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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Dec 18. 2021

희한한 위로, 강세형

아 이젠 또, 언젠가 천혜향만 봐도 슬퍼지겠네...


모임, 열다섯 번째

211207, 12월의 제주도 사진으로 대체하며 12월의 첫 모임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S: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Y: 정말 강세형 작가를 떠나서 그냥 강세형이라는 사람의 삶에서 생각지도 못한, 제목처럼 엉뚱한 곳에서 위로를 얻는 그런 느낌이었어.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른 결이었던 것 같아. 굉장히 읽기 쉬웠고 그냥 강세형 씨의 일기장을 들여보는 느낌이랄까? 나는 오히려 이 사람이 라디오 작가이기도 하니까 다양한 사연들을 엮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인트로에 뭔가 자기가 되게 어려운 일을 겪었다고 하길래 되게 무겁게 담겨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야기가 굉장히 담백하면서도 간결하고 정말 모든 이들에게 좀 적용될 수 있는 위로 같았어. 


S: 저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진짜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었고, 뭔가 자신의 연약함을 그냥 있는 그대로 내보낸 것 같은... 예전에 한동안 어떤 라디오 작가 책을 다 읽었었는데, 그 사람 책은 라디오 사연처럼 한 장 한 장 묶어서 쓰여 있거든요. 근데 이 책은 구성이 달라서, 라디오 작가라고 말 안 했으면 몰랐을 거 같기도 해요. 


제일 첫 질문으로, 

"어쩌면 위로는,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작정하고 내뱉어진 의도된 말에서보다는,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 

위로란 무엇일까요? 


Y: 제일 좋은 위로는 공감일 것 같고, 100% 공감하지 못하는 입장일 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함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제일 크게 위로받은 때는 공감인 것 같아. 내 처지에 대해서, 내 심경에 대해서 공감해 줄 때, 정말 그 사람의 입장과 그 사람의 그런 배경을 다 알고... 그러니까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에서 가능한 거겠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것만큼 큰 공감이 없는 것 같고, 그 공감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 같아. 


S: 근데 그게 안됨에도 불구하고 같이 있어준다는 건 - 


Y: 엄청 큰 노력이거든. 사실 공감하지 못하는데 그 사람 곁에 있어준다는 건 오히려 그 상대방 입장에서는 굉장히 피곤한 일일 수 있어. 난 공감이 안 된 상황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 흥미를 쉽게 잃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으로 배려하여 같이 있어준다는 건 정말 노력해서 주는 참된 위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S: 공감이 왜 그렇게 큰 위로를 가져다줄까요?


Y: 공감을 받고 싶은 사람의 상태는 그렇게 장황하게 얘기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상태일 거거든. 


S: 아, 말 된다.


Y: 그런 상황에서 부연 설명 없이 딱 한마디, "나도", "나도 그래", 그 한마디는 그냥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수준의 한마디라고 해야 될까... 


S: 그럼 만약에 아까 언니가 말한 것처럼 완벽한 공감을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그럼 그다음으로 좋은 위로는 그래도 같이 있어주면 - 

 

Y: 응, 그게 예를 들어 네가 말한 것처럼 지속적인 연락을 한다거나 그런 게 될 수도 있고, 그냥 내 옆에서 토닥여준다거나 그런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냥 나는 장례식에 와서 함께 있어줬다 그것만으로도 나한테는 엄청난 위로였어, 그 순간뿐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그 순간을 되뇔 때 굉장히 큰 위로가 된 것 같아. 그 순간에 준 위로가 굉장히 긴 여운으로 남는 거지. 너는? 


