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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Nov 16. 2021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A)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모임, 열두 번째

211109, 거의 한 달을 일에 치여 서로 보지 못하다 오랜만에 인생 책을 만나 언니네 집에서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S: 이 책이 언니의 인생 책이 되었다고요?


Y: 네. 이거를 네가 골랐지? 네가 나한테 한 세 가지 초이스를 줬나, 그중에 나의 마음을 흔든 책이었는데 - 


S: 이거 고를 것 같았어.

 

Y: 내가 이 책을 골랐던 이유는 단순히 그냥 아버지에 대한 소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되게 아버지에 대한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리고 너무 나의 정서에 착 맞는 책이었어. 왜냐하면 내가 시골에서 살았잖아.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 있는 모든 내용이 되게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보이고 진짜 나의 정서를 하나하나 콕콕 찔러주는 느낌이었어. 최근에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더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고, 마침 내가 어린 시절 때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한테 느껴진 그 감정들이 또 이 책 안에서 느꼈던 정서와 교집합이 되는 거야. 아직 반 정도 남긴 했지만, 나중에 이 책을 덮으면서 와, 이건 내가 이 시기에 너와 함께 이 책을 읽었다는 게 되게 오랫동안 나의 인생 책으로 남겨지겠다 싶어. 그리고 책을 너무 잘 쓰셨어.


S: 맞아. 


Y: 이 책은 진짜 그 소품 하나하나까지 내가 그 장면에 있는 느낌이랄까? 


S: 맞아요.

 

Y: 그래서 대단하다, 진짜 신경숙 작가님이 그냥 신경숙이 아니구나, 했어. 그냥 자기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


S: 자기 이야기 같죠. 그 정도로 되게 현실감이 -


Y: 응, 이 사람이 주인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S: 언니는 근데 신경숙 작가의 딴 책도 읽어봤어요?


Y: <엄마를 부탁해>를 내가 진짜 어렸을 때 읽었던 것 같은데, 사실 잘 기억이 안 나. 


S: 그렇죠? 맞아.

 

Y: 근데 이 책은 10년 뒤에도 너무 잘 기억날 것 같아.

 

S: 저도 똑같이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는데 너무 어렸을 때 읽어서 그런지, 그래서 공감을 못했던 건지 몰라도 특별히 기억에 남지는 않았거든요. 물론 <아버지에게 갔었어>도 우리가 지금 읽으니까 더 와닿지, 중학생 때 읽었으면 별로 와닿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근데 또 몇 년 전에 논란이 있었지만 뭔가, 나는 이걸 읽으면서 이 사람이 회복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정도면 세상에 내놔도 되는 명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이게 하반기 최고의 책입니다. 상반기 베스트로는 이런 느낌의 일본 소설책이 있었어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by 마쓰이에 마사시). 


전 읽으면서 작가의 기술을 보는 게 재밌었는데, 예를 들면 대화를 표시할 때 따옴표가 없어요. 그래서 되게 글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그런 기술들을 보는 게 재밌었고 또 끝에 갈수록 진짜... 5장은... 


Y: 앞쪽에도 몇 번 울컥하는 부분들이 있긴 했어. 이제 마지막 5장에서 폭발하는구나... 


S: 네, 그리고 엔딩이 제가 생각한 엔딩은 아니었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잘 썼고 갈수록 그냥, 신경숙이 신경숙인 이유가 있다를 느꼈네요. 

 

이 책은 분량이 좀 길어서 1~2장을 한 파트로 나누고, 3~5를 한 파트로 나누었어요. 이번에는 그렇게 두 파트로 나눠서 해보자, 너무 한 번에 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그럼 이제 이 질문으로 시작할게요. 이게 좀 앞부분에 나왔을 텐데,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다,고."

언니는 아버지가 하셨던 일, 그러니까 아버지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Y: 마지막 질문이어야 되는 거 아니야? (웃음) 


S: (웃음) 그럼 마지막으로 남겨볼게요... 


