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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Oct 03. 2023

간절하게 바라면, 정말 현실이 될까?

책 <기대의 발견> 리뷰 



불면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어젯밤도 잠에서 깼다. 그리고 한 동안 잠을 들지 못했다. 나는 원래 걱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생각이나 고민은 많은 편이지만, 의외로 잔 걱정이나 불안은 크지 않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바로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잠에 대해서 만큼은 살면서 거의 걱정한 적이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다.


아마도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서,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늘었다. 정확히 말해, 아예 잠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잠에서 깼을 때 다시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2시에 잠이 들고, 새벽 1시 30분쯤에 문득 깨는 것이다. 그러면, 거의 4시 30분에서 5시까지 잠에 들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1시간 정도만 자고 일어났다. 처음엔 이런 패턴이 당황스러웠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잠이 많은 편이라,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다음 날 일정이 걱정되었다.


차라리 3~4시쯤 깨버리면 아예 일어나 버릴 수도 있는데, 애매하게 일찍 깨어버리니 그러지도 못했다. 아주 잦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 분기에 1번에서 한 달에 1번 정도까지 그런 일이 있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다거나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도 없었기에, 그저 ‘이제는 내가 나이가 들었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다음 날에 대한 스트레스가 함께 찾아왔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란 생각 때문에 더 스트레스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최근에 구원자 같은 책을 만났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롭슨의 <기대의 발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 덕분에 나는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지만 예전처럼 스트레스받지는 않는다. 물론 아예 스트레스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줄었다. 불면증에 대한 나의 프레임을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기대의 발견>은 우리가 가진 기대와 심상이 우리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리한 책이다. 그중에서 불면증 파트가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오랜 고민을 상당히 해소시켜 준, 올해의 책 중 하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걱정은 우리가 실제로 잠을 잔 시간을 과소 평가하게 하는데, 이렇게 잠이 부족하다는 잘못된 믿음이 다시 그 자체로 심각한 걱정거리가 되어 악순환이 형성된다. 철저한 예측 기계인 우리의 뇌는 이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가 다음 날 일과시간에 마주할 힘든 일들을 제대로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며, 그에 따라서 우리는 모든 일에 전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동시에 생리적으로도 영향을 받는다. … 한 분석 연구의 저자는 “잠을 잘 못 잘 까봐 걱정하는 것은 잠을 잘 못 자는 것보다 더욱 강력한 병원체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P.242





자기 계발과 유사과학, 그 어딘가에서


나는 20대 시절, 자기 계발 책을 꽤 읽었다. 읽은 범주도 넓은 편이다. 국내 자기 계발 1세대라고 볼 수 있는 공병호, 구본형 작가의 책부터 <아침형 인간>을 비롯한 일본 자기 계발 서적들, 그리고 2009년쯤 <시크릿><꿈꾸는 다락방>을 필두로 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류의 책까지 다양한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며 성장을 도모했다. 그중에는 지금 돌아봤을 때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 책들도 더러 있지만, 상당히 괜찮은 자기계발 책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히스 형제의 <스위치><의지력의 재발견>, 그리고 <자기 혁신 프로그램>과 같은 책들은 그 논리나 주장이 탄탄해서, 아직까지도 종종 꺼내어 읽는다. 그중에서도 내가 꼽는 최고의 책은 역시 티모시 골웨이의 <이너게임>이다. 자기 계발 서적이라기보다 코칭 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생각의 프레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내게 있어 단 한 권의 인생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자기 계발 서적들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물은 답을 알고 있다>처럼 유사과학과 같은 책들이 많았고 나 역시 혼돈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목표를 100번 쓰면 이뤄진다”나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와 같은 ‘끌어당김의 힘’과 관련한 주장들이다. 더불어 당시 뉴에이지 과학이라고 해서 양자 역학이나 관찰자 효과를 미시 세계를 넘어 거시 세계까지 확대 해석하는 일이 많았다. 국내에도 <블립:What the bleep do we know><왓칭>과 같은 책에서 그러한 주장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암시를 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내겐 비약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비과학으로 매도하기에는 충분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했다. <긍정의 배신>과 같은 책들도 읽고, 균형을 찾고자 애를 썼지만 확신을 가질 순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리처드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꺼내어 읽는다. 철학과 영성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와 동시에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과학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러한 관점이 확신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맥락에 있는 것들을 연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성향을 스스로 경계하고자 과학 관련한 책들을 읽거나 논문을 쓰면서 좀 더 꾹꾹 눌러 담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 더불어 <안될과학>을 비롯하여 과학 관련 유튜브 채널도 자주 본다. 최근에는 유시민 작가와 박문호 박사의 대담을 아주 인상 깊게 봤다.