S: 저는... 누군가 살펴봐 주는 느낌이 들거나, 그냥 일반 안부 인사보다 하나 더 나아간 그런 보살핌을 느낄 때, 혹은 상대방이 내 안에 또 다른 무언가를 본 것 같을 때, 그럴 때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공감일 수도 있겠죠. 왜 전에 제가 A에서 일할 때 "나는 쟤가 싫은데, 죽어라고 열심히 하는 건 인정한다"는 말이 나한테는 그 어떤 칭찬보다도 의미 있고 위로로 다가왔다고 했잖아요. 아, 그 사람은 내가 죽어라고 열심히 하는 걸 아는구나, 누군가 그 모습을 알아줬다는 게 "나는 네가 정말 좋아"보다 더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또 그런 거 있잖아요, 약속을 좀 바꿔야 될 것 같다고 하면 그냥 바꿔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슨 일 있어?" 한 번 더 물어봐주는 사람도 있고... 


[SKIP]


Y: 나는 강세형 이 사람의 캐릭터도 좀 신선했던 것 같아. 아싸에 가깝지만 뭔가 되게 자기 색깔이 뚜렷한 아싸라고 해야 될까? 자기의 가치관도 굉장히 뚜렷한 것 같고, 그 뜻은 자기를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한다기보다 그냥 자기 상황을 인정하는 것 같은. 여기서도 얘기하는 게 자기는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욕망의 형태가 조금 다를 뿐이라고, 어느 자리에서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조용히 듣는 사람이 되고 싶고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보다 내가 그들을 관찰하는 쪽이 더 즐겁다고 하는 이런 맥락에서 너는 어떤 사람인 거 같아? 너는 좀 더 듣는 입장이야 아니면 말하는 입장이야? 나는 답을 알 것 같지만 (웃음).


S: (웃음) 나는 답을 모르겠어요. 전 원래는 말하는 타입인데, 같이 있을 때 내가 별로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있죠. 근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 사람이 내가 듣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그 사람하고 있을 때는 상대방한테 맞추게 되는 거 같아요. 보현이랑 있을 때만 해도 훨씬 많이 들어요. 근데 언니랑 있을 때는 골고루 얘기하거나 아니면 내가 많이 한다고 느끼지 적게 한다고 느끼진 않는데, 보현이랑 있을 때는 6:4에서 7:3 정도로 내가 적게 하는 편이라고 느껴요. 그건 상대방이 나한테 바라는 역할에 따라 맞추게 되는 거 같아요. 언니는요?

 

Y: 나는 이런 질문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학교 때만 하더라도 나는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것 같은데, 지금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좀 말을 덜 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아. 그간의 크고 작은 일들의 영향도 있겠지만, 또 그만큼 내 이야기가 무거워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해.


S: 그러네요. 

 

Y: 그냥 예전에는 두서없이 나의 철부지 같은 이야기들을 필터링 없이 막 하고 다녔고, 나도 재밌고 듣는 사람도 즐거워하는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말하기를 즐겨했던 것 같은데,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철부지 같고 가벼운 이야기보다는 좀 더 진중한 고민들이 두터워지다 보니... 


내가 그걸 제일 느꼈던 게, 고등학교 친구를 대학교 졸업할 때쯤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내가 생각했던 그 친구의 모습이 아니었고 그 친구도 나를 생각했을 때의 모습이 아니었던 거야. 서로의 모습이 바뀌어 있었어. 이제 서로가 낯선 거지. 그리고 그 뒤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는데, 그냥 그런 것처럼 서로의 이야기들이 달라지면서 나의 대화도 맥락도 자연스레 바꾸는 거 같아. 


S: 맞아요. 삶이 심오해지면서, 뭔가 할 수 없는 얘기들이 많이 생기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그냥 1부터 10까지 웬만해서는 거의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서로 말 못 할 사정들이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예전만큼 나 자신을 오픈할 수도 없고, 그러면 또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한정되어 있고... 


여기에 친구들이 나오잖아요. 왜 자기들끼리 한주의 힘듦을 등수로 매기는 게 되게 재밌었단 말이에요. 

"본인이 1등이라는 건, 나머지 세 사람이 안 아프고 무탈한 그나마 평온한 한 주를 보냈다는 얘기.
그건 닌자가 우리를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방식." 

언니는 언니가 누군가를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방식이 어떤 것 같아요?


