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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Dec 04. 2021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B)

보내야 되는데 함께 있으니 좋아서... 인자는 가보거라


모임, 열세 번째 & 열네 번째

211116 & 211123,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떠나보내며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S: 책을 마무리했는데 어떠셨어요? 저는 분명한 것은,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좋았어요. 


Y: 맞아. 그 처음 1, 2장은 담백하게, 이렇게 잔잔하게 탄탄하게 갖춰갔다면 3, 4, 5장에서는 진짜 갈아넣은 느낌? 모든 것을 다, 그 실마리들을 좀 풀어가면서 - 

 

S: 맞아요, 더욱 진정성 있게 그 아버지를 담아놓은 것 같아요.


Y: 그리고 헌이의 시점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에서 아버지라는 사람의 고귀한 여러 가지 모습... 그게 진짜 사랑일 수도 있고 희생일 수도 있고 그냥 그 여러 가지 모든 것들이 좀 함축적으로 담겨 있어서... 


그리고 뭔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좀 허무 지게, 허무진 슬픔이었어 나한테는. 앞부분은 잔잔하고 아련했다면, 뒷부분은 그냥 아버지에 대한 모든 실마리가 풀리고 나서 느껴진 그 슬픔은 좀 허무지는 느낌...


S: 엔딩은 언니가 생각한 대로였어요? 


Y: 어, 뭔가 생각한 대로였고, 오히려 나는 아버님도 소천하실 줄 알았는데 사실 거기까지는 안 가고 그 이전까지 그려낸 부분들이 나한테는 좋은 엔딩이었어.


S: 맞아.


Y: 잔잔하니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울리면서, 또 그렇다고 너무 비극도 아니고 담백하게 끝나는... 그래서 오히려 나는 그냥 막 엔딩이 도대체 어떻게 될까 되게 곤두서서 바라보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딱 맺어진 느낌이었어.


S: 그리고 돌아가시진 않았지만 그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 엔딩이었어요. 뭔가 그냥 밍숭맹숭하게 끝난 거 같지는 않아. 


Y: 맞아, 진짜 어떻게 그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여운이 남는 이런...

 

S: 사실 전개상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냥 대화하다가 끝나는 건데 저도 마무리가 되게... 먹먹했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정말 마음에 들었던 엔딩. 그리고 너무 슬펐어요. 저는 마지막 몇 장을 읽으면서 계속 울었어요. 


Y: 나는 마지막에 편지를 적는 부분에 헌이한테 전하는 이야기에서 울컥했어. 눈물이 그냥 핑 돌았어.

 

S: 맞아요. 지난주에 내가 읽으면서 슬펐다고 한 부분이 두 군데였는데, 첫 번째는 아버지가 헌이한테 이제 그만 가라고, 같이 있으니까 너무 좋은데 이제 그만 가라고 하는 부분이었고, 두 번째는 자식들마다 편지를 남기는데 각자 남겨주는 물건이 다 다르잖아요. 근데 그게 각자가 너무 의미 있는 선물인데 나는 그 자전거에서... 자전거에 대한 아버지의 설명이... 그냥 뭔가, 그저 같이 함께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마음이 너무 슬픈 거예요... 


Y: 나도 방금 말한 부분이랑, 또 다른 부분은 헌이가 아버지의 수면 장애를 보고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택시에서 아버지가 헌이 어깨에 기대면서 하셨던 말... 나는 거기서 눈물이 계속 났어. 애를 놔줘, 놔줘... 놔주라는 그 이야기가 네가 많이 힘들었다는 걸 안다... 


S: 살면서 그렇게 헌이한테는 죽은 자식처럼 놓지 못한 채 이렇게 손에 꽉 쥐고 사는 게 있겠죠, 모두가.  


Y: 그리고 그 무언갈 놓고 그 사람이 자유하길 가장 바라는 건 부모일 거야. 그걸 보는 부모의 마음이 제일 무너질 테니까, 자식이 거기서 벗어 나오지 못하고 - 


S: 그냥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 - 


Y: 부모로서 같은 아픔을 겪어봤었더라면 더 알겠지. 더 아니까 더 안쓰러울 테고... 


S: 아버지가 자식들 얘기할 때, 이 부분은 지난번에 얘기할 때도 나오긴 했는데 

"무섭기만 했시믄 어찌 매일을 살겄냐. 무섭기도 하고 살어갈 힘이 되기도 허고......"
"두렵고 무섭지 않은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을는지."

