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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Apr 03. 2024

내 꿈은 나무늘보

진로*교육*미래

마왕 나 잡생각 많이 하는 고 1이야. 언제부터 내가 '니 꿈이 뭐니?'라는 질문에 직업을 말하게 됐을까? 요즘 고등학교 초기라 선생님들이 수업 초기에 자꾸 물어보시걸랑. 어렸을 때는 비행기 타는 거 같은 게 내 꿈이었는데.
왜 꿈은 직업이어야 해? 물론 인생에서 직업이라는 게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말이야, 난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쯤 때부터 내 꿈을 적을 때 직업을 적은 거 같아. 친구들의 영향도 있긴 했지만 젤 큰 영향은 담임쌤 이었던 거 같아. 난 꿈을 쓰는 종이에 크게 '나무늘보'라고 썼었어. 근데 선생님이 막 웃으면서 ‘나무늘보는 될 수 없어. 직업을 써’라고 하시는 거야. 나는 그때 내가 틀린 줄 알았고 큰 충격이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무늘보도 될 수 있는 건데 말이지. 느림과 여유를 즐길 줄 아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은 거 아니겠어?




훌륭한걸요. 너무 훌륭한 거 같아요. 그러니까 뭐를 하고 살 것이냐. 이 WHAT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WHAT이 뭐가 되든지 간에 어떻게 살 것이냐 라는 HOW의 문제는 사실 WHAT의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우리나라만큼 HOW에 대한 문제를 깔보는 나라가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해져서 훌륭한 청소부나 뛰어난 택시운전사나 뭐 이런 개념들이란 건 없어지고 뭐, 비리든 뭐든지 간에 검사 의사 변호사 WHAT의 문제만 등장하게 되는. 그래서 무슨 나무늘보를 이미 그때 초등학교 2학년 때 대답을 하셨다면 그렇다면은 그 안에 답이 나와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때때로 제 꿈에 대해서 제가 대답하던 시기를 떠올리곤 하는데 저는 어렸을 때 꿈이 번데기장수였어요. 근데 번데기장수라고 이야기하면 선생님들 가운데서는 혼을 내는 분들도 계시고. 집에 가서 어머님한테 그런 이야기하지 말라, 학교에서 뭐 배웠냐고 그런데는 둥, ‘번데기장수가 될래요’에서 저를 안아서 들고 얼르면서 무척 귀여워했던 분은 우리 엄마밖에 없었던 것으로. 배를 잡고 웃으면서 깔깔대며 즐거워했던 건 우리 엄마 혼자. 나머지 너무나 많은 수심과 근심의 눈동자 때문에 내가 번데기장수라 대답했던 것에 대해서. 일단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 그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더라고요 사. 의사 변호사 뭐사. 아휴 그것도 너무 짜증 나서 그냥 장군이라 그랬어요. 군사독재 시절이라 장군 되겠다 그러면 아주 먹어줬습니다. 장군. 뭔데요 뭐. 군인이 되겠습니다라는 얘기하고는 또 다른 얘기란 말이에요 그거는. 장군이 될래요 그거는 군인이 되어서 직업군인으로서 내 조국 지키겠습니다 이게 아니라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 더 세거든요 그 당시에는.


그러나 저는 지금 번데기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이 되면 나른한 강북 빈촌의 골목에 나타나서 ‘자 번데기가 왔어요 번데기, 고물 폐수지 전부 받습니다. 번데기가 왔어요.’라고 이야기하던 그 번데기 장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 매일 새벽 2시가 되면은 ‘자 왔어요 왔어 고스가 왔어요’라는 메가폰 대신 마이크를 열고 골목보다 조금 넓은 우리나라 전국을 향해서 오늘 번데기가 물이 좋다는 둥 아주 고소하다는 둥 영양가 만점이라는 둥 이런 거짓말을 합니다. 번데기가 영양가 만점인 건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중략)

그리고 동네 꼬마들에게는 이 번데기장수 아저씨가 최대의 히어로이자 엔터테이너였단 말입니다. 그 아저씨만큼 재밌는 게 없었어요.


번데기장수 아저씨는 번데기 장사가 잘 안 되는 더운 여름날에는 종목을 엿으로 바꿔서 나왔습니다. 그래가지고 ‘찰칵찰칵, 자 울릉도 호박엿 울릉도 호박엿..’ 저는 무대에 서서 마이크로 사람들에게 이번엔 울릉도 호박엿에 이어서 그다음에 쌀 뻥튀기에서 한번 놀라게 했다가 그다음에 번데기 쫙 끄집어내면서 짭짤한 국물 맛을 사람들에게 음미하고 있는. 이런 장면을 즐기고 있는 듯한 그런 생각이 듭니다.


비록 골목의 개념도 번데기장수의 개념도 많이 흐려졌지만 제가 일종의 번데기 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이 번데기 장사를 해서 장사가 잘 되면 우리 순이 옷가락지 하나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욕망과 비슷한 희망들을 품고 살지만 그러나 또 오늘도 번데기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나오는 것은 내가 골목에 나타나서 ‘자 번~’ 이라고 할 때 까르륵 뒤로 넘어가듯이 웃으면서 나타날 그 동네 익숙한 꼬마들의 얼굴이 보고 싶고 그것이 나의 인생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힘들고 손아구가 아프지만 그 엿을 팔면서 엿가위로 장단을 맞출 때 나도 모르게 흥이 나면서 장단을 맞춰대면서 지금까지도 번데기와 엿을 팔고 있으면서도 이 엿 파는 것이 재밌다 생각되는 것이 나의 천직이라서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나무늘보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이 나무늘보처럼 잘 살다 가시기를 바라고 저는 아마 죽는 그날까지 소원이 있다면 제 발걸음이 리어카를 끌 수 있는 그날까지는 번데기 리어카를 끌고 엿을 팔고 동네방네에다가 사기를 치면서 그러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예쁜 처자를 누나로 두고 있는 꼬맹이 하나가 오면 한 숟가락 더 퍼주면서 ‘누나는 뭐 하니?’ 이렇게 한번 물어보는 거죠.



@ 2006.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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