이 주인공이 다시 J시에 간 이유가 

"엄마와 함께 집을 떠나올 때 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울었다는 말을 여동생에게서 듣지 않았다면
엄마가 없는 동안 내가 J시에 가 있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라고 나오는데, 나의 마음을 되게 먹먹하게 했던 그런 아버지와의 한 장면? 혹은 아버지가 참 작아 보였던 순간이 언제예요? 


Y: 난 작아 보였다기보다는 뭔가, 되게 오랫동안 여운에 남았던 장면은 내가 집을 떠날 때였어. 아빠가 내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 역에 항상 바래다줬거든. 워낙 대학교 때부터 이제 역에 바래다주고 거기서 인사하고 이런 게 되게 익숙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니까 자주 못 내려오던 그런 시기 중에 되게 오랜만에 내려갔다가 이제 아빠가 나를 바래다주고 헤어지는 장면인데... 


보통 그냥 뭐 "먼저 갈게" 그러면 아빠가 뭐 "잘 챙겨 먹고" 이렇게 인사를 했는데 그날은 아빠가 차에서 내렸던 것 같아. 그러면서 아빠랑 인사를 할 때 이렇게 하이파이브하고 가는데, 그날은 아빠가 손을 꼭 잡아주는 거야. 그러면서 또 오라고, "또 와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그게 그 당시에 나한테는... 아빠가 되게 여려졌구나... 왜 그런 거 있잖아, 엄마는 강해지고 아빠들은 더 여려진다는 게 난 딱 거기서 느껴졌어. 그래서 아빠의 그 말이 진심으로 와닿아서 나도 자주 와야지 생각하고 들어갔던 것 같은데 그때가 되게 생각이 나더라고. 아빠가 내 손을 한 번 더 이렇게 꽉 잡아줬던, 자주 오라고 하면서... 그때 그 장면이 꽤 오랫동안 나한테 여운으로 남았고, 아빠의, 아빠의 뭔가 여려진 모습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빠의 그런 열린 마음이 되게 와닿던 그런 순간이었지.


S: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아빠가 좀 안쓰러웠던 장면은, 이제 2년 전에 저랑 엄마랑 택시를 불러서 타고 아빠는 남고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때 아빠가 조심히 잘 가라 하고 안아주고 인사를 하는데 그때 좀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냥 거기서 아빠는 다른 내색 없이 뭐 속상하거나 이런 것도 없고 불안해 보인다거나 그런 것도 없었는데도 그냥 뭔가 마음이 되게... 좀 그랬죠. 그때 마음이... 보통은 누군가를 두고 갈 때가 더 마음이 안 좋은 거 같아요. 차라리 떠나보내면은 오히려 내가 섭섭한 입장이 되는데, 내가 두고 가야 할 때는... 부모가 작아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Y: 책에 초반에 나왔던 것 같은데, 나무 궤짝이 등장하면서 그 나무 궤짝 안에는 아버지의 돈이 있었잖아. 그래서 주인공이 무언가 필요할 때 그런 니즈를 요청하면 아버지가 주시고. 너는 부모님에게 거짓말해서 용돈을 타본 적이 있어? 어렸을 때 나는 있어가지고 (웃음). 보통 어떻게 했어 용돈을 탔었어 아니면? 


S: 아니요 저는 주셨어요. 얼만치를 주시면 그 안에서 해결했고, 나는 어려서부터 물욕은 없었기 때문에 그게 모자랐던 적은 없어요. 거짓말했던 적은 많았겠지, 거짓말했던 적은 많았을 것 같은데 - 


Y: 거짓말 안 했을 것 같은데 - 


S: 아니야 많이 했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가출도 많이 했어요. 


Y: 가출?! 가출을 하면 어디로 가?! 


S: 우리는 1동 2동 3동이 있으면 우리 집에서 가출해서 옆 동을 갔죠. 왜 가출했는진 기억이 안 나지만 가출은 몇 번 했고, 그래 봤자 친구 집 간 거지만... 거짓말을, 돈 때문에 거짓말을 한 적은 없어요. 근데  다른 거짓말들은 했죠, 친구랑 싸우고 안 싸웠다고 한다든지 (웃음). 