아직 부모가 아니어서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일지 상상이 잘 안 가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일 것 같은데,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사람들이 생기는 게, 근데 그게 어떤 마음일지 잘 상상이 안 가더라고요. 내가 최근에 회사에서 봐온 아버지들은 다 순전히 부담으로만 보는 거 같아서. 근데 여기서의 아버지는 무섭기도 한데 살아갈 힘이 되기도 했다고 해서... 


Y: 나는 그게 조금은 무슨 마음인지 알겠어. 내가 자녀를 낳아본 건 아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생기고 나서 어쨌든 나는 첫째로서의 부담감이 있으니까. 아버지와 동일시될 수는 없지만 가족이 동기가 된다는 게 어떤 맥락일지 조금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아. 나의 가족들은 너무 어려운데, 근데 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것도 사실 남은 가족들을 보살피기 위함이고 그들을 헤아리기 위한 것임을 보면 그 이중적인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근데 또 그 대상이 내 자녀라면 어떨지 모르겠어. 또 다를 것 같아.

 

S: 맞아요. 나의 부모랑 형제들인 가족하고, 내가 남편을 만나서 자식을 낳아서 꾸리는 가족은 또 뭔가 다르겠죠. 


Y: 나는 또 3장의 글 형태가 되게 놀라웠어. 편지 안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들, 그 일생을 풀어간 게, 그리고 그걸 주인공 입장에서 소화하는 내용까지도. 그 형태가 굉장히 신선했고 그러다 점점 더 몰입되고 가볍게 읽혀서 좋더라고. 혹시 너는 부모님과 주고받았던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어?


S: 그래도 기념일마다 편지를 썼었는데, 제가 기억에 남는 건 제가 쓴 건 아니었고 동생이 써서 드린 거였는데 기억에 남는 이유는 카드에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접어서 붙였는데 생각보다 카네이션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요 (웃음). 그리고 그즈음에 저는 이미 편지를 안 쓰는 나이였어요. 근데 동생은 여전히 쓰길래 아직 순수한 아이구나 해서 기억에 남고. 

 

받았던 것 중에는 손으로 쓴 건 아니고 장문의 카톡이었는데, 아빠가 한 한두 달 전에 보내셨나...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제가 고등학생 때 책상 앞에 어떤 문구를 붙여놨대요. 10대에 꿈을 꾸고 20대에 준비해서 30대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자는 문구였다는데, 나는 그걸 읽으니까 기억이 나는데 그전까지는 잊고 있었거든요. 언니 알잖아요, 나 기억력 되게 좋은거. 근데 나도 기억을 못 할 정도의 문구면 특별히 액자에 넣어뒀거나 이랬던 것도 아닐 텐데 아빠가 그걸 기억한다고 하셔서 되게 놀랐어요. 아빠는 그걸 보고 네가 다 컸구나 생각을 하셨대요. 그게 기억에 남은 이유는 내가 기억하지 못한 나의 한 조각을 기억해 줘서 그런 거 같아요. 


Y: 나는 엄마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책상에 엄마가 편지를 써놓은 게 있었어. 아직도 코팅해서 보관하고 있는데, 생각해 보면 엄마는 어린 나한테 기대감이 되게 컸던 것 같아. 왜냐하면 내용이 네가 열심히 하는 걸 너무 잘 안다, 근데 이제 동생들도 있으니까 엄마 아빠의 기대에 잘 부응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느낌이었어. 조금만 더 파이팅하자 이런 내용이었거든? 근데 그때 당시에는 그게 나한테 되게 인상이 깊었나 봐. 그게 지금 나의 성향에 이르기까지 되게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기도 해. 나는 늘 뭔가를 열심히 해야 되는 친구였고, 그리고 그게 나는 맞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인터넷이 조금씩 발달하기 시작했을 때 아빠가 한창 이메일 쓰는 걸 좋아하셨어. 내용은 별거 없었지만 아빠는 주민센터 가서 배우신 거거든. 독수리 타법으로 진짜 맨날 컴퓨터를 공부하셔서 보내주신 거야. 


