시장에 상장을 원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 시기에 여러 명이 스톡옵션을 정리하며 이직을 했고 주형도 그중 하나였다. 주형은 본인이 아마 가장 많은 스톡옵션을 정리한 초기 멤버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그렇게 이직을 하고 몇 개월 뒤 매각이 진행된다는 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주형과 함께 초기 멤버로 일했지만 스톡옵션을 팔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은퇴했다. 대부분 100억대 자산가가 됐고 몇 명은 다시 스타트업씬으로 돌아와 엔젤 투자자가 됐다는 얘기도 들렸다.
주형은 한 동안 잠을 잘 못 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이전 동료들이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으로 부자가 됐는데 심지어 본인이 그 일을 시작부터 함께 했던 것이다.
우진은 주형이 도박에 빠지거나 잠적하거나 미치지 않고 다시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형을 그래서 두 번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위어스에서는 어떤 위기가 와도 견딜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 주형이 퇴사를 한 것이다. 우진은 치킨 다리를 뜯으면서 주형의 신념과 회사 중에서 어떤 것이 무너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봤다. 정말 둘 중 하나는 위험한 상황인 것일까.
우진은 그날 밤, 주형의 번호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CPO님, 정말 퇴사하시는 건가요? 아무 말도 없이 가신다니 좀 당황스럽네요.” 의외로 금세 답장이 왔다. “내일 아침에 잠깐 볼 수 있을까요? 회사 근처 카페에서.”
다음 날, 카페 구석에 앉아 있는 주형은 전날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그는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좋은 제안이 왔어요. 내 역할을 좀 더 넓게 가져갈 수 있는 자리기도 하고요. 여기선 그게 한계였다는 건 우진 님도 아실 테고.” 우진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요즘 제품 방향도 정리 중이었는데…”
주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나도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에요. 근데 우진 님, 곧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거예요. 회사가 생각보다 오래 버티기 힘들 수도 있어요.” 우진은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위어스는 여전히 매출을 내고 있는 서비스였다. “어려워진다는 게… 투자 문제인가요?”
주형은 대답 대신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예요. 자세한 건 제 권한 밖의 이야기인 것 같네요. 우진 님이 위어스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그리고 위어스가 우진 님에게 어떤 존재인지 더 깊이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주형의 눈빛에는 체념과 후련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날 이후 우진은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단순히 조직의 리더가 회사를 떠난 것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무언가 큰 변화가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오늘이 어쩌면 폭풍전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