Y: 난 생각보다 많더라고. 돈도 있었던 것 같고 뭔가 나에 대한 엄마 아빠의 기대가 워낙 컸기도 했고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서 했던 거짓말들도 있어. 나는 용돈을 대학교 때까지 받아서 썼거든. 우리는 정기적으로 주신 건 아니었고 그냥 필요할 때 얘기하면 주셨는데, 대학교 때 내가 알바를 하긴 했지만 이제 돈이 다 소진되면 요청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뭔가 마음이 엄청 안 좋았어. 나는 왜 다 커서도 엄마 아빠한테 이렇게 해야 할까? 그 당시에는 또 하고 싶었던 게 많았던 거지. 그러니까 예를 들어 교재 사야 되는데 좀 부족하다고 더 달라고 해서 그 돈으로 친구들이랑 사 먹기도 하고 놀러 가기도 하고 갖고 싶은 걸 사기도 하고 막 그랬던 게 있었던 거지. 근데 엄마는 좀 추궁을 하는 편이었는데, 아빠는 이제 그런 얘기 전혀 없이 그냥 무조건 주셨어. 그러니까 돈이 필요할 땐 아빠한테 연락을 하게 되는 거야. 근데 그게 나중에는 너무 미안한 거지. 아빠한테는 돈 필요할 때 연락하고 사소한 얘기할 때는 또 엄마한테 얘기하고... 그런 것들이 이제 나중에는 아빠한테 미안해지는 마음이 더 커졌던 것 같아.


S: 근데 언니는 뭔가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도 아빠한테 했을 것 같은데 엄마한테 안 하고.

 

Y: 그랬을 것 같은데 또 그렇지도 않았어. 아빠한테 커서는 좀 데면데면했지... 


S: 여기 앵무새가 나와요, 앵무새 창이. 창이를 얘기하면서 

"아버지를 웃게 했으니 된 거지"

그걸로 된 거다, 창이는 창이의 역할을 다 한 거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 언니는 언제 아버지가 제일 많이 웃으셨던 것 같아요? 


Y: 가족들이 함께 있을 때 많이 웃으셨던 것 같아.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빠는 되게 유머러스 한 편이었거든. 엄마가 오히려 좀 무뚝뚝하고 아빠가 좀 더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 


기억에 남는 게, 그때도 아빠가 목소리가 잘 나오는 편은 아니었어 이미 병이 시작된 즈음이었어가지고. 근데 그때 내가 엄마 아빠가 좀 적적하겠다 싶어서 노래방 마이크를 선물해드렸거든. 아빠가 목소리도 안 나오는데 그걸로 엄청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영상통화 걸었을 때 막 신나게 불러주던 그런 것들... 그냥 가족이 모이면 아빠가 엄청 좋아하셨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해주고 또 아빠도 그걸 기쁘게 여기셨던 게 기억나. 아빠는 가족들이 뭔가를 하고 싶어 할 때 솔선수범해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들에 대해서 한 번도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거 없으셨어. 그런 거 보면 아빠는 그런 게 제일 아빠한테 기쁨이고 우리가 좋아할 때 아빠가 비로소 행복했던 게 아닌가, 제일 많이 웃지 않았던가라는 생각이 들어. 


S: 저도 이렇게 멋있는 걸 얘기하고 싶은데 우리 아빠는 그냥 개콘 볼 때 제일 많이 웃으시곤 하셨어요. 아니 근데 진짜 개콘을 많이 보셨고, 개콘을 보면서 진짜 배꼽 잡고 웃으셨는데.


Y: 근데 우리 아빠도 1박 2일 보고 그렇게 웃으셨어. 모든 아빠들이 다 똑같나 봐. 


