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스타트업의 필요악

기술은 정말 사람들의 시간을 아껴줄까

by 김준용

멤버십 가입 미팅을 마치고 우진은 라운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으로 서울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차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과 이제 막 기차에서 내려 서울에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섞이며 오가는 중이었다. 기차는 계속해서 발전했고 어김없이 사람들의 이동 시간을 줄여줬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이 넘게 걸리던 무궁화호 시절을 지나 KTX가 등장하면서 2시간 반까지 줄였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하고 KTX를 탔다. 기차는 어김없이 승객들에게 2시간을 되돌려줬다. 그 2시간은 100명이면 200시간, 10만 명이면 20만 시간이 됐다. 그런 시간은 가능성이다. 적어도 고속철도라는 기술을 사람들의 시간을 아껴 더 큰 가능성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만들고 있는 기술을 정말 그럴까?


위어스가 수공예품 장인들에게 직접 찾아가 물건을 보고 구매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 숨겨놓은 멤버십 가입이라는 덫에 걸려 원하지 않는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말 시간을 아낀 걸까? 이번 멤버십 가입 미팅에서 다크패턴과 관련해 논쟁을 벌이며 우진은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UX디자이너라면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무력감도 느꼈다.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해야 회사가 살아남고 서비스도 이어갈 수 있다는 주형과 기찬의 말에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다. 결국 매달 위어스에 접속하는 사용자 150만 명의 시간을 낭비하는 UX를 우진이 제 손으로 직접 설계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우진 님, 땅 꺼지겠어요.” 미팅에 함께 했던 개발자 나연이었다.

“이거 진짜 아니지 않아요? 저렇게 UX 설계해야 하면 저 그냥 그만둘까 싶을 정도예요.” 반가운 마음에 우진은 반사적으로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


“에이, 뭘 이런 걸로 그만둘 생각까지 하세요. 저는 제 밥그릇 어떻게 없앨 수 있을지 연구하는 일도 하고 있는 걸요.” 나연이 쌉싸름한 웃음일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진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제가 요즘에 AI로 코딩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거든요, AI코딩 툴은 점점 고도화되는 중이고 비즈니스 조직에서는 이걸 인건비 줄일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어요.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는 개발자들 다 잘려나가는 중이에요. 문제는 그 근거가 되는 일을 우리 회사에서는 제가 하고 있다는 거죠. ‘생성형 AI를 활용해 개발자를 몇 명까지 줄여도 되는지 알아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요, 제가.” 나연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나연은 사실 정규직이 아니었다. 위어스에서는 개발자 부족 시기에 급히 계약직 포지션을 오픈했었는데, 그 시기에 비전공자였던 나연은 개발 경력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원했던 것이다. 나연은 빨리 배우는 사람이었다. 1년짜리 계약직이었지만 그동안 팀의 핵심 기능을 대부분 그가 맡아서 관리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AI 자동화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자, 제일 먼저 조정 얘기가 나온 게 바로 그였다.


“솔직히 요즘엔 코드보다 리포트 쓰는 시간이 더 길어요. ‘이걸로 몇 명 줄일 수 있느냐’ 계산해야 하거든요. 그 숫자들 적을 때마다 제 이름도 같이 지워지는 기분이에요. 채용팀에서는 신입 개발자 채용을 다 막았다고 해요. 적어도 제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렇다고 보고서에 구라를 칠 수도 없는 거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퇴사하고 제빵 기술 배워서 베이커리 차리는 게 더 보람 있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우진 님? 저랑 같이 빵집 하실래요?” 나연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 져있었다. 슬프다기보단 허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우진은 나연과 같은 처지는 아니었지만 스타트업의 필요악에 문제의식에 함께 하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사실문제라기 보단 기업의 생존을 위해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더 적합한 답을 찾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논리에 대해 인정을 하면서도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는 생각이 우진의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저는 요리가 베이킹에는 완전 꽝이라서요. 하하.” 우진은 손사래를 치면서 그래도 위어스가 좋은 서비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다크패턴만 아니라면, 저는 위어스가 꽤 괜찮은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플랫폼이 폭리를 취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새로운 기술 아래 기존에 없던 새로운 판로를 만드는 건 절대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위어스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앱을 발전시키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투자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 많은 크리에이터분들이 저희와 함께 하고 소비자들도 그만큼 물건을 구매하는 것일 테고요.


위어스가 있음으로 인해서 오프라인 플리마켓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수공예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발전하면 할수록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을 메인으로 소비를 하게 될 거예요.” 나연은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우진이 어느새 뽑아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근데 이제 시장을 장악했으니 고객을 우리 손안에 두고 가지고 놀겠다는 거죠. 위어스가 오프라인의 점유율을 다 가져왔고 사람들의 습관은 온라인을 바뀌었어요. 그럼 더 잘해야 할 텐데 이제 우리가 시키는 대로 돈도 좀 더 내고 시간도 더 쓰라는 거예요. 고객 입장에서는 ‘물 빠진 놈 건져 놓으니 내 봇짐 내놓으라’는 격인 거죠.”


우진이 열변을 토하는데 나연이 웃음을 참지 못 하고 터트렸다. “아니 그런 속담 실제로 대화에서 인용하는 사람 처음 봐요. 우진 님 도대체 몇 살이신 거예요?” 우진이 언짢은 표정을 짓자 나연이 입술을 안으로 오므리며 다시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우진과 나연은 그렇게 1시간 동안 계속해서 불행 배틀을 했지만 누구 하나 승리하지 못했고 둘 다 더 불행해지는 방향으로만 대화가 흘러가서 결국 다음에 저녁을 같이 하며 못다 한 승부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리드의 호출이 와서 급히 뛰어가는 나연의 뒷모습을 보여 우진은 흐뭇한 미소를 짓다 창에 비친 본인의 얼굴을 보고는 황급히 표정을 숨겼다.

이전 06화6화. 누구를 위해 다크패턴을 만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