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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Aug 21. 2017

퇴사후 #20 전 남친 일기 훔쳐보고 '힐링'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요란스럽게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내 마음도 변덕스럽다. 실컷 쉬고 왔으면 됐지 뭐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지 모르겠다. 별다른 노동도 안하는데 몸은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강의 듣느라 힘들었다고 핑계대기는 좀 부끄럽고 확실한 건 온몸이 젖산으로 딱딱하게 굳는 느낌. 누군가 쑤셔 넣어야 겨우 돌아가는 뇌 때문에도 고민이다. 하루 종일 ‘비타민제’만 찾고 있다. 나름 고민 끝에 얼큰한 김치콩나물국 한 사발 거나하게 먹었다. 그리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앉아 팥빙수를 주문했다. 입은 즐거운데 기분은 여전히 별로다. 이놈의 멘탈은 언제쯤에야 태평양 바다처럼 잔잔해지려나. 내 멘탈은 서핑에도 부적합 수준으로  울렁거린다.




 네이트판을 열었다. 나도 그렇지만 어이없는 글이 많다. 그리고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줄이 달려 있는 답글들. 다들 어쩜 그렇게 얼음장 같이 냉랭한지, 꼭 요즘의 나 같다. 네이트판을 보다가 우연찮게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열었다. 20대의 짠내가 그득하다. 그래도 생각 없이 즐겁게 살던 때다. 당시 고민들은 지금의 고민들과 비교하면 날아갈 듯 가볍다. 오랜만에 들어온 싸이월드 홈페이지는 날짜별로 쓴 글들을 검색하게 해 놨다. 어떤 날짜에는 ‘멜랑꼴리’한 글만 있고 어떤 날은 행복한 분위기의 글만 있다. 시기별로 인생패턴을 통계처럼 볼 수도 있다. 남자친구는 보통 10월쯤 사귀기 시작해 1~2월쯤 헤어졌다. 회사도 항상 1~2월에 관뒀다. 이게 바로 명리학에서 말하는 ‘관’이 깨지는 시기인 가 보다. 관은 ‘남자’ 혹은 ‘직장’을 뜻한다. ‘사주’상 운발은 꽤나 성실하게 따라온 듯.


대학생 때 만난 전 남친의 싸이 홈페이지에까지 들어갔다. 흥미롭다. 싸이를 유독 즐겨 했던 그였다. 2015년에도 글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전체공개의 다이어리가 많아 다 읽었다. 그 아이와 사귈 때는 참 알 수 없는 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다이어리를 찬찬히 읽고 나니 저렇게 단순한 사람이 다 있나 싶다. AB형이라 미스테리한 아이라며 친구들에게 침 튀기며 떠들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스스로의 세상에 갇혀 판단력이 흐릴 때가 많다.   


그 아이는 나를 만날 때부터 ‘진로’ 걱정으로 가득했다. 나를 만날 때도 맞지도 않는 전공 공부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연애’ 감정에만 심취해 있었다. 하루는 그 아이의 휴대전화에 ‘번개’라고 저장해 놓은 번호를 보고 따졌다. 채팅 로 만난 여자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번개반점 번호;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는데 그 아이는 오죽했을까. 2년 전 회사를 관두고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10년 가까이 쓰인 그의 다이어리에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괴로움’으로 가득하다.


이제 와 새삼스럽게 인간적인 공감대가 형성된다.  한참 전 남친 다이어리를 들춰 보고 얻은 왠지 모를 힐링. 이건 또 뭔가 싶다. 사는 게 다 그렇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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