S: 근데 솔직히 그때는 그게 좀 한심해 보이기도 했거든요. 그냥 뭔가, TV에 웃어?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나이에 따라서 보이는 게 다르듯이, 내가 7년 전 첫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몰랐는데 요즘에는 회사에 아저씨들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도 그랬겠구나 하고 보이더라고요. 아저씨들은 재택을 안 하려고 하는 게 집에 나만의 공간이 없대. 아기 방구석에서 하는 거니까 회사 가는 게 더 편하고, 집에 가면 또 육아에 치여서 일부러 자발적 야근을 하시는 분들도 보고 하면서 요즘에야 비로소 아빠가 그때 개콘으로 풀 수밖에 없었던 그런 것들이 이해가 가요. 생각해 보니까 우리 집에 우리 방은 있어도 아빠 방은 따로 없었어요. 그냥 안방을 나눠 쓰던 거니까 딱 아빠방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나중에 이렇게 어떤 나이에 접어들어야 보이기 시작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우리 아빠는 개콘을 보고 그렇게 웃으셨어요. 


예전에 이사하기 전 집에는 아빠가 집에서 일을 하실 때 안 쓰는 화장대가 있어서 거기서 일을 하셨어요. 그냥 방구석에 안 쓰는 화장대였어요. 그러다 이사를 했는데 새로운 집에는 안방에 약간 작게 딸려 있는 서재가 있었는데, 근데 서재라 하기에는 일단 너무 코딱지만 했고 문도 제대로 없었거든요. 근데 우리는 되게 신나서 이제 아빠 방이 생겼다고 그랬는데, 그때 아빠는 그 방을 보고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표정이었거든요. 그때는 이해를 못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는 당연히 방이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아빠도 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요즘에 되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자기도 자기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걸 집에서 찾지 못하면 자꾸 겉돌게 되고, 회사에서는 이상하게 찌든 꼰대가 되고...


[SKIP]


Y: 여기에 또 그게 있어, 낙지. 낙지를 이제 사 와서 아버지한테 낙지죽을 끓여드리는데, 근데 아버지는 낙지를 이 주인공이 되게 좋아하는 음식으로 기억을 하고 있어. 

"내가 산낙지를 좋아한다고요?... 아버지가 갑자기 산낙지를 사러 가자고 한 건 나를 위해서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산낙지를 좋아한다고 여기도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산낙지를 좋아한 건 아버지였는데." 

그런 식으로 뭔가 네가 기억하는 게 될 수도 있고 부모님이 기억하는 게 될 수도 있는데 각자에게 왜곡된 그런 기억이 있을까?


S: 들여다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사실 뭔가 많을 것 같긴 해요. 저는 되게 많을 것 같은데 딱 생각나는 건 특별히 없어서, 가장 최근에 그랬던 건 그때 별이 죽고 나서 저희가 여행을 갔거든요. 시골에 내려가서 엄마랑 얘기를 되게 많이 했는데, 내 생각에 이건 엄마가 까먹은 거야. 내가 엄마한테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엄마가 까먹은 건데 엄마가 제가 전에 만났던 친구랑 헤어지고 그렇게까지 힘들어했는지 몰랐다고, 그걸 이번에 듣고 엄마는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엄마는 쟤네 둘이 되게 많이 좋아했는데 비교적 잘 넘어가는 걸 보니까 생각보다 마음이 안 깊었나 보다 하셨다는 거예요. 옛날 얘기하면서 나는 그때 숨 한번 내쉬는 게 마음이 찢어지는 거 같아서 월화수목금토일 다 교회를 찾아갔다. 근데 그렇게까지 매일 예배하는 데가 온누리밖에 없었고, 그때 첫 번째 직장 다닐 때니까 퇴근해서 지하철 타고 이촌역 4번인가 5번 출구를 울면서 거의 기어가다시피 계단을 올라 교회를 가던 얘기를 했는데 엄마가 깜짝 놀랐더라고, 자기는 몰랐다고. 엄마는 네가 집에 와서는 전혀 티를 안 냈기 때문에 몰랐다고 하셨는데, 나는 굳이 감춘 기억은 없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기억을 안고 있더라고요. 


언니는 뭐가 있어요?


