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의 이야기
CPO 주형과의 1:1 이후 우진은 빠르게 조직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실무적인 역량을 발휘해 여러 프로젝트의 UX디자인 업무를 도맡아서 했고, 주형의 말 대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여러 이해관계자를 만나보는 중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우진은 사내 축구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프로덕트 디자인 관련 본업이 끝나면, 거의 매일 늦게까지 신사업 TF 관련 기획 업무를 했다.
늦은 퇴근길에 폰부스를 지날 때면, CEO 진성은 항상 밤늦게까지 누군가와 아주 긴 통화를 하고 있었다. K였다. 7명의 코파운더 중 가장 영향력이 강하고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다만, 현재 군복무를 대체하는 산업기술요원으로 대전의 한 대학원 연구소에서 대체 복무를 하고 있어서 경영일선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경영진 명단에 없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지만 중요한 결정은 K와 함께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진성은 인정에 약한 타입이었고, 사람을 좋아했다. 그런 성정이 위어스를 성장시킨 수많은 파워 크리에이터들을 사업파트너로 함께 하도록 만들었다. 확실히 진성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리더였다. 반면 숫자를 만드는 것에는 약한 편이었다. 초, 중 고등학교를 평범하게 나와 대학을 졸업하고 창업을 해 20대 후반이 됐다. 진성에게 좋은 사업이란 필요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좋은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 외의 것들을 잘 몰랐고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규모 투자 유치는 달랐다. 투자자들은 다음 스텝을 보고 싶어 했다. K는 투자자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본인이 직접 나설 수 없기 때문에 매일 밤 진성을 설득하는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진성은 K의 마리오네트처럼 모든 지령을 다 수행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지만 대체로 진성의 판단일 거라 믿는 분위기였다. K가 많은 지분을 가진 창업자인 건 맞지만, 실제 회사에 출근해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비즈니스를 이어가는 건 진성이었다.
벌써 밤 11시. 우진은 1시까지 업무를 처리하고 갈 요량이었다. 회사에서 퇴근 택시비를 지원해 주기 때문에 대중교통 막차 시간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폰부스를 지나니 제품팀 오피스가 보였다. 개발자와 PO들은 절반 정도 여전히 사무실에 남아 일하고 있었다. 라운지에도 점점이 흩어져 업무를 하는 분위기였다.
우진은 문득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지 떠올려봤다. 회사원은 아주 간단히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대체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세계관이 다른 느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그렇게 일할 거면 하지 말라 하고, 반대쪽 사람들은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되묻는다. 우진은 스스로 무엇이 본인을 일하게 하는지 되짚어봤다.
우진 기원시에서 나고 자랐다. 기원시는 큰 공업단지가 있기로 유명했다. 기원시는 대한민국 최초의 계획도시였다. 나라에서 평범한 논밭에 큰 공장을 여럿 짓고 관공서를 밀집시키면서 공업과 상업을 발달시켰다. 대부분의 기원시민들은 공장에서 일하거나 공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제공하면서 먹고살았다.
우진의 가족은 기원시가 큰 도시로 바뀌는 기회의 순간을 잡지 못했다. 집안의 장손이었던 큰아버지는 기원시가 개발되면서 집안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정부에 팔아 큰 보상금을 받게 됐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했지만 사기를 당해 모두 날려버렸다.
우진의 아버지는 처음엔 한 자동차회사의 정규직으로 건물의 전기 설비와 관리를 담당하다가 IMF 때 하청업체의 파견직으로 이동한 뒤 타의로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이후 계약직으로 평생을 일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이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다. 결국 본인이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철밥통이 아니기 때문에 힘든 직장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다. 공무원은 누구에게도 부탁할 필요가 없고 나랏일을 한다는 명분도 있으니 최적의 일자리처럼 보였을 것이다.
부모님은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모두 교육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대부분의 교육비는 우진의 형에게 집중됐다.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 들어갔다. 반면 둘째였던 우진은 그런 압박에서 자유로웠다. 학원을 가는 대신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들과 축구를 하던 날도 있었다. 반면 우진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경험들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형이 부모님의 관심과 투자에 짓눌리는 동안 우진은 오히려 스스로 치열하게 살아남아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의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을 잘하는 것이 곧 큰 부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맹신하게 됐다. 이미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은 우연하게 찾아온 행운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걸 우진은 몰랐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얻는 빛나는 성취가 권선징악의 전래동화처럼 이어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집안과 여전히 부의 잔상 속에서 살던 부모님이 돈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압박하며 학업을 마친 우진은 좋은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어른이 됐다.
기원시는 공업단지에서 모든 돈이 흘러나왔다. 당연하게도 부모님은 우진에게 이공계 진학을 제안했지만, 우진은 디자인이 하고 싶었다. 누구의 이해도 바라지 않았고 실제로 이 진로를 이해하는 사람은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았다. 우진은 디자인이 예술에 비해 실용적이고 공학에 비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곧잘 했던 우진은 비실기전형으로 서울의 한 대학에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입학했고, 이후 선배의 권유로 웹 디자인과 마케팅 등을 대행하는 에이전시에서 인턴십을 했다.
우진은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어진 문제를 열심히 푸는 학생이었다. 회사에서도 방식은 같았다. 처음엔 일을 문제로 치환했다. 문제를 잘 해결하다 보면 아버지의 말처럼 꼭 공무원이 되지 않아도 돈과 안정에 대한 결핍이 해소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보다 더 멋진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4년간 그렇게 미친 듯이 일했던 우진은 어느 순간 스스로 결핍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일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효능감을 느끼고 나아가 팀에 기여하면서 영향력을 확인하는 본능적인 즐거움이 있었다. 어느 순간 돈 때문에 일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 순간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일했다. 그건 또 다른 결핍일 수도 있지만, 우진은 갈증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결핍은 제자리로 가기 위한 것이었지만, 갈증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 믿었다. 우진은 더 재밌는 일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결심했다.
지금 이 오피스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결핍이나 갈증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스톡옵션으로 큰돈을 벌기 위해, 본인이 직접 만든 서비스를 론칭해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일하고 싶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즐거움을 위해. 모두 정답이었다.
우진이 합류한 뒤 몇 달만에도 유연한 근무환경이나 독특한 복지제도에 끌려 이곳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떠났다. 스타트업이 중소기업과 다른 결정적인 요소는 지금껏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고, 그 수준을 다시 변하기 전만큼 끌어올리려면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능동적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은 그 속도와 업무량에 짓눌릴 수밖에 없었다.
문득 주형이 1:1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멀미를 하지 않아요. 아무리 빠르게 달리고 급하게 커브를 틀어도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스타트업에서는 먼저 운전대 잡는 사람이 운전자예요. 그 차에 몇 명이나 타게 될지는 우진 님의 능력에 달렸지만, 우선 아이디어를 내고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아요.”
우진은 위어스가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투자금으로 운영되는 부분이 많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이 서비스에 돈을 지불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서비스가 돈도 잘 벌 수 있다면 그건 성공적인 사업의 표본이다. 잘 되어야 했다. 아니 잘 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만약 위어스가 상장에 성공한다면 우진은 스톡옵션을 팔아 번 돈으로 다시 위어스 같이 좋은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마음이 우진을 쉬지 않고 일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