Y: 나는 내가 받았던 위로의 좋은 점들을 반복하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 나도 최대한 그 사람의 처지와 입장이 같을 경우 공감을 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인 것 같고. 예를 들어 엄마랑 대화를 할 때도 엄마의 입장을 쭉 듣다 보면 사실 내가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훨씬 많은데 내가 해야 할 일은 평가가 아니라 엄마의 심정에 대한 공감이겠구나, 그래서 최대한으로 공감을 하려고 하는데 그게 내가 여유가 있을 때는 가능한데 또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그리고 공감이 어려울 때는 나도 최대한 곁에 있고 싶어 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우리의 삶이 여의치 않은 환경일 때가 많으니까 그럴 때는 먼저 연락이라도 하려고 해. 같이 걷고 있다는 게 느껴질 수 있도록 뭔가를 해보려고 해. 요번에 결혼 준비하는 친구도 되게 고민이 많고 힘들어 보였거든. 근데 내가 결혼을 안 해봤으니까 뭔가 공감이 안되고 오히려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는 거야.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이제 묻지도 않았어. 내가 물어보는 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집은 어떻게 됐냐고 묻는 그런 것들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대신 진짜 사소한 걸로 연락을 자주 했어. 오늘 날씨가 어떠네, 오늘도 화이팅~! 이런 식으로 그냥 그 맥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론적으로는 자연스럽게 공유를 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그게 나름 도움이 됐던 것 같아.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너의 시간을 너 혼자 보내는 게 아니라는 걸 그 사람이 느낄 수 있게 노력하게 되더라고. 연락이 됐든, 실제로 같이 있는 것이든, 진짜 기도를 해주든 그냥 그 길에 너 혼자가 아니라는 걸,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한다는 찬양 같이... 너는?


S: 맞아. 저도 연락인 것 같아요. 나는 아무래도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단순히 연락을 하는 느낌이라기보다 그 사람한테 글을 한 편씩 보내는 느낌으로 곁에 있어주려고 해요. 내가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만약 상대방이 우리 지금 만나!  같은 요구를 하면 그걸 들어주면 되는데, 보통 어디선가 혼자 조용히 끙끙대고 있는 걸 나는 그냥 옆에서 혹은 멀리서 쳐다보고 있는 거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렇게 글을 써서 나누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근데 여기에 뭔가를 조금 더 가미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내가 방어 기제를 낮출 수 있는 사람이면 그 글을 보낼 때마다 나의 아픔 한 조각을 같이 보여줘요. 선배한테는 그래요. 연락을 할 때마다 과거의 아픔을 하나씩 꺼내서 보여주게 되더라고요. 밥 먹었어? 보다는 조금 더 나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밥 먹었어? 나는 오늘 뭘 먹었어. 근데 사실 내가 먹은 이 음식에 이런 이런 이야기가 얽혀 있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셨던 음식이거든, 이런 식으로.


Y: 그것도 공감이네. 

 

S: 그럴 수도 있어요. 맞아요. 그렇죠, 공감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 외에는 누군가한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아직 못 찾았어요. 


Y: 이 사람도 되게 힘든 시간들이 있었잖아. 뭔가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도움을 주는 쪽이 아닌 도움을 받는 쪽에 서 있다는 것이 어쩐지 미안하고,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하라는 질책을 받으면서 또 그게 미안해서 더 미안했다고. 너는 만약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도움을 주는 쪽이 좋겠어 도움을 받는 쪽이 낫겠어? 

 

S: 선택해야 된다면, 진짜 내가 꼭 하나밖에 선택을 못 한다면 나는 받는 쪽으로 하고 싶어요. 나는 내가 슈바이처나 테레사 수녀는 아니기 때문에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받는 쪽을 하고 싶은데, 내가 받은 사람한테는 그만큼은 되돌려줬으면 좋겠어요. 계산기 두드리듯이 할 순 없지만, 한 번씩은 갚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근데 재밌는 건, 내가 먼저 빚을 지는 케이스들 있잖아요. 그런 경우는 내가 아무리 갚아도 다 갚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내가 먼저 도움을 받았을 때는 아무리 갚아도 갚아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니는요? 