S: 저도 외할아버지가 컴퓨터를 사용하셔서 자주 메일을 보내셨는데,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대학교 2학년 때인가? 도서관에서 겨울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공부하고 있는데 우연히 옛날 메일을 보다가 할아버지가 보내신 메일 한 통을 찾은거에요. 내용은 이제 어엿한 상급생이 되었을 희원이가 너무 보고 싶다는 거였는데, 마침 딱 10년 전 그맘때 왔던 메일인 거예요. 그래서 메일을 다 읽고, 지금의 나를 보셨으면 어떠셨을까? 나는 그때보다 훨씬 많이 컸는데, 지금의 나를 보셨으면 어땠을까... 하고 도서관에서 펑펑 울었어요.


저는 또 큰아들하고 이렇게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되게 인상 깊었는데, 제일 먹먹했던 부분은 항상 아버지가 편지 마지막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업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

이 인사의 진심이 너무 느껴져서... 정말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고, 그냥 건강하면 된다여서... 이 책에서 1~2장의 사랑을 정의해야 한다면 그건 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에서 안 보일 때까지 뒷모습을 쳐다보는 것이고, 3장에서는 오직 자식이 건강하길 바랄 뿐이라는 이 끝맺음이 아닐까 싶었어요. 


Y: 맞아. 이 이후에도 나오지만 아버지가 엄청 헌신적인 아버지인 것 같아. 편지를 쓰기 위해 또 글을 배우시잖아. 아버지의 순수한 마음이 이 아버지의 경우에는 바로 액션으로 나온 것 같아. 아들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배우고.


S: 진짜 그렇죠. 그리고 그 편지 시리즈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첫째한테 갖는 마음이... 그 애틋함이... 이해가 되죠. 아무래도 제일 의지도 되고, 모든 게 다 이 아이와 처음이었으니까. 그래서 같은 첫째로서 이 마음들이 다 이해 가고 공감 갔는데, 둘째 오빠의 편지가 나오면서 그가 회상하는 이 관계를 볼 때 또 그 안에서 나름의 서운함이 있잖아요. 어쩔 수 없이 장남한테 의지하는 게 있는가 하면, 그걸로 인해 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서운함들이 있고. 근데 또 동생들이 보기에 사실 형이 그만큼 짐을 지고 있기도 하고. 가족의 그 미묘한 관계, 갈등, 어떻게 보면 정치를 어떻게 이렇게 잘 녹여냈을까?

 

Y: 나도 좀 놀라웠어. 보통 책을 읽으면 주인공의 시점에서 제한적으로 보게 되는데, 이 책은 큰 아들이면 큰 아들, 둘째면 둘재, 막내면 막내 그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충을 현실 그대로 고스란히, 그 누구도 밉지 않게 너무 잘 써 내려가서 진짜 감탄했어. 


나는 첫째로서 장남의 입장을 너무 공감하면서 읽는데, 내 동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기들도 각자의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 되게 평화롭게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S: 근데 정말 언니 말대로 다양한 시각을 그들의 시선에서 순수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편지가 되게 탁월한 매체였던 것 같아요. 자기가 쓴 글을 그대로 옮겨주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주인공하고 상대방하고 대화한 내용을 적는 것보다 그 다양한 캐릭터들이 그냥 1인칭 편지를 서술한 게 감정 전달에는 탁월하지 않았나 싶어요. 


Y: 그리고 나는 지금 맥락과는 좀 안 어울리긴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안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른 책들 같은 경우에는 그때 그게 뭐였지? 그 내용이 뭐였지? 다시 찾아보는 것도 있는데, 이 책은 사건들이 너무 뇌리에 박혀 있어서 다시 안 봐도 바로 떠오를 수 있을 거 같아. 


S: 저는 그런 그런 비슷한 느낌으로 이 책은 선물하고 싶은 책? 이건 읽고 마는 것보다 내가 진짜 추천하거나 선물해야 할 때, 그리고 아무한테나 말고 진짜 소중한 사람들한테 선물하고 싶은 책. 


Y: 나도 네가 추천해준 거라서 더 각별히 특별한 것 같아. 