Y: 나는 부침개. 그러니까 부침개를 내가 그렇게 잘 굽는 거 같진 않거든. 그리고 내가 막 부침개를 엄청 좋아하지도 않아. 근데 어느 순간 내가 부침개 달인이라는 소문이 우리 집에 난 거야. 그래서 아빠가 맨날 내려올 때마다 나한테 부침개를 구워달라고 하셨거든. 부침개는 엄마보다 내가 굽는 게 더 바삭하고 맛있다는 거야. 왜냐하면 내가 그만큼 기름을 많이 쓰거든 (웃음). 내가 그렇게 잘 굽는 건 아닌데 그 얘기를 듣고 되게 노력했던 것 같아. 잘 굽기 위해 기름을 기존보다 더 넣고 (웃음). 그게 아마 우리의 왜곡된 기억이 아닐까? 나는 부침개를 잘 굽지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데, 부침개를 잘 굽고 좋아하는 줄 알고 있는... 

 

S: 여기에 주인공이 큰오빠랑 얘기하다 오빠가 그런 말을 해요. 

"계속 다른 곳이나 바라보며 못 들은 척하는 나에게 큰오빠가 일갈을 했다. 그것이 아버지 인생 아니냐,
너는 글을 쓴다는 사람이 사람 마음을 그렇게 모르냐? 아버지 마음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글을 쓴다고...
아버지 인생? 우리들 학사모 쓰고 찍은 사진이?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내가 그토록 들어주지 않은 쓰라림이 스쳐 지나갔다."

언니가 이 주인공처럼 들어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인생, 마음? 


Y: 나는 웬만해서 다 들어준 것 같은데... 그러게 나 되게 좋은 딸이었던 것 같아. 뭔가 있긴 있을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나. 


근데 나는 좀 안 들어줬다기보다는, 듣긴 듣는데 약간 짜증이 많은 딸이었던 것 같아. 되게 투덜투덜 대긴 했어. 투덜투덜 대면서도 그걸 하긴 했는데, 그 투덜투덜 대던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할 건데 왜 그렇게 투덜투덜거렸을까 싶네... 


S: 뭐가 제일 그렇게 마음에 맺힌 게 있어요, 그 투덜투덜하면서 했던 거?

 

Y: 되게 사소한 거... 그냥 뭐 핸드폰 어플 쓰는데 이거 어떻게 쓰냐, 그런 거 물어보는 거였는데 나는 그렇게 짜증을 냈어. 회사에 있을 때 전화가 오면 나는 되게 다급한 줄 알고 받으면 아빠는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 이러시니까 그게 좀 김 빠지면서도 그걸 굳이 회사에 있는 나한테 왜 전화를 했어야 됐나? 그럴 때 내가 짜증을 내고 좀 귀찮아했던 순간들이 있었어. 


제일 마음에 안 좋은 건 내가 우리 집 삼 남매 중에 유일하게 교회에서 피아노를 쳤었거든. 근데 아빠가 이제 내가 집에 내려올 때마다 피아노를 쳐주길 바랐어. 근데 그걸 싫어했지. 하긴 했는데 나중에는 거의 안 했어. 왜냐하면 나는 그냥 그냥 준비 안 하고 바로 가서 칠 수 있을 만한 실력이 안돼서. 아빠는 처음에는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는 내 눈치를 보면서 얘기하더라고. 이번 주는 혹시 되냐? 내가 싫다고 하면 안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나는 그걸 못했을까 싶지... 


S: 그냥 되게 사소한 것들, 정말 사소한 것들인데, 여기서도 그 사진 찍는 게 사실 그렇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잖아요. 모두가 일반적으로 찍는 그런 것들인데...


Y: 그 하나가 엄청... 좀 그렇지, 맞아... 