Y: 그 마음이 뭔지 알 거 같아. 최근에 친구의 결혼식이 아무래도 큰 일이었는데 둘 다 나한테 도움을 준 사람들이거든. 이제 나는 보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나도 그들의 행복한 예식에 도움을 주고 싶었어. 그래서 그날 다른 결혼식에 비해 빨리 가기도 했지. 신부 대기실에 들어갈 때부터 같이 들어가서 사진도 찍어주고 케어해 주고 그랬는데 나는 그냥 그 순간이 되게 좋았어. 친구의 예쁜 모습을 보고 나도 그냥 마음이 너무 흡족한 거야. 그래서 나는 정말 기쁘게 영상을 찍고 일을 도왔는데, 그날 참석한 다른 지인들이 오늘 너무 고생이 많았다고 힘들었겠다 걱정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되려 난 너무 기쁘게 했거든. 그래서 나도 네 말처럼 다 갚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도움을 줄 때 나의 마음이 훨씬 기뻐. 나도 이 사람과 비슷하게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한없이 미안했어. 그냥 한없이 미안하고, 그때 당시에 느낀 마음들은 진짜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어떻게 고마움을 보답하지? 적당한 표현이 생각 안 나는데, 고맙지만 되게 무겁기도 했어. 근데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니까 정말 기뻤던 거 같아.


S: 책에 냉장고를 수리해주러 오는 청년 이야기가 나오는데,

"청년은 일을 할수록 자신이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시간만큼은 참 좋더라고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마음도 편해지고요.'"

언니는 그렇게 피로 회복을 하기 위해 무얼 하나요? 언니만의 취미 시간?


Y: 나는 운동. 나는 오히려 쉬고 싶을 때는 몸을 쓰는 게 머리를 쉬게 하는 것 같아서 운동을 해. 특히 회사를 다니면 더더욱 그런 게 필요하고, 그러고 운동이나 걷기는 어쨌든 내가 나 스스로 혼자 하게 되는 거니까 오히려 나의 생각을 좀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 같아. 


S: 그렇죠, 걷는 게 크죠. 천재들은 걸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스티브 잡스도 그렇게 걷는 걸 좋아했고, 면접 대신 몇 시간씩 같이 걷고 그랬다는 기사를 봤던 거 같아요. 


Y: 오, 괜찮다, 면접을 걸으면서 보는 것도.


S: 그렇죠, 한 바퀴 숲을 쭉 걷고 나면 그 사람이 보이니까...


저는 원래는 별이랑 노는 거였어요. 별이랑 노는 게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이었고, 별이는 항상 거기 있고 좀 미안한 얘기긴 한데 내가 싫어도 나를 벗어날 수가 없잖아요 (웃음). 거기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어요. 사람은 나를 거부할 수 있으니까 귀찮아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하는데, 얘는 좋든 싫든 나와 함께 살아야 되니까 도망 다녀도 내가 쫓아다니고 (웃음).

 

근데 별이가 가고 나서는, 요즘에서야 조금씩 알게 되는 재미인데 기도인 거 같아요. 왜냐하면 하나님도 도망을 못 가 (웃음). 그게 되게, 요즘 들어서 묘하게 위로가 돼요. 전에는 주중에 한 번 정도 각 잡고 기도를 했다면, 요즘에는 그냥 자기 전에 매일 찬양 틀어놓고 그냥 궁시렁 궁시렁 하나님 오늘 궁시렁 궁시렁 하고 대화를 하는 거 같아요. 아마 기도가 재밌어진 게, 예를 들어 내가 어젯밤에 어떤 기도를 했는데 다음 날 관련된 일이 일어났어, 그러면 정말 어젯밤에 내 이야기를 다 듣고 계셨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더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하나님도 싫다고 도망가거나 귀찮아하시지도 않으니까 부담이 없잖아요 (웃음). 언니 말대로 나를 제일 공감해 줄 수 있는 분이죠.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리고 나의 모든 면을, 좋은 것 안 좋은 것도 다 알아. 감출 것도 없어. 그러니까 거기서 오는 시원함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그런 재미가 있어요.


