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누구를 위해 다크패턴을 만드나?

고객을 속이는 디자인에는 대가가 따른다

by 김준용

그로쓰팀 리드의 기찬과 CPO 주형이 미팅에서 충돌하고 난 뒤 우진은 주형의 의견에 최대한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어쨌든 UX팀은 주형이 담당하고 있는 프로덕트 조직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주형을 설득하지 못하면 우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설계할 수 없었다.


타운홀 미팅에서 CEO 진성이 말했던 것처럼 이번 달부터 수치가 정체되고 있었다. 데이터는 성장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종교와도 같았다. 그 누구도 데이터를 거역할 수 없었다. 이번 미팅은 그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프로덕트팀에서는 CPO 주형과 우진, 그로쓰팀에서는 리드인 기찬과 개발자인 나연이 참여했다. 우진은 나연과 타운홀 미팅에서 이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터라 익숙한 얼굴들과의 미팅이었다.


오늘 기찬의 복장은 의외로 정상적이었다. 처음 오피스를 방문했을 때 만난 태권도복을 입은 기찬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낯설게 느껴졌다. 주형과 기찬은 지난 미팅 이후 화해의 기류가 있었던 건인지 예상외로 서로에게 호의적이었다.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주제는 멤버십 전환율을 높이는 방향이었다. 미팅 30분 만에 회의실의 화이트보드는 여러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고 있었다. 누군가 방안을 마련해 와 발표하는 미팅도 있지만, 이렇게 급히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한 뒤 각자 디테일한 방법을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미팅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가벼운 동의를 얻으며 예상외의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멤버십 팝업이 조금 더 강력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서비스들은 2번, 3번 팝업을 띄워서 안내하는데 저희는 겨우 한 번 작게 뛰우고 끝이잖아요. 그리고 취소 버튼도 다른 앱에 비해 너무 커요. 멤버십 해지도 이렇게 쉽게 만들어 놓은 서비스가 없는데, 가입 안 하기도 너무 쉬워요. 팝업을 닫으면 한 번 더 강조하고, 닫기 버튼 없이 여백을 누르면 꺼지도록 하면 어때요?”


그로쓰팀 리드인 기찬은 해외 유명 서비스와 국내 유니콘 스타트업의 서비스의 사례를 들면서 말했다. 그들 내부적으로 유의미한 수치 상승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디자인이 업계 표준으로 굳어졌을 거라는 것이 근거였다.


CPO 주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한숨을 깊이 내신 뒤 대답했다.

“우진 님, 이거 테스트해 볼 수 있어요?”


우진은 굳어지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저건 명백한 다크패턴이었다. 백번 양보해 마케팅팀인 기찬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주형은 그런 식으로 반응하면 안 되는 거였다. 우진은 적어도 프로덕트팀이라면 다른 조직에서 요청하는 다크패턴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다크패턴을 테스트에 추가한다는 건 금지약물을 투약한 선수를 올림픽에 출전시켜 보고 이기는지 지는지 확인해 보자는 것과 비슷했다. 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현재의 테스트 구조 상 대부분의 경우 고객이 원치 않아도 클릭을 유도하게 만드는 다크패턴이 이길 수밖에 없었다.


“저… 이건 좀 심한 다크패턴 같아요. 사용자 경험이 많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요. 당연히 수치야 좋아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비스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은데요.”


우진은 주형에 대한 배신감과 화를 억누르면서 난감하다는 투로 최대한 부드럽게 얘기했다. 나연도 말은 얹었다. “저도 고객 입장에서 봤을 때 좀 성가실 것 같아요. 계속 따라붙는 호객꾼 같아요. 저 그런 거 진짜 싫어하거든요.”


주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이해해요. 근데 이번 건은 대표님이 직접 들여다보는 사안이에요. 다크패턴 안 좋은 거 저도 알아요. 근데 수치가 더 떨어지면 누가 책임이죠? 저희 이제 멤버십이 주요 매출원인데, 여기서 가입율을 못 올리고 후속 투자 못 받아서 회사 망하면 두 분이 책임질 수 있어요? 저도 책임 못 져요. 우선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봅시다.”


‘대표님이 직접 들여다본다고?’ 우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진성은 언제나 사용자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만들자고 강조하던 사람이었다. 타운홀에서 진성이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우린 고객의 신뢰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그 신뢰를 깎아내리는 제안이 바로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니. 우진은 갑자기 바닥이 꺼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알던 진성이 현재의 대표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번에는 기찬과 주형이 같은 편이 됐는지 쿵작이 잘 맞았다.

“저도 고객 입장에서 불편한 거 알아요. 근데 계속 봐야 조금이라도 더 혜택에 눈이 가고, 고객이 혜택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가입율이 높아진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자꾸 보여줘야 없던 마음도 생기는 거고 다른 서비스들도 그렇게 성장하고 있고요.” 기찬이 화면에 띄워놓은 여러 서비스들의 로고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진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더 본질적인 데 있다는 걸 이들도 모르지 않을 텐데 다크패턴으로 수치를 끌어올리는 가장 손쉽고 게으른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결국 멤버십 혜택이 매력적이지 않고 서비스가 확장할 수 있는 타깃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드니 다크패턴으로 고객의 시간을 뺏기로 결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수치를 높이는 방식인지에 대해서 우진은 의문이 들었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진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삼키고 조금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설득을 시도했다. “저는 이 디자인이 브랜드 가치나 신뢰를 크게 떨어트릴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같이 성장하고 있는 서비스에서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되는 게 독이 되지 않을까요?” 순간 우진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리더에게 반박을 하기 위해 약간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화가 난 것인지 그 순간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우진은 처음 자신이 UX를 시작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사람이 편리한 방향으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UX의 본질이었고 나이가 많거나 기술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도 동등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우진의 생각과 잘 맞았다. 기술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숫자가 오르면 뭐가 남아요? 고객이 우리 걸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 함정에 걸린 거잖아요.” 목소리가 이전보다 한층 높아졌다. “그걸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우진은 스스로를 다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단순한 버튼 디자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서비스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문제예요.”


회의실에는 가벼운 침묵이 흘렀고, 기찬은 말없이 텀블러에 담아 온 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우진은 슬쩍 기찬의 잔을 들여다봤다. 맥주였다. ‘씨발 미팅에 생맥주를 뽑아왔다?’ 우진은 눈을 의심했다. 순간 미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는 와중에 기찬이 입을 열었다.


“그건 살아남고 나서나 의미 있는 거 아니에요? 우리 다 뒈지게 생겼는데 신뢰니 뭐니 다 의미 없는 거 아시잖아요. 이거 테스트한 뒤에 결과 보고 얘기 나누시죠. 다크패턴이고 나발이고 결국 고객이 선택한 걸로 가는 겁니다.”


우진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이름이 기찬인가? 확실히 기찬은 싸가지가 없는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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