S: 저는, 아빠는 항상 퇴근하고 뭘 먹으러 가는 걸 좋아하셨어요. 아빠는 되게 미식가고 맛집 가는 걸 좋아하시기 때문에 야근을 하더라도 저녁에 퇴근하고 뭔가를 먹으러 가서 스트레스를 푸시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빠한테는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던 건데, 오늘 하루 수고한 나에게 보상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그러고 집에 와서 씻고 자는 게 아빠의 루틴이었던 건데... 근데 나는 그렇게 가는 게 되게 피곤하고 힘들었기 때문에 뭘 먹으러 갈 바에 회사에서 일을 더한다였고, 그래서 나중에는 아빠 혼자 갈 때도 있고 그랬어요. 아빠 먼저 먹으러 가, 난 그냥 회사에서 대충 먹고 일하다 갈게, 그랬던 적도 많았죠. 근데 그냥 이제야 보이는 것들 중에 그게 아빠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구나 싶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냥 그게 아빠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던 거 같아요. 


여기에 또 나온 것 중에 

"이 이야기를 알게 된 후 한때 나는 마음속으로 전주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주홍색 귤을 나눠줄 때에도 받지 않았다.
겨우 귤을 받지 않는 것, 이 어린 내가 전주 할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저항이었다." 

언니는 언니가 그렇게 해본 저항이 있어요? 내가 부모님 대신, 아니면 부모님을 위해서 뭔가 그들이 하지 못한 그런 반항을 했다든지? 


Y: 엄마 아빠가 일하는데 그 현장에서 제일 힘들게 하는 분들, 그런 분들이 또 교회에서는 되게 활발하시단 말이지. 그런 분들한테 내가 좀 더 살갑지 못했던 것 같아. 내가 마음으로 그분들을 되게 어려워하고 그랬던 게 있지 않았을까? 더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좀 그런 마음들이 있지 않았을까.


이 맥락과는 좀 다르긴 한데, 내가 최근에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났다 했잖아. 그 친구 할머님이 우리 엄마 아빠를 기억하는 거야, 그때의 우리 엄마 아빠를. 그러면서 할머니가 그때 너희 부모님 정말 대단하셨다고 얘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이런 이런 상황들이 있지 않았냐고 얘기를 하는데 사실 나는 그 상황을 엄마 아빠가 그렇게 디테일하게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몰랐는데 그 얘기를 딱 듣는 순간 내가 울컥한 거야. 그렇지, 그렇네... 그 당시 엄마 아빠가 되게 젊었을 때 그 시골에 내려와서 어떻게든 뜻을 전하겠다고 아등바등하면서...


S: 기억나요. 


Y: 그런 거를 이제 그 당시 어른들은 기억하시는 거지. 이 젊은 부부가 시골에 내려와서 그렇게 고생했던 거... 그때를 할머님은 기억하시는 거지. 되게 대단하던 두 분이셨는데 고생 많았을 거라고. 그 얘기를 내가 서른 살이 돼서 듣는데 그 울컥한 거야... 


아버지가 이제 주무실 때마다 자꾸 없어지잖아. 그래서 걱정되는 마음에 치매 검사를 받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아버지가 이렇게 피곤해서 기대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그 얘기를 해주시지.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면 그 아이도 갈 길을 못 가고 헤맬 거라고... 주인공한테는 아이가 그냥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을 이렇게 건드린 느낌이었는데, 뭔가 아버지는 이미 그 마음을 다 알고, 상황이 어떤지를 알고, 공감하시는... 그게 되게 와닿고 감동이었던 것 같아.


내가 누군가한테 공감하는 포인트, 내가 딱 무너지는 포인트가 뭔지 최근에 알게 됐던 게, 누군가 나한테 나도 너를 알아, 나도 너 마음 알아... 이 이야기가, 뭐라고 해야 되지, 내가 힘주고 있던 걸 딱 놓게 만드는 그런 말인 것 같거든.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아버님도 자녀를 키운 입장으로서, 아비로서 자식에게 해준...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이 처음으로 울컥한 부분이었어. 

 

[SKIP]


S: 이런 장면이 되게 많았는데, 웅이라는 아버지가 대신 키워준 인물이었는데 웅이를 떠나보낼 때 

"웅이 소를 끌고 대문을 나서 골목을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버지는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 

어느 부모님이나 그러겠지만 아버지가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는 장면이 되게 자주 나오거든요. 나는 그 장면들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을 정의해야 된다면 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니는 어떤 것 같아요? 