Y: 근데 그렇게 되면 영적으로 깨어 있을 것 같아, 그런 기도에 대한 재미가 붙으면. 


S: 확실한 건 뭔가 내 생각을 우기려고 하는 게 많이 줄었어요. 내 뜻대로 되는 게 꼭 좋았던 것만은 아니니까, 뭐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그대로 되지 않을 때도 그냥 훨씬 빨리 쉽게 수긍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게 최선이 아니었을 거라는 게 수긍이 되니까 전환도 조금씩 빨라지고... 예전에는 이 길이 아닌데도 그 길을 계속 가다가 한 10km 가서야 '이 길이 진짜 아닌가벼' 하고 돌아왔다면, 이제는 한 300m만 걸어가도 아닌가 보다 하고 더 빨리 돌아오는 게 조금은 되는 것 같아요. 


또 책에서

"남들보다 예민해서 자주 아프고 자주 외로워지지만,
그래서 또 나는 나를 위해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나에게 필요한 일들을 주워 모으는 일,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나만큼이나 예민해 불쑥불쑥 외로워지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일." 

자신의 약점이 또 자신의 강점이 되고 정말 동전의 양면처럼 본질은 같은데, 언니의 약점인데 언니의 강점인 것? 언니의 부정적인 어떠함 때문에 찾은 언니만의 소중함, 특별함? 


Y: 나는 우선은 내 직업. 나는 돈에 진짜 약한 사람이거든. 어렸을 때부터 재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늘 생각이 되게 많았고 결핍이 컸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그걸 채우기 위한 경제 활동도 바로 시작했고. 나는 항상 돈에 대해 약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돈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면서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졌어. 약간 진절머리 나는 것도 있겠지만, 인사 업무도 같이 하다 보니 돈이 온전히 다는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그래서 회사에서는 당연히 돈, 성과, 숫자로 표시되는 이익을 중요시 하지만 난 오히려 그것보다 다른 것들에 대해 더 배우는 것 같아. 숫자가 다가 아니구나, 이 숫자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스토리가 있는지를 더 보게 되고, 그것 때문에 얻어진 이 숫자에 대한 게 새롭게 와닿는 것 같아. 그래서 나의 약한 부분인 돈에 대해 다루는 직업을 가짐으로써 돈이 다가 아니구나를 깨우친다는 건 결론적으로는 내가 훈련이 필요한 영역인 걸 아시고 계획하셨을까 생각도 하게 됐지. 


또 나의 아픔, 나의 슬픔의 영역인 죽음이... 이전에는 그렇게까지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고... 죽음이라는 건 여전히 나한테 어려운 주제이긴 하지만 정말 우리가, 그러니까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진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인 것을 허무 지게 인정해버린 사건이 아무래도 그렇게 소중한 사람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같은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그래서 그건 나한테는 큰 변화지. 


너는? 


S: 저는 제가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니까 그게 되게 약점이기도 한데, 대신 그 같은 성질 때문에 남을 더 섬세하게 챙기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사람들의 말에 너무 예민한 것이 저도 되게 스트레스고 덜 신경 쓰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에 예민한 대신에 거꾸로 보면 그만큼 더 섬세한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섬세한 만큼 사람들을 챙길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지는 거 같고요. 요번에 면접 보러 간 동기도, 면접 보러 가기 전날 회사에서 얘기하고, 저녁에 카톡 하고, 그다음 날 오전에 카톡 하고, 점심때 끝났다고 연락 오자마자 받고 그런 식으로 더 섬세하게 챙기게 되더라고요. 그 대신 또 모든 것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을 하기도 하니까. 둘 다 나인 거겠죠, 둘 다 내 모습이겠죠. 