 



확신에 찬 성공학 유튜버들


서론이 길었지만, 결국 나는 답을 찾고 싶었다. “생생하게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와 “아무리 꿈을 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이에서 나만의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현재까지 나의 잠정적인 결론은 “나의 생각은 나 그리고 나와 가까운 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이다. 이번에 <기대의 발견>을 읽으며, 우리가 가진 '심상’이 우리의 몸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기존의 자기 계발 서적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에 따라서 나와 관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많은 실험으로 밝혀진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어, <기대의 발견>에는 음식과 관련한 수많은 연구가 등장하는데 완전히 똑같은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건강한”이라고 적혀 있으면 왠지 만족감이 덜할 것만 같은 기대를 품게 된다. 그래서 “푸짐한”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을 먹었을 때보다 포만감이 낮아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마음과 몸의 강력한 연결로 인해, 음식에 대한 기대가 포만감뿐만 아니라 영양소의 흡수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의 힘은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내가 가진 생각의 틀이 내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우주나 세상으로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 마치 미시세계에서의 논리인 ‘양자역학’과 ‘빛의 이중성’을 가지고 모든 것은 입자이자 파동이고, 내 생각도 파동이니 나는 세상의 중심이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식의 비약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최근 유튜브를 보다 보면, “끌어당김의 법칙이 존재하는 이유”처럼 과거에 유행했던 시크릿의 주장을 많이 볼 수 있다. 미시세계의 법칙을 거시세계로 그대로 가져다 쓰려는 무지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유튜버들의 확신이다. 


예전과 한 가지 달라진 것은 그때는 몇몇 저자들의 책을 독자들이 소비하는 것에 그쳤다면, 지금은 간증하듯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이뤄왔는지 말하면서, 지나친 확신을 갖고 청자들을 설득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대중들은 확신에 더 쉽게 반응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유튜브는 다소 위험한 도구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일단 먼저 유명해지는 걸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것으로 다시 유명세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특히 개인의 경험을 가지고 세상은 역시 그러하다는 식의 논리의 비약은 가장 조심해야 한다. 


자기 계발 서적을 한참 읽을 때는, 나 또한 그러한 사례를 많이 경험한 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빈칸을 채우고야 마는 뇌의 작용’에 가까울 뿐, 진실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좀 더 다양한 렌즈로 비춰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과학자의 눈으로 불편함을 동반해서 철저하게 검증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본인에게 편한, 한 가지 렌즈로 세상을 보다가는 큰코다칠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확신하는 사람을 가장 경계한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자, 동시에 우주의 먼지다." 


나는 온 세상을 경험하는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이로운 프레임을 가져다 써야 한다. 분명한 것은, 내 몸은 내가 가진 생각 혹은 내가 나에게 거는 대화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굳이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기보단, 그 과정에서 나에게 밝은 면을 찾고, 긍정적인 기대감을 통해서 에너지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왕 잠을 못 잤다면, 그것으로 하루를 망치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낫다. 관련한 사례는 <이너게임>이나 <기대의 발견>에 아주 많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또한, 나는 그저 우주를 구성하는 하나의 먼지에 불과하다. 나는 세상을 경험하는 유일한 주체이지만, 세상은 그런 나와 상관없이 돌아간다. 수많은 주체들이 서로 관계 맺고, 각자의 의지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나에게 오늘 특별한 일이 일어날 거야”라거나 “나는 누구보다 운이 좋아.”라는 식의 세상에 대한 무조건적 기대보다는 니콜라스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블랙스완>에서 말하듯 “세상은 우연과 무작위로 돌아간다”는 관점으로 살아가야 한다. 나에게만 찾아오는 특별한 일이나 행운을 예측하거나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부단히 노력하고 무작위에 대비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돌고 돌아, 나는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에서 언급된, '스톡데일 패러독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눈앞의 현실과 냉혹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짐 콜린스와 스톡데일 장군의 대화를 끝으로 글을 마친다. 믿음과 불신을 공존시키는, ‘낙관적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터득한, 유일한 자기 계발 원리다. 


짐 콜린스: “실제로 그곳에 있었고 이야기의 끝을 알지 못하던 당신은 어떻게 그 상황을 견뎌내셨습니까?”

스톡데일: “나는 이야기의 끝에 대한 믿음을 잃은 적이 없었어요. 나는 거기서 풀려날 거라는 희망을 추호도 의심한 적이 없거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 결국에는 성공하여 그 경험을, 돌이켜 보아도 바꾸지 않을 내 생애의 전기로 전환시키고 말겠노라고 굳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짐 콜린스: “견뎌 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스톡데일 : “낙관주의자들입니다! 낙관주의자들이란 ‘크리스마스 때까지 나갈 거야’라고 말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이면 나갈 거야’라고 말하죠. 그다음은 추수감사절, 그리고 다시 다음 크리스마스를 고대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상심해서 죽지요.”

스톡데일 : “이건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 결단코 실패할 리는 없다는 믿음과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규율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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