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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gative to Positive Aug 20. 2018

LOVE #2 설렘이란 걸 느끼다

365 흐림이란 건 없으니까


 2017년 5월. 청량한 하늘이 유난히도 예뻤다. 수긍할 만한 적당한 열기에 푸른 여름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국적인 게 좋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게스트 R이 우리집에 오는 날이다. 올 시간이 다 됐는데 영 소식이 없다. 이상한 기분에 창문을 열었다. 파란 하늘. 그리고 그 아래 하늘색 셔츠를 입은  R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식 비밀번호가 익숙지 않았던 그. 하염없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보통 손님의 프로필은 두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과도하게 잘 나온 사진을 올려 전혀 알아보기 어렵거나 셀고자여서 역시 알아볼 수 없는 경우다. R은 후자였다. 내 기준에 수더분하고 ‘멋’에 관심 없는 부류가 많은 미국에서 온다기에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나름의 큰 키에 자신의 몸에 맞게 핏한 푸른 셔츠를 입은 R. 예상치 못한 멋짐폭팔이란 게 느껴졌다.

창문을 열고 위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  푸른 하늘의 조화가 잠시나마 내 판단력을 흐리게 한 걸 지도.

호스트 초반에는 막연한 기대란 걸 하게 된다 . 멋진 싱글남이 우리집에 찾아와 생각지도 못한 로맨스가 펼쳐지는 것. 아마 호스트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물론 현실은 다르지만.

나는 방 두개를 외국인에게 빌려주고 있었다. 방 하나는 프랑스 친구 W와 A가 쓰고 있었고, 나머지 방 하나에 R이 들어가기로 돼있었다. W와 A는 방 안에서 외출 준비에 들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R의 체크인을 도와주고 나는 W와 A에게 로 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Handsome guy야”

“그래. 그렇네.” 그런데 이상하다. W 표정, 누가봐도 사회생활 하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친한 언니 친구에게 톡을 보내 “멋진 게스트가 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왜 그랬을까? 긍정과 발랄함의 상징이었던 프랑스 친구 W와 몇일 같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업됐던 것 같다. 마치 20대로 돌아간 듯.


여하튼 난 R의 호스트로써 누구도 주문하지 않은 ‘책임감’을 불태웠다. 그의 짧은 4일 일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며 매니징했다. 심지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약속에도 끼워주었다. 친구 차로 남양주쪽으로 드라이브를 하며 잠실 롯데타워니, 잠실구장이니 침 튀기며 떠들어대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도 방문해 그간 배운 지식을 펼쳐냈다.

누구와 있을 때 ‘어색한 기류’ 못 참는 성격이다.  상대방의 속도라는 걸 전혀 생각지 않고, 서울에 대한 정보랍시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 붓듯 떠들어댔다. 그의 반응은 느렸고, 나는 답답해했다. 한강에 데려갔을 때 특히 그랬다. 결국 “나에게 관심 1도 없구먼” “이렇게 잘해주는 호스트가 어디쒀”라며 한참을 씁쓸해 했다. 그는 지방 도시 여행을 위해 4일 후 떠났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는 내게 ‘복국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조금 바쁘기도 했고, 뭔가 틀어져서인지 “못 먹는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미국으로 갔다.

인연의 끈은 근근이 이어졌다. 페이스북으로 간간히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서로의 게시글에 좋아요 따위를 눌러주었다. 한창 관광통역사 공부를 하고 있어 전국의 관광지, 유적지를  떠돌아다니며, 사진과 글을 올렸다. 그는 이런 나를 흥미로워하고 반응해줬다. 오프라인에서와 달리 적극성이 느껴져 흠칫하며 놀라기도 했다.

그러고 몇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는 나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날렸다. 너는 참 흔치 않은 조합이야. 지적인데 재밌어. You are very Knowledgeable and so much fun. A rare Combination. I still wish I had spent more time with you. 뭐 이런식의 메세지였다. 지적이다, 스마트하다 류의 칭찬을 좋아하는 터라 나도 모르게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 세상 고민에 쩔어 있던 나였지만 잠시나마 좋은 모습을 보였구나 싶어 더 좋았다.

최근 영어 모임에 갔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곳에서 영문학 석사까지 했다는 분이 이런 말을 한다. “Fun이라는 말을 보통 웃기다는 말로 생각하잖아요. 보통 이성한테 호감 있을 때 You are fun, I want to spend more time with you.” 이런 식으로 말해요.

“띵.”

오랜만에 기분이 참 좋았다. 오랜만에 설렘이라는 것도 느껴졌다. 나에게 긍정의 감정들이란 게 피어났다.

일주일 전. 그에게 메세지가 왔다. 내년에 일본과 한국 방문 예정이란다.

오랜만이다..이런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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