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스타트업 노동자의 직업윤리

내가 설 땅은 내가 차지해야 한다

by 김준용

120억. 미국의 벤처캐피털이 위어스에 이번 시리즈 C라운드에 투자한 금액이었다. 여러 투자자가 펀드를 구성했겠지만, 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금액과 메인 투자자였다.


“대체로 이렇게 투자받은 금액은 1-2년 내로 전부 소진해야 해요. 그 말인즉슨 그 기간 안에 무조건 약속한 만큼 성장을 이뤄내야 합니다. 무조건 매출을 높여서 외적으로 성장해야 해요. 그게 이 게임의 룰이에요. “


타운홀 미팅에서 알게 된 나연은 스타트업에서 잔뼈가 굵은 비전공자 개발자였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기획자로 일을 시작해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다가 결국 답답해서 내가 뛴다는 마음으로 개발을 배웠다고 했다.


“결국 엑싯을 위한 일이거든요. 투자자들은 돈을 넣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비싼 값에 팔고 손을 터는 걸 원해요. 근데 내가 봤을 때 우리 코파운더들 저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영 감을 못 잡는 것 같아요. 물론 그거야 나도 모르지만 갈피를 못 잡는 건 옆에서 보면 보이니까."


아마도 공격적인 인재영입이 첫 번째였을 것이다. 이미 화려한 라인업으로 기사도 많이 났고, 그 기사를 보고 지원하는 괜찮은 주니어들도 속속 합류하는 중이었다. 문제는 사람을 뽑는 것만으로 이 돈을 다 쓸 수 없다는 거였다.


두 번째는 마케팅이었다. 온라인상에서의 거의 모든 매체에 광고를 집행하고 있었다. 사실상 한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돈을 쓰는 것이다. 대부분 20대인 리더그룹의 특성상 TV나 오프라인 광고는 고려하지 않았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소비했는지 집계할 수 없는 매체들은 쓸모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인재를 영입하고 마케팅에 돈을 쏟아부어도 투자금이 남았다면? 세 번째는 사업의 확장이었다. 위어스는 새로운 라인업을 계속 만들고 플랫폼 안에서 시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신사업들에 투자했다. 신사업은 누구나 원하면 제안할 수 있었다. 리더만 동의한다면 업무 시간을 활용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사업성을 테스트해 볼 수도 있었다.


우진 역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입사했지만, 신사업팀에도 일부 업무를 할애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러 부서의 다양한 구성원과 이야기를 나눴고 어떻게 동료들을 설득해 부족한 일손을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CPO 주형이 보였다.


주형은 국내 최대 IT기업인 N사과 B사를 거친 베테랑이었고, 최근에 위어스에 합류했다. 제품 개발 프로세스 전체를 주도하고 특히 고객 접정에서의 앱 퀄리티를 최고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주형은 CPO로 오면서 기존에 함께 일했던 몇 명의 직원을 합류시켰다.


최고제품책임자로서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키려면 ‘내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을 피력했고 그에 따른 인사였다. 그런데 정작 리더그룹은 이들에게 어떤 권한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주형이 합류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보고 위어스에 지원하고 있는 점을 보면 코파운더들은 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그에게 CPO 자리를 제안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두렵겠죠. 애써 만들어놓은 자기들의 성을 내가 차지할까 봐. 조금만 얘기해 보면 알아요. 리더그룹이 나를 왜 영입했겠어요? 어린애들이 하는 회사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거야. 내 명함으로 투자자들한테도 충분히 어필도 되고 대외적으로도 구색을 갖춘 어엿한 회사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저도 몰랐죠. 걔네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제안한 건지."


스타트업에도 정치가 있었다. 오히려 더 역동적이고 노골적이다. 대기업에서의 정치는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 안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만, 스타트업에선 그 정치로 시스템이 변하기도 한다. 사업의 주인이 바뀌고 운전대를 뺏고 빼앗긴다. 신대륙에서 벌어지는 파워게임이었고 땅따먹기였다.


주형은 우진이 안타까웠다. 직원들에겐 코파운더 그룹의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신뢰받지 못했다. 일반적인 루트로 입사한 다른 경력직 직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결국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주형은 우진의 그런 상황을 꿰뚫어 봤다.


“우진 님, 아무도 땅을 거저 주지 않아요. 여긴 스타트업이잖아요. 본인이 일굴 땅은 스스로 만들어야 해요. 내 사람을 모으고 프로젝트든 TF든 진행이 되도록 밀어 넣어야 돼요. 그게 일이 되고 팀이 되고 사업이 되는 거니까.”


리더그룹이 틀어쥐고 있는 건 개발 인력과 예산이었다. 서비스 개발의 총책임자인 CTO의 권한을 리더가 통제하고 있었고, CPO인 주형의 조직에서 시도하는 대부분의 변화는 개발팀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배치됐다. CPO 사단은 결국 그림만 그리고 실현을 하지 못하는 조직이 된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형은 팀을 부수고 다시 만들었다. 결국 그가 데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직을 선택했다.


“우진 님도 아마 우리랑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거예요. 뭐든 해보라고 하면서 막상 하려고 하면 시간을 끌면서 뭉갤 거야. 근데, 어떻게 해서든 하세요. 속도를 내는 방법을 찾으면 돼요. 스타트업의 불안정성은 가능성이랑 같은 말이거든요. 불안을 이기고 가능성을 성과로 바꾸는 방법은 속도를 내는 것 밖에 없어요." 주형은 우진에게 조금 더 다가가면서 덧붙였다.


"자전거랑 같아요. 넘어질 것 같으면 페달을 밟는 수밖에 없어요. 업무시간에 회사돈으로 내 한계를 테스트해 보는 거죠 뭐.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기회를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정치를 하는 거예요. 스타트업에 다니면서 멈춰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요. 그냥 불안한 회사에 박봉으로 노동하는 것밖에 안 돼. 이런 회사에 다닌다는 건 새로운 일을 벌이고 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한계를 경험하는 거죠. 다른 사람 돈으로. 그렇게 해야 해요. 그건 말하자면… 스타트업 노동자의 직업윤리 같은 거죠 뭐.”


주형의 커피는 다 식어있었다. 그리고 우진의 커피에는 주형의 침이 잔뜩 튀었다. 스타트업 노동자의 직업윤리. 어쩌면 그걸 가진 사람들이 이 진동하는 쇳덩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게 아닐까. 로켓이 추락하지 않고 달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건 결국 그런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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