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정욱 Oct 09. 2024

HR이 바라본 흑백요리사: 팀전으로 배우는 경쟁 전략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대한 4번째 글이다. (1편 일의 의미, 2편 공정한 평가, 3편 리더십흑백요리사 2번째 팀전은 리더십을 넘어, 경영에서 '경쟁 전략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데 개인적으론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게임 설계를 왜 이렇게 했을지, 곱씹어보게는 몇 가지 요소가 있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스포일러가 나올 수밖에 없기에, 혹시 시청하지 않은 분들은 시청 후 글을 읽는 걸 추천드린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팀전으로 배우는 경쟁 전략 


1. 승리 조건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 


- 모든 참가자 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전략가이자 리더는 최현석 셰프였다. 그는 "지금 우리가 어떤 게임을 하는지"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팀원들을 모두 생존으로 이끈다. 다만, 그 역시 본인의 판단에 대해서 100% 확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참가자들이 각자 자신의 돈을 직접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택한 고가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 즉, 어느 정도의 배팅을 한 전략이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전략은 꽤 합리적인 배팅이었다. 실제 게임에서도 승리 조건은 고객들의 만족도나 재방문 의사가 아니었다. 오로지 '매출'이었다. 높은 가격에 대한 불만을 갖더라도, 그건 이번 평가요소가 아니었다. 만약 평점이나 만족도가 승리 요소라고 밝혔다면, 아마 최현석은 다른 전략을 펼쳤을 것이라. 



2. 팔로워의 전략은 달라야 한다. 


- 제작진은 재미있는 장치를 설계했는데, 바로 각 팀에서 한 명의 멤버들을 차출해서 새로운 팀을 만드는 조건이었다. 언듯 봤을 때 이 조건은 새로운 팀에 충분히 불리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실제로 그 팀이 최종 탈락했기 때문에 '역시 불리했구나'라는 확증 편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팀은 유일하게 '다른 팀들의 전략'을 모두 파악하고, 그에 맞춰 대응할 수 있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 생각해 보자. 모든 팀들은 동일한 시간에 게임을 시작했고, 메뉴명과 가격을 모두 정했다. 다른 팀들을 정보를 파악하고 난 뒤에, 만약 메뉴를 수정할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몇몇 팀들은 분명 전략을 바꿨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선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 새로운 팀이 만들어질 기회를 줬다. 힌트를 살짝 비틀어서 던진 것이다. 다른 팀에 비해 준비 시간이 부족하다는 페널티가 있지만, 만약 새로운 팀에게 다른 팀과 동일하게 24시간을 줬다면 100% 승리했을 것이다. (물론 전략적인 판단을 한다는 가정으로) 그만큼이나 경쟁 상태에선 상대방을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 새로운 팀이 만들어졌을 때, "충분히 판을 흔들 수 있는 '메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바람과는 달리 새로운 팀은 그들의 가장 강력한 강점인 '경쟁사들의 정보'를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보지 못했던 것'을 이번 기회에 만회해 보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고 느꼈다. 물론 이번 <흑백요리사>는 요리 대결이 맞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라운드의 승리 조건만 보자면 '경영 대결'이었다. 소비자와 경쟁자들의 행동을 예측해서, 가격 전략을 구상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승리하는 것. 그러한 맥락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서 한편 아쉬웠다. 


- 예를 들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른 메뉴들은 대부분 해비한 요리 중심이다.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강력한 애피타이저 요리. 그리고 식사 후 디저트가 없으니 비싼 디저트도 만들고, 메인 요리도 다른 팀에서 만들지 않는 메뉴로 한방을 준비한다면 어땠을까? 고객들이 가장 먼저 찾고, 또 가장 마지막에 반드시 먹는 요리로 포지셔닝되었을 수 있다. 고가로 측정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대체할 수 있는 메뉴가 없기 때문에 '상대적 우위'를 가질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합리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승리하지 못했을 순 있겠지만, 적어도 다른 가게와 차별화된 전략을 선보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것은 분명했다. 여하튼, 많이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아쉬움도 컸다. 제대로 된 메기가 되어서, 다른 팀들이 좀 더 긴장감을 마련했으면 더욱 재미있었을 텐데 말이다. 



3. 전략을 세우되, 고객과 환경에 맞춰 기민하게 적응해야 한다. 


- 최종 우승팀은 최현석 셰프가 이끈 팀이었고, 사실상 기획에서 이미 이기고 들어간 게임이었다. 앞서 말했듯, 최현석은 참가자 중에서 유일하게 '지금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었고, 그에 맞춰서 고가 전략을 구상했고 모든 요리를 프로세스화시켰다. 그래서 최소한의 시간으로도 높은 퀄리티를 내보낼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이건 다양한 레스토랑을 경영해 본 적이 없는, 1인 가게를 운영한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텐동은 너무 맛있는 메뉴였지만, 만드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다. 먹방으로 유명한 참가자들 입장에서, 먹는 타이밍이 뺏기는 느낌이 들었고, 다음 주문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 그러면서도, 모든 음식을 '효율적으로만' 대응한 것도 아니다. 메뉴 중에서 '캐비어 알밥 천국'의 킥은 김이었는데, 그 김을 굽기 위해서 들어간 노력은 효율성과 거리가 멀었다. 한 장 한 장 정성을 들였고, 결국 차이를 만들었다. 무엇을 '효율'적으로 하고, 무엇을 '효과'적으로 할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경영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 에드워드 리 셰프의 기민함도 돋보였다. 식재료에 대한 낮은 이해도로 인해, 적절한 고기를 구입하지 못했다. 이미 많은 고기를 구입해 두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 다시 준비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은 현실 경영과도 닮았다. 누군가는 그저 좌절해 버릴 수도 있지만, 에드워드 리는 고객들의 반응을 세심하게 살폈고, 조리법을 바꿔버렸다. 정지선 셰프도 잔반통에 가서 고객들이 무엇을 남기는지 살폈는데, 그런 기민함이 그들을 최고의 전문가로 만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전략은 철저하게 짜되 환경에 맞춰서 유연하고 기민하게 적응해 나가는 애자일 방법론이 떠올랐다. 짧은 시간에 리더십에서 경영 전략까지 폭넓게 다룰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시리즈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HR이 바라본 흑백요리사: 최현석과 트리플스타의 리더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