[SKIP]


S: 나는 둘째 오빠가 왜 자전거 타고 여행하다가 간첩으로 몰려서 아버지가 찾으러 오잖아요. 그리고 아버지가 경찰서로 데리러 왔을 때 간첩이 아니라고 증명을 해야되잖아요. 그래서 막 가족 사진 하고 서류하고 학생증 하고 책가방하고 바리바리 싸들고 오셔서 아버지가 이렇게 설명을 하시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담양경찰서로 나를 데리러 왔다. 내가 간첩이 아니라 이제 고등학교 갓 졸업한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느라고 아버지 손에는 가족사진과 서류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내 학생증과 노트들, 책가방까지 가지고 오셨더라. 아버지는 내가 간첩이 아니라 당신의 둘째 아들이며, 이름이 홍이고... 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마음이 어질고 착해서 지 어머니가 힘들어 보이니까 여동생을 등에 업어 기른 아이이며 형과 동생 틈에서 지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늘 양보하며 눌려 지내는 놈인데 무슨 간첩이냐, 등록금 걱정에 학비가 덜 드는 해양대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마음에 구멍이 나서 자전거 여행에 나섰을 뿐인디 무슨 간첩이냐,고 조목조목 말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다. 나는 깜짝 놀랐어. 아버지는 다 알고 있었거든. 내가 해양대학교에 지원한 이유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둘째의 마음까지도." 

나는 이 부분도 너무 슬펐어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설명하는데 아들의 마음을 다 알고 있어. 아들은 첫째 형한테 밀리고 동생들한테 치이는 말 못 할 서러움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애가 착해서 여동생도 대신 기르고 형하고 동생 사이에서 맨날 양보하고 해양대학교 가는 것도 학비 덜 들려고 그런 거고 그러다 떨어지고 슬픈 마음을 달래려 자전거 여행을 나선 건데 무슨 간첩이냐고... 

 

그래서 둘째 오빠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놀랐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한 것도 처음이고, 아버지가 이제 다 알고 있는 게... 자기가 해양대학교에 지원한 이유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둘째의 마음까지 아버지가 다 알고 있었다고... 아버지는 어떻게 다 아셨을까요. 자식이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에게 감출 수 있는 건 없겠죠. 


Y: 맞아, 뭔가 우리가 부모가 되지 않는 이상 우리도 부모의 마음은 다 알 수 없겠지. 


S: 그래서 내가 언니한테 이번 주에 보낸 카톡 중에 "엄마가 되어서야 딸이 되었다"는 말이 있었잖아요. 근데 왜 아버지는 이런 얘기를 한 번도 못하셨을까요? 


Y: 모르겠어, 이게 한국의 문화인 건지. 아무래도 부모가 네가 형한테 양보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감동받았다, 이런 얘기를 하기가 어렵지 않으셨을까.


S: 그리고 이 아버지의 성향상 절대 못 하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못해서 영원히 모르면 그것도 비극이잖아요. 만약에 둘째가 영원히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모르고 그냥 항상 형을 더 좋아했던 아버지로만 기억한다면,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해양대학교에 가는 것도 다 가족을 위해서인데 우리 아빠는 형밖에 모르고 산다고 생각했다면... 물론 또 이렇게 극적으로 알게 되니까 더 감동적인 부분도 있겠죠. 모를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감동과 또 매일 나누면서 아는 것의 감동은 또 다르죠.


근데 며칠 전에 회사 동료랑 밥을 먹다가, 내가 이 회사를 떠나는 날에 이런 이런 감사한 분들에게 꼭 인사를 드리고 가고 싶다고 하니까 그 동료가 되게 진심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걸 딱 듣는데 너무 맞는 말이다 싶어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평소에 얼만큼 나의 마음을 나누며 살아야 할지. 


그리고 다시 둘째 아들하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가 맥주를 들이켜더니 홍아,하고 나를 불렀다.
-너는 어째 그리 생각이 많냐?
-제가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라, 눈치 보지 말고.
-......
-나는 너가 뭣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함서 살먼 좋겠다.
-아버지는 뭐 하고 싶으셨는데요?
-......
-하고 싶은 일이 뭐였어요, 아버지?
-너처럼 자전거 타고 무전여행도 하고 싶고 그랬제. 
내가 다시 묻자 아버지는 너처럼......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저는 이렇게 연결되는 장면도 되게 슬펐어요. 언니 말대로 아버지의 모습은 표현은 잘 못하는데 늘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족을 항상 우선시하는데, 근데 그 아버지도 결국에는 그냥 나처럼 자전거 타고 싶은, 나처럼 여행 다니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SKIP]


Y: 이 아버지가 어떤 부분에서는 이상적인 아버지일 수 있고, 또 어떤 누군가에게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 아버지와 되게 비슷하네 할 수도 있고, 되게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을 소개한 것 같아. 어떤 장면에서는 아버지가 너무 연약하고 인간적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감동적으로 와닿다가, 또 어떤 부분에서는 매몰차고... 그래서 작가도 소개에서 익명의 아버지라고 표현한 거 같아. 