Y: 그러면 네가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 같은데, 책에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나오잖아. 어머님은 어떻게든 뭔가를 챙겨주려고 하고, 강세형 씨는 부담스러워하면서 오히려 엄마를 생각해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서로의 그런 갈등들이 결국에는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늙는다는 것은 이제 그렇게 서로에게서 약한 모습을 보는 거라고 마지막에 적혀있더라고. 그게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런 내용이 좀 와닿았던 것 같아. 

"그러니 참, 신기한 일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늙는다는 것, 서로에게서 약한 모습을 본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가족 안에서 진짜 해서는 안 될 말들도 너무 많이 하고, 의도치 않게 우리의 약한 모습이 제일 많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 안에서는 그냥 신랄하게 우리의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아이러니 하기도 해. 나는 집 밖에서는 안 그랬는데 왜 집에만 오면 이렇게 모순 덩어리의 내가 될까?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너무나도 다르게 이곳에서는 무너져버려. 


S: 동생 말대로 싫어도 헤어질 수 없는 관계니까... 맞아, 내가 그냥 있는 그대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은 내가 친구한테 하는 것만큼만 동생한테 해도 더 좋을 텐데 싶을 때도 있고... 근데 가정 안에서 가장 솔직한 나의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Y: 여기에서도 천혜향만 보면 또 엄마가 생각나겠구나라는 그 장면이 너무 공감됐던 것 같아. 


S: 나는 좀 신기했던 게 나는 엄마가 뭘 보내주면 미안해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특이한 것 같은데 나는 이렇게 보내주면 고마워 잘 먹을게 하는데 (웃음). 


Y: (웃음) 나도 잘 먹긴 하는데, 난 이 내용이 공감이 가는 게 집에 내려갈 때 엄마가 뭔가 싸주려고 하면 나는 무거워서 가져오기 싫었거든. 너무 많아서 못 먹고 버린 적도 있어. 그래서 공감이 된 거 같아. 


S: 근데 

"아 이젠 또, 언젠가 천혜향만 봐도 슬퍼지겠네..." 

이 말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우리가 이제 지나가는 조그만 하얀 강아지만 봐도 슬픈 것처럼... 


근데 아까 언니가 말한 거랑 비슷한데, 왜 서로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오히려 그 관계 사이의 다리가 되어 주기도 할까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잖아요. 


Y: 그렇지.


S: 그래야 그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 


Y: 아마 하나의 구체적인 예로 우리 셀 모임에서 뭔가 서로의 아픈, 서로의 그런 어려운 속마음을 얘기할 때 비로소 뭔가 모임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 같아. 완벽한 인간은 없는데, 어느 누구나 다 결점이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는 건데,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과 정말 그 사람을 신뢰해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진정성을 얻고 자연스레 관계도 깊이가 더해지는 거 아닌가 싶네. 


S: 맞아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조금의 모성애를 타고나는 것 같아요. 


Y: 그렇지. 


S: 무언가... 도와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고 하는 그런 마음들... 어떤 사람이 너무 완벽할 때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지만, 그 사람이 뭔가 약한 모습을 보일 때는 내가 도와줄 수 있고,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한 쓸모? 나의 필요성도 느끼게 되는 것 같고, 이 사람한테 긍정적인 힘이 돼주었다는 게 기쁨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근데 또 약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줘서 틀어지는 관계도 있잖아요? 연인끼리 지치게 될 수도 있고, 약함을 나누는 게 일방적일 때 그런 상황이 초래되는 것 같아요. 


Y: 상대방은 버거울 수도 있지. 

 

S: 아이러니야 진짜. 서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다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때 마음이 더 깊어지다가, 지나치면 힘들어지는데, 하필 그럴 때 저기서 멋진 사람이 나타나면 마음이 흔들리고... 


Y: 그래서 난 그 생각이 들어.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가족이 됐든 친구가 됐든 연인이 됐든지 간에 내가 생각하기엔 어느 정도 우리 사이에 서로를 위한 배려의 벽이 필요해.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나일 수 없고 내가 그 사람일 수 없으니까. 서로의 독립적인, 서로의 인격체를 진정으로 존중해 줄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한 거 같아. 근데 그거 없이 그냥 네가 내 입장을 이해해줘, 이러면 틀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S: 맞아요, 그래서 정말 온전히 내 입장을 100% 공감해줄 수 있는 존재는 신의 영역인 거 같아요. 