Y: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은 뭔가... 나는 사랑이 희생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장면으로 표현한다면, 내가 하던 일을 다 멈추고 내가 제일 아끼는 것을 사서 그 사람을 찾아가는 것. 거기에는 내가 하던 것을 멈춘다는 것도 나한테 희생이고, 나한테 소중한 것을 사는 것도 희생이고, 그 사람 앞에까지 가는 것,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그 사람 앞에 간다는 것도 희생이라고 생각하거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런데 가족들한테는 못하는 것 같더라고, 그 희생을. 모든 걸 제쳐두고 당장 찾아가야 되는 사람들이 내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제일 타협이 쉬운 사람들도 가족인 것 같아.


S: 음... 나는 최근에 가족한테 보인 내 사랑의 모습으로는, 별이가 항상 엄마랑 자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근데 별이가 죽고 나서 지금까지 내가 한 건 엄마 방 가서 같이 자요. 원래는 그 침대가 딱딱해서 거기서 못 잤거든요. 근데 한 달 넘게 그 방에서 자고 있어요. 그게, 그게 나한테는 근래 들어서 내가 보인 사랑의 장면인 것 같아요. 그냥, 누군가의 빈자리가 있을 수 있는 곳을 내가 대신 가서 채우는 것... 


나는 근데 아버지의 모습에서 되게 공감이 갔던 것 중에 하나가 웅이도 그렇고 낙천이 아저씨도 그렇고 자기가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빚을 갚으려고 집에 데려와 키우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가르치는 게 되게... 

"-당신은 잊어버릴 일은 좀 잊어뿔고 살아요. 뭔 그르케 하나하나 다 기억을 허고 그것을 다 갚어야만 헌다요?
-갚는다고 갚을 수 있는 일이간?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믄 그거는 하믄서 살라고 하는 것뿐여." 

나는 그 포인트는 공감이 많이 갔어요. 나는 사랑에 대한 정의는 대상이나 시기나 상황에 따라서 바뀌었지만, 인생에 대한 정의는 한 번도 안 바뀌었는데 한 2-3년을 기점으로 인생은 내가 빚을 지고 그 빚을 갚아가는 것, 그게 인생의 여정인 것 같다... 그래서 되게 아버지가 낙천이 아저씨나 웅이한테 어떻게든 빚을 갚으려고 하는 그 마음이 되게, 그냥 그 마음이 되게 공감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해도 본인 마음에는 뭔가 충분히 다 갚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도 있겠다. 


나는 그런 빚진 마음에 있어서 제일 생각나는 건 그래도 언닌 것 같아. 나는 되게, 항상, 언니가 나를 여러 번 살렸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빚을 많이 졌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내가 인생을 그렇게 정의 내린 이유가 언니였을 수도 있어요. 인생은 그렇게 빚을 지고 내가 빚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갚아가는 게 아닐까라는 그 정의가 생각해보면 언니로부터 시작된 걸 수도 있어요. 나도 언니 옆에서 어떤 식으로 순간순간 도움이 되려고 하지만 그걸 다 갚을 수는 없는 빚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SKIP]


S: 첫 번째 부분을 마무리하며, 제일 좋았던 문장? 저는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하고 있냐?
-잘 안 되냐?
-나는 니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거 보는 게 좋았고나.
-매일이 죽을 것 같어두 다른 시간이 오더라."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벌써 육 년이 흘렀구나...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면 이 말을 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나는 앞으로 쏟아지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을 모아 이마부터 콧등까지
수십 번을 쓸어내렸다. 탈진한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기운을 차려 겨우 들려준 말이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건 아니라고 해서.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면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라고 해서. 붙잡지 말고 흘러가게 놔주라고 해서." 


