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족 여행기 in 파리 (2022.09.28~30)
몇 년 만일까. 새벽녘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감회가 새롭다. 코로나 이후, 제주도나 국내 여행만 다니던 우리 가족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해외여행이자, 최초의 유럽 여행인 것이다. 사실 결혼 10주년 여행이라고 컨셉을 잡았지만, 실제로 10주년이 되는 건 내년 2023년이다. 하지만, 내년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나. 다들 코로나로 인해서 느낀 게 많겠지만, 우리도 그렇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정말 중요하다. 약간은 무리해서라도 '갈 수 있을 때' 가기로 했다. 올해 이런저런 일로 정신이 없었는데, 이렇게 여행을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체크인을 끝내고, 라운지에 들어가서 조식을 먹었다. 면세점에서 숙면을 도와줄 목베개도 받았다. 이제 다시 국외 여행이 활발해졌는지,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북적거렸고 파리행 비행기도 거의 만석이었다. 코로나가 언제 있었냐는 듯, 다시 활기를 찾은 모습을 보다 보니 우리 가족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장장 14시간의 비행이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단 괜찮았다. 과거와 달리 재원이도 이제 다 커서, 혼자 여행 콘텐츠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고, 나 역시 영화도 보고 중간중간에 책도 여유 있게 볼 수 있었다. (참고로, 이터널 선샤인을 이제야 봤다.) 중간중간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는 것을 제외하곤, 전반적으로 비행은 무난했다.
문제는, 공항 도착 후에 발생했다. 사실 문제라기 보단 고생에 가까운 일이다. 공항에서 (일요일까지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는) 나비로 패스를 만들고 나서 집으로 향하는데, 프랑스 지하철에 너무 무지했던 것이 문제였다. 환승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동선에서 엘리베이터는커녕 에스컬레이터도 없었다. 물론 다시 돌아보면 있었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처음 파리에 온 우리에겐 직관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큰 케리어 2개를 끙끙대면서 계단으로 옮겼다. 지하철을 타는 과정도 너무 힘들었고,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도 생각보다 멀었다. 결국 무사히 찾아가긴 했지만, 거의 녹초가 되어 도착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를 탔어야 했는데, 지하철을 너무 믿은 게 탈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새벽 3시에 일어난 재원이로 인해, 나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났다. 분명 어제 늦게 잤기 때문에 푹 잤어야 했는데, 시차 적응 때문에 그런 것인지, 낯설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재원이는 그냥 바로 깨버렸다. 결국 우리 가족은 그때부터 6시까지 어제 정리하지 못한 짐들을 정돈하고, 밥을 먹고, 디즈니랜드에 갈 준비를 했다. 개인적으론 오늘 밤늦게까지 놀아야 하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쩌랴, 다 일어나버린 일인걸. 이른 아침이라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한잔 하러 길을 나섰다.
집을 나오는데, 드디어 '파리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집 바로 아래 빵집에서 냄새가 좋길래, 들어가서 빵도 샀다. 빵을 먹는 순간 어느덧 프랑스인이 된 느낌이랄까, 공기도 맑았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빠 엄마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다들 왜 이렇게 멋있는지, 프랑스인들의 패션 감각을 훔쳐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프랑스의 아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늘 익숙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잔 하고, 파리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인생 최고의 날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사람들의 각오를 입구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숨겨놨던 (?) 모든 미키 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 관련 굿즈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개성 넘치는 유럽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각종 캐릭터들을 다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여자 아이들은 모두 엘사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건 한국 여자 아이들과 동일한 병에 걸린 듯했다.
들어가자마자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신나는 음악과 춤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뒤이어 몇 가지 어트랙션을 탔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사람도 많지 않아서 대기가 짧았다. 25분에서 30분 정도 기다리면 하나 정도의 어트렉션을 탈 수 있었다. 허나, 점심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새벽 3시에 일어난 영향 때문인지 아내의 컨디션도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비를 피해서 잠시 들어가 있었는데, 이후 날씨가 맑아지면서 신데렐라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어트렉션을 했지만, 밤 9시에 예정인 '일루미네이션'을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보기 위해서 잠시 근처 호텔로 들어가서 쉬고 나오기로 했다. 처음부터 1박 2일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호텔에서 1시간 정도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고, 우리는 다시 나왔다. 저녁을 먹고 들어가서 그 유명한 '디즈니 일루미네이션'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한 시간 정도 대기를 하는 사이 우리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고,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불꽃놀이 그 자체는 놀랄 것이 없었다. 훨씬 더 화려한 공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건 역시 '캐릭터들과의 공감'이었다. 우리가 아는 캐릭터들과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즐겨 부르던 노래들.. 그에 맞춰서 터지는 화려한 불꽃과 분수가 어우러져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다. 우리 가족이 오래오래 기억될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결국 다른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캐릭터들을 반갑게 만난다는 것
어제 디즈니랜드에서의 하루가 아쉽지 않았던 것은 오늘 2일 차 티켓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에서 몇 번 되지 않는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자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잤다. 어제 늦게까지 일루미네이션 공연을 봤지만, 빠르게 호텔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 모두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간단한 조식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어제는 디즈니랜드 파크였다면, 오늘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라따뚜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고, 재미있다는 평이 많았다. 실제로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어트렉션이었다. 실제 영화 속 그 장면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게끔 만들어졌는데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살짝 어지럽긴 했지만, 기대만큼 재미있었다! 그 외 몇 개의 어트렉션을 더 했고, 겨울 왕국을 주제로 한 뮤지컬도 봤다. 실제 배우들이 나와서 연기도 하고 노래도 불렀는데,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았다. 엘사 드레스를 입은 수많은 여자 아이들에겐 잊지 못할 공연이 될 것 같았다. 재원이도 뮤지컬이 재미있다고 하더라.
공연을 마치고 달려간 곳은 어벤저스 캠퍼스. 올해 파리 디즈니랜드 30주년을 맞아, 2달 전인 8월에 오픈했다고 하니 정말 따끈따끈한 공간이다. 곧바로 스파이더맨 웹을 경험할 수 있는 어트렉션으로 달려갔는데, 생각보단 많이 기다리지 않고 체험해볼 수 있었다. 30분 정도 줄을 섰던 것 같다. 별다른 장치도 없이, 그냥 손을 뻗으면 4D 화면으로 거미줄이 뻗어나가서 악당을 물리치는데, 상당히 신기했다. 참고로 가족 중에선 아내가 어제와 오늘 모든 사격 경기에서 1등을 했다. 대박. ㅎㅎ 어벤저스 팬이라, 다른 어트렉션도 하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가족과 함께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없었다. 너무 아쉽지만 스타크 팩토리에서 밥을 먹으며, 히어로들을 구경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오는 길에 디즈니랜드에서 추억을 남길만한 몇몇 기념품도 구매해서 나왔다. 날씨가 어제에 비해서도 더 좋아서 기분 좋게 나올 수 있었다. 이후 라빌레 빌리지로 가서 아내가 쇼핑을 했고, 집에 도착해서 간단한 식사 후 잠이 들었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에게 파리 디즈니랜드는 강추다! 특히, 여유있는 관람을 위해 1박 2일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