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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닙 Jan 28. 2022

사장님 퇴근 좀 시켜주세요

육퇴가 뭐죠 먹는 건가요


퇴근이다! 발걸음이 가볍다. 여덟 시 사십 분. 늦은 시간이긴 해도 이 정도면 선방했다. 오늘도 몸과 마음을 다해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때다. 천천히 하루를 곱씹어 보기도 전에 우리 사장님이 나를 찾으신다. 왜앵왜앵-. 아니 방금 퇴근했는데 다시 부르시다뇨. 차라리 야근이 낫지, 퇴근 후에 다시 부르는 건 반칙 아닌가요? 


일하기 싫어 몇 분을 뭉그적댄다. 방에 들어가 토닥토닥 일 처리를 하고 부엌으로 나와 늦은 저녁을 부지런히 차려 먹는다. 저녁 식사는 최대한 오래 한다. 원래도 밥을 느리게 먹는 편이긴 한데, 저녁은 더욱더 그렇다. 아침은 전날 남겨둔 밥 한 주걱을 대충 김에 싸 먹고, 점심은 허겁지겁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저녁만큼은 다르다. 고기 요리와 뜨듯한 국, 종류별 김치, 반찬가게 반찬들을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느직느직 젓가락질한다. 사흘 묵은 반찬도 맛있게 음미하면서. 


배가 불러오니 한층 여유가 차오른다. 천장의 환한 형광등을 끄고 자그마한 달 모양 무드등을 켠다. 어둠에 휩싸인 거실에 전구색 조명만이 은은하게 빛나는 이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고요한 공기가 감돈다. 평온하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와서 소파에 비스듬히 눕는다. 오후에 받지 못했던 부재중 전화와 밀린 카톡을 확인한다. 웃긴 동영상도 찾아보고, 평소엔 흘려 넘겼던 광고도 끝까지 본다. 퇴근하고 나면 별것이 다 재미있다. 친구들이 SNS에 올린 소식은 어쩐지 동경하는 마음으로 본다. 평일에 연차 내고 호캉스 간 동료, 산 트레킹하는 친구, 멋진 바디프로필을 찍은 후배. 주말도 평일과 다를 바 없이 출퇴근하는 나는 그저 하염없이 부러워할 뿐이다. 


어느덧 열한 시. 퇴근 후의 여유는 두 시간 남짓, 짧지만 행복했다! 이 밤을 끝내기 아쉽지만 잘 준비를 한다. 자정이 넘어가면 내일의 나는 좀비가 될 테니까. 사장님은 새벽에도 종종 날 호출하곤 한다. 게다가 요즘은 새벽 5시 45분만 되면 일어나신다. 그러니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잠들어야 내일도 힘차게 출근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 사장님은 인생 9개월 차, 한국 나이로는 두 살 아기이시다. 뭔가 불만이 있으면 그르렁 목 긁는 소리를 내고, 의자에 앉으면 양팔을 뻗어 식탁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 자세가 영락없이 사장님 포스라 종종 그렇게 부르곤 한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퇴근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 사장님을 재우고 ‘육아퇴근’의 기쁨을 맛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앓이, 더워서, 추워서, 뒤집다가 자세가 불편해서 등등 수십 가지 이유로 중간중간 낑낑 울며 엄마의 손길을 요구한다. 그래서 아직 육퇴 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다. 저녁을 천천히 먹거나 소파에서 휴대폰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시간 속에서 자그마한 해방감을 찾는다.  


여전히 육퇴에 대한 일말의 환상이 남아있기는 하다. 영화 한 편 끊기지 않고 보기, 알딸딸해질 정도로 걱정 없이 맥주 마시기, 30분 동안 명상요가하기 같은 것들 말이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까 말까 전전긍긍할 필요 없는 진정한 육퇴 라이프를 기대하며, 오늘도 기도를 한다. 사장님, 부디 적게 일하고 (시간을) 많이 벌게 해주세요!



2021년 6월 씀

새닙의 육아에세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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