S: 맞아요. 그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그럼 언니는 이 글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글 같아요, 아니면 자식들에게 바치는 글 같아요? 혹은 아버지들한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에요, 아니면 자식들한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에요? 


Y: 내가 선물을 한다면 나는 자식들한테. 그 둘째 아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여기에 기록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되게 잘 정리되어 있어.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 아버지에 대해 이해하는데 엄청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SKIP]


S: 저는 그다음에 적었던 부분은 엔딩이었어요. 

"물 마실래요? 물어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아버지가 나직한 목소리로 너는 언제 가냐? 물었다.
-가야지
-...
-보내야 되는데 함께 있으니 좋아서.
-...
-인자는 가보거라." 

함께 있으니까 너무 좋은데, 그런데 이제는 가보거라 하는 대목에서 저는 마음이 울컥했어요. 첫 번째 울컥한 부분은 둘째 오빠 간첩 아니라고 감싸면서 다 알고 있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될 때. 두 번째 울컥한 부분은 이제 헌이한테 가보라고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함께 있으니까 좋다고 하신 게 되게 담백한 고백인데 사실 진짜 아버지의 사랑 표현이 아닌가. 첫째 아들한테는 그 표현이 네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였다면, 헌이한테는 이렇게 너랑 같이 있기만 해도 좋구나 라고 하신게 아버지의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부분부터 울다가 이제 받아 적으라고 하는 유언으로 넘어갔는데 아버지가 가족한테 고맙거나 미안한 것도 다 다르고 남겨주는 물건도 다 다른데 그게 하나하나 의미가 있잖아요. 

"첫째... 동생들에게 너를 아버지로 생각하라고 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그동안 니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 것이냐. 내가 더 일했어야 했다. 내가 해야 할 일 반을 니가 했구나. 내 자식인 것이 항상 든든했다."
"둘째... 니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껴주어서 항상 내가 따뜻했다. 나를 서울의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에 데려가주었을 때 참 좋았다. 소리를 재미나게 들으라고 전축을 사다줘서 내가 여태 귀호강을 했구나." 

자식이 하나하나 다 특별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어서 그런지 제일 슬펐던 건 자전거였어요. 

"넷째, 헌이에게는 헛간에 세워놓은 새 자전거를 남긴다. 너와 함께 자전거를 타려고 새 자전거를 사놓은 지 삼년이나 되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사놓고 너를 기다렸다,고 했다. 니가 오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새 공기를 마시며 달려보려고 했는데 늦은 일이 되었다,고... 아버지는 니가 밤길을 걸을 때면 너의 왼쪽 어깨 위에 앉아 있겠다,했다. 그러니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세워놓은 지 너무 오래됐는데 자전거는 여전히 새 거고 너랑 함께 타려고 사놓은 게 벌써 3년 전이다. 사놓고 기다리고, 오면 타야지 하고 기다리고... 자식을 위로하는 방식이 참 평범한데 참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또 첫째한테 남겼던 말은 우리한테도 적용이 될 것 같아서 와닿았어요. 너한테 가장의 몫을 맡겼던 게 후회로 남는다, 네가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겠냐... 나의 몫이었는데 너한테 지게 했다고, 또 네가 내 자식인 게 항상 든든했다고... 어쩌면 부모의 짐이 그렇게 무거우니 첫째한테는 나누게 되는 거겠죠.


Y: 이 책에서는 아버지가 편지로 남겼지만, 실제로 나는 아빠가 마지막으로 우리 삼 남매한테 남긴 이야기를 엄마가 녹음해두신 게 있거든. 그래서 그게 파노라마 같이 딱 겹치면서, 우리 아빠도 그 마지막 순간에 각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다르셨어. 그냥 그 마음의 결이, 첫째에게 향하는 아빠의 마음과 둘째에게 향하는 마음과 셋째에게 향하는 마음이, 크기는 동일하지만 그 결이 달랐던 거 같아. 


근데 우리 아빠도 내가 첫째로서 되게 힘들어하고 있고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마지막 카톡이 나한테 수고했다, 이런 말이라고 했었잖아. 그리고 내가 아빠 많이 아프실 때 좀 많이 울었거든. 뭔가 그냥 그 병상에 있는 것만 봐도 너무 마음이 아픈 거지. 그래서 아빠가 나한테 남겨줬던 말이 "정윤아, 믿는 사람은 울지 않아"였어. 그것 때문에 더 못 울었던 것 같아. 