Y: 나는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채 쏟아져 나온 비탄과 차마 나를 다 내려놓지 못해서 발생한 남의 탓과 무엇과도 연대하지 못해 고립된 개인적인 원망들. 차마 없애지 못하고 파일을 따로 만들어 저장해 놓은 맥락이 닿지 않은 메모들. 삭제도 수정도 하지 못한 채 파일을 만들어 저장해놓으니 새로 시작할 수가 없었다. 저장해놓은 파일 속의 부서진 글들을 불러와 매일 다시 읽어보는 일. 나는 모두 버리고 새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바뀌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일 파일 속의 글을 불러와 조금씩 고치는 일로 시간을 보냈는지도. 큰 줄기는 손도 대지 못하고 '을'을 '은으로 '그'를 '당신'으로 '들판'을 '벌판'으로 수정하면서. 그러나 그럴수록 절실히 깨달을 뿐이었다. 차마 버리지 못해 저장해놓은 깨진 것들을 바닥까지 비워내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조차 없다는 두려움에 눈꺼풀이 떨렸다.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그 별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
"아버지 몸피가 이렇게나 작아졌는가, 싶지만 않았다면 아버지를 흔들어서 아버지가 이러시면 어떡해요, 묻고 싶었다. 윗목에 놓인 이불을 펼쳐서 덮어주고 베개를 목 밑으로 넣어주다가 나는 영양이 다 빠져나가 얄팍해진 아버지의 어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말해지지 않은 무엇이 아버지 심중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인가. 내가 이마에서 손등을 내려주려 하자 아버지는 잠결에 다시 손등을 이마에 얹었다. 작은방의 아버지 곁에 가만히 누워 발을 뻗어봤다. 아버지의 정강이뼈와 내 무릎이 부딪쳤다. 살집이라곤 전혀 없는 아버지의 정강이. 죄송해요, 아버지. 허무와 두려움이 밀려들어 어둠 속에서 아버지처럼 내 이마에 손등을 얹어봤다." 


[EXTRA]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와 헤어지게 될 때 가끔 그때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아버지는 가게에서 막 뛰쳐나와 한 쪽 발엔 슬리퍼를 한쪽 발엔 고무신을 게어 신고 손을 흔들지도
어쩌지도 못한 채 나를 태운 버스를 쳐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버스가 출발한 후 아버지는 그 자리에 얼마나 더 서 있었을지를. 나를 태운 버스가 사라진 후의 어두운
신작로를 아버지는 무슨 마음으로 내다보았을지를. 아버지가 얼마 후에나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지를."


"니가 딸이어서 참말 좋았다, 이제 더는 아무것도 얻지 않아도 되겄다, 싶었어." 


"알지. 내가 그거도 모르간. 살았으믄 해서 그맀지. 창이가 이걸 잘 먹거든." 


"...기묘한,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치유되지 않을 것 같은 슬픔. 그럴 때면 내 손을 뻗어서
아버지 손가락에 깍지를 끼곤 했다. 아버지 손은 크고 내 손은 작아서 균형이 맞지 않는 깍지를 끼고
아버지? 부르며 괜히 허공을 향해 깍지 낀 아버지 손과 내 손을 뻗어 흔들어보곤 했다.
한 번은 아버지에게 손가락이 이래서 불편하지 않아요? 물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손톱도 없이 뭉툭한
자신의 손가락을 잠깐 바라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다, 이런 것은......이라고.
눈을 가리고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른 채 손가락을 잃은 후부터
그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아버지가 치러냈을 것인지."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지난 몇 년 동안 시골집의 부모에게 전화조차 제대로 걸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에게. 내가 편치 않아 부모가 곁에 오게 하지도 않았다. 다음에요, 다음에 뵈어요,
다음에 해요...... 그랬다.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던 일들을
곧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아버지가 원한 건 어려운 일들이 아니었으니까.
아버지는 혼자 있는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했을 뿐이었다. 얼굴을 보고 밥을 같이 먹고
내 집 감나무에 거름을 묻어주고 싶어 했는데 나는 다음에요,했다.
가끔 J시에 내려가 아버지와 함께 뒷산을 천천히 오르거나 꽃게를 사서 읍내에 다녀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선산에 가던 일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낡은 북의 먼지를 쓸어내고 장단을 하며
이 산 저 산 꽃이 피네...... 소리를 낼 때 곁에서 들어주는 일도 하지 않았다."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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