[SKIP]


S: 나는 질문을 하나 더 써놨었는데, 

"나에게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시절. 이 길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시절.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미 내 마음속에 정해놓은' 단 하나의 정답만을 향해 애를 쓰던 시절.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잃었을 때, 그 길이 좌절됐을 때,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정해놨던 나'와 점점 멀어져 갈 때."

만약에 언니가 십 년 후 언니에게 세 가지를 물어볼 수 있다면 뭐가 궁금해요? 


Y: 나는... 좀 추상적이긴 한데 첫 번째 질문, 너 행복하니? 두 번째 질문,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행복하니? 마지막 질문, 앞으로 너의 꿈이 뭐니? 이렇게 물어볼 것 같아.

 

나는 뭔가를 확인하고 싶진 않아. 누구를 만나냐던지, 뭔가 어떤 사건이나 발생된 일, 그런 환경에 대해 굳이 확인하고 싶진 않아. 이 작가처럼 나도 그냥 내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는 걸 이미 인정하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확인을 하고 싶지는 않아. 너는 어때?


S: 확인하면 인생의 재미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평소에는 스포일러를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인생에 있어서는 오히려 스포일러를 보게 된다면 좀 김이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궁금은 해요. 근데 어떤 질문을 해도 그 모든 질문의 가정은 그래서 지금을 어떻게 더 소중하게 대할 수 있을까? 에요. 예를 들어서, 우리 엄마가 몇 살에 죽는지가 궁금하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계산해서 어떻게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내가 A로 결국 돌아가는가? 그러면 이곳은 그전까지 나에게 허락된 제3의 곳이니까 오늘 여기서 나는 그냥 스물아홉으로 살 수 있잖아요, 평범한 하루를 더 즐긴다든지. 아니면 내가 결국에 누구랑 결혼을 하긴 하는가가 궁금하다면, 그 사람에 있어서는 내가 이 사람하고 헤어지게 될까 이런 걱정을 덜 하고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맥락에서 내가 오늘을 조금 더 감사하게 보낼 수 있도록 궁금해요. 


Y: 근데 나는 오히려 만약 예를 들어 엄마가 이때 죽는다는 걸 듣는 것도 되게 힘들 것 같아. 그거를 알고 기다리는 마음조차...


S: 그것도 맞아. 그러면 우리에게 방법은 그냥 매일매일을 최대한으로 감사하고 사랑하며 사는 거네요. 


Y: 그러니까, 근데 그게 제일 어려운 거잖아. 그래서 나는 또 공감이 됐던 게, 이런 맥락이었어. 우리는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빼고 연인을 기다리기도 하고, 고심한 선물을 고르며 소중한 사람의 생일을 기다리고, 은행에서 이율이 조금 더 높은 적금에 가입하기 위해서도, 소문난 맛집을 어렵게 찾아가서 번호표를 손에 쥐고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틈이 날 때마다 좋아요를 기다리고, 그렇게 작은 기다림들을 끊임없이 만들며 작은 기쁨들을 하나씩 쌓아간다. 내가 혹시 그 작은 기쁨들을 잊고 그 작은 기다림들에 소홀해질까 봐 아이폰마저도 내게 알림을 준다...


S: 그러네요. 그 작은 기다림들을 설레는 순간으로 간직하며, 오늘 더욱 감사하고 사랑하며 사는 수밖에. 


[EXTRA]


"참, 운이 좋았다고 했다.
일 년에 이런 날씨가 며칠이나 되겠으며, 그 며칠 중에 주말이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며,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가 말했다. 참, 운이 좋았다고.
이런 일요일 오후를 나와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참 운이 좋았다고."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아이가 아닌 그냥 한 사람을 키우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지금 밖에 눈이 와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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