근데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아빠 자신한테 해주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야 말로 되게 울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을 것 같거든. 아빠도 일하시면서 되게 힘든 순간들이 많았을 텐데, 자기 스스로 믿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는다고 버텨오신 게 아니었을까. 헌이도 그 슬픔을 간직한 채 애써 살아왔던 건데, 그 모든 게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내가 붙잡고 있던 모래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처럼... 


S: 근데 정말 아까 언니 말대로, 헌이가 처음부터 효녀 심청이었다면 공감대가 더 적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삶이 다 무의미해진 것도 있고, 귀찮아진 것도 있고, 그런 상황에서 도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려간 고향에서 알게 되는 과거와 속마음과 이야기들을 통해서 아버지와의 마지막을 보내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더 와닿은 거 같아요. 설계를 되게 잘해놓은 거죠. 첫째 오빠의 시각에서 썼으면 장남과 장녀들만 이해했을 수 있는데. 


Y: 정말 헌이에 대한 정보는 자녀를 잃었다는 것과 작가인 것과 여자인 것 밖에 없어. 그냥 이 사람은 그렇게 담백하게 표현을 했어. 


S: 헌이는 헌이 자식 때문에 아파하고, 아버지는 자기 자식인 헌이 때문에 아파하고...


Y: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에 어머님한테 하셨던 이야기들도 참 좋았어. 어머님 성함이 정달래였는데, 정달래 당신은 나한테 열매만 보여주었다고, 일생을 내게 열매만 갖게 하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았는가 미안하고 고맙다고... 


<아버지에게 갔었어>, 고마웠어. 잘가.


[EXTRA]


"...지금도 생각나는구나. 철길 여뜨 논둑의 풀을 비고 잇는디 학교에 다녀온 니가 책보를 멘 채로 아버지, 아버지 부름서 뛰어와서는 내 품을 들이밧듯이 숨을 내뿌므며 파고드러서 뭔 일이 잇냐고 물으니 너는 숨이 차서 헐떡임서 아버지 여그 잇엇네 하고 환하게 웃엇다. 숨이 가라안은 뒤에 내게서 떠러져 베어놓은 풀 위에 털썩 주저안즈며 니가 나에게 아무 데도 가지 말라고 햇다. 

너는 내 마음을 다 알고 잇엇다. 너는 아버지만 여페 잇으면 공부를 잘하겟다고 햇다. 둘째에게 산수도 가르키겟다고도 햇다. 요새는 학교에 가도 공부가 안 된다고 햇다. 아버지가 어디로 가버렷을 거 가타 자꾸 창박만 보게 된다고 햇다. 집에 아버지가 업스면 잠이 안 온다고 햇다. 너랑 나는 논둑에 안저서 철길로 달려가는 기차를 봣다. 너는 어서 커서 검사가 되겟다고도 햇다. 엄마하고도 약속햇다고."  


"주말에 J시 집에 머물 때 아버지가 틈이 나면 선산에 가볼 테냐?고 건네는 목소리도 못 듣게 되는 날이 오겠구나... 아버지가 선산에 가보자고 했을 때 항상 그 요청에 따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사는 일이 그래. 지나고 보면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일들이 발등에 떨어질 때가 적지 않아서 다음에 가지요, 했던 적이 여러번이었어... 그러자, 하면서도 실망감에 아버지 얼굴에 서리던 그늘이 떠올라 죄송하구나..." 


"삶에는 기습이 있다,라는 문장 말일세...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 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도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 게 인간 아닌가. 자네 아버지는 자네 옆에 그저 있어주고라도 싶은데 자네가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며 고통스러워했네. 자네가 죽은 사람처럼 기척이 없다고 애태웠지... 그럼에도 살아야 하니 자네도 힘겹겠네만, 사람으로는 내 인생의 하나뿐인 동무가 자네 아버지네. 아버지가 자네 옆에 있게 해주소. 힘든 것도  같이 보고 볕도 쬐고 열매도 줍고 눈도 쓸고 그러소. 자네 얘기도 하고 아버지 얘기도 좀 들어줘. 달리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일이든 잊힐 때가 되어야 잊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잊으려고 애쓰면 더욱 잊히지 않듯이..."


"당장 내일이라도 만날 수 없는 이들이 나누는 것 같은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덤덤히 나누었다."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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