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돌을 맞이하며
별아, 안녕? 네게 쓰는 첫 편지네. 편지를 쓸 땐 이렇게 안녕이라는 말로 시작한단다. 네가 온종일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지. 아빠가 출근할 때,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보았을 때, 그네 타며 엄마에게 신나게 손 흔들 때. 언제나 안녕! 안녕! 안녕! 하고 말해주잖아.
안녕은 태어나 가장 처음 들은 말이기도 해. 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포대기에 싸여 얼굴만 빼꼼 내놓은 너. 스물두 시간 동안 진통하느라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는데, 네 얼굴을 보자마자 어디서 힘이 생겼는지 저절로 “안녕, 내 아가”란 말이 튀어나왔어. 핏기가 채 가시지 않았는데도 반짝반짝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지. 분만실 천장이 구름무늬 벽지여서 그랬나. 그 순간 우리 둘만 하늘 위에 동동 떠 있는 기분이었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네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어. 붉고 진한 서양 자두 같은 입술, 앙다물었는데도 살짝 올라간 입꼬리, 일자로 곧게 뻗은 눈썹, 작지만 각 잡힌 콧방울, 까무잡잡한 피부. 아,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었지. 모든 게 네 아빠를 쏙 빼닮았다는 걸. 고백하자면 아주 조금 슬펐단다. 날 닮은 곳이 하나도 안 보였거든. 첫째 딸은 아빠 닮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 뭐야. 내 유전자는 다 어디로 간 거지?
한 달 두 달 클수록 점점 더 아빠를 닮아가는 너. 개구쟁이 같은 표정은 물론이고, 신중하고, 집중력 좋고, 잠귀가 밝은 것까지. 처음엔 그래도 어디 나 닮은 데 없나 요리조리 찾아보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똑같은 표정으로 웃는 모습을 보는 재미로 하루하루 행복을 쌓는단다. 안 닮으면 어때, 너도 나를 제일 사랑해주는걸.
하루는 종일 너와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한 날이 있었어. 급한 빨래나 젖병 닦는 것도 전부 제쳐두고 네 옆에 찰싹 붙어 놀아주려고 마음먹은 날이었지. 그날 깜짝 놀랐어. 네가 내게서 먼저 시선을 돌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일부러 눈동자를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넌 고개를 돌리지 않더구나. 도리어 엄마 눈을 다 빨아들이겠어! 하는 느낌으로,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날 보았지.
별아, 엄마는 세상 무엇보다도 너를 가장 사랑해. 우주에 무수히 많은 별들의 개수만큼. 그런데 가끔 내가 널 사랑하는 것보다도 네가 날 몇 곱절 더 사랑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종일 눈 마주치고 놀았던 그 날도 그랬지. 우리 둘 중에 과연 누가 더 많이 사랑하고 있을까? 정답이 엄마였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너인 것 같아. 과분하고, 고마워. 나는 평생에 걸쳐 너를 더욱 사랑하면서 갚으려고 노력할 거야.
지지난 주에 드디어 첫돌을 맞이한 딸아. 너의 일 년은 어땠니? 때론 두렵기도 하고 때론 즐겁기도 했겠지? 세상 모든 게 처음이라서 말이야. 낮잠과 밤잠을 구분하는 것, 새벽에는 응가도 안하고 우유도 먹지 않고 길게 자는 것,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것, 원하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손을 흔들어 안녕 인사하는 것. 네겐 얼마나 엄청난 과제들로 느껴지겠어.
하지만 넌 겁은 많아도 얼마나 또 용감하고, 호기심 많고, 배움을 즐거워 하는지. 엉덩방아를 수십번 찧으면서 걸음마도 하고, 가슴팍보다 높은 소파를 딛고 올라가려 하고, 노래가 나오면 손뼉을 치고, '별이 어딨어?'하고 물으면 작은 손바닥으로 네 가슴을 토닥이며 방긋 웃기도 하네. 너도 모르게 바쁘게 자라나고 있는 네가 기특하고 신기하단다.
엄마의 일 년은 어땠느냐고? 엄마도 많이 자랐어. 살아온 31년보다 지난 1년 동안 훨씬 더 많이 자란 것 같아. 아니, 키는 이상하게 좀 줄어들었어. 대신, 마음이 많이 여유롭고 단단해졌다고 느껴. 일상의 규칙들을 천천히 배워가는 널 바라보며 나는 시계와 달력을 세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연습을 하는 중이야.
앞으로의 일 년은 또 어떨까? 아마 눈 앞에 새로운 것들이 훨씬 더 많이 펼쳐질거야. 너의 모든 도전을 응원하고, 더 많이 눈에 담아두고, 더 많이 사랑할게. 그리고 그 기억들을 잊지 않고 편지로 적어둘게. 바로 보여주지는 않을거야. 15년 뒤 즈음, 네가 엄마에게서 자꾸 떨어지고 싶어할 때 비장의 카드로 이 편지를 보낼거야. 벌써부터 딸의 사춘기를 걱정하는 난 철부지 엄마일까! 그래도 괜찮지? 사랑한다, 별아.
2021년 9월 씀.
새닙의 육아에세이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