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ji Forrest Lee Nov 12. 2018

첫 번째 계획변경

@울란바토르, 몽골

2018. 8. 15. 수


러시아를 대표하는 열차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에서부터 울란바토르를 지나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있는 러시아의 도시 이르쿠츠크로 가는 기차가 있다는 사실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울란바토르와 이르쿠츠크를 둘 다 여행하고자 하는 나를 위해 준비된 열차가 아닌가 싶었다.


몽골에서 4박을 한 뒤 금요일 오후에 이르쿠츠크에 가는 기차를 타는 게 나의 계획이었다. 그러면 그 기차는 23시간을 달려 다음 날 오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기차가 몽골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국제선 열차라서 사전에 인터넷으로는 구매할 수가 없었다. 울란바토르에 사는 기철에게 부탁하니 여권 사본을 보내주면 대신 살 수 있기는 하지만 몽골에 와서 사도 늦지 않을 거라고 했다. 좀 불안했지만 할 수 없이 몽골에 도착해서 사기로 했다.


월요일 저녁에 도착해서 여차저차 화요일 하루가 지나고 수요일 오후에 기차역에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수요일 오전에 기철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큰일 났다고 한다. 하루 한 대 밖에 다니지 않는 이르쿠츠크행 기차의 금요일 출발 편이 매진되었다는 것이다. 마침 이번 주에 그 기차를 타고 울란우데라는 도시에 가야 하는 다른 한국인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알게 된 것이다. 그 한국인 친구와 같이 부랴부랴 기차역에 가서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으나 정말로 매진이고 그 사이 취소한 사람도 없었다. 갑자기 이후 계획이 다 틀어지게 되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혹시 누군가 취소를 할 수도 있으니 기다려볼까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몽골어를 할 줄 모르는 내가 매일 취소표의 여부를 확인해볼 방법도 없고 그러다가 토요일 기차도 못 타면 정말 곤란해지기에 우선은 토요일 기차를 끊었다.


울란바토르를 떠나 일주일 뒤 아이슬란드에 들어가기까지는 교통편이 제한적이어서 그야말로 시간 차 공격이었다. 우선 울란바토르에서 이르쿠츠크까지 하루 한 대의 기차로 23시간이 걸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있는 알혼섬까지 드나드는 차편도 편도 6시간씩 걸리는 데다가 각기 오전에 밖에 출발하지 않는다. 바이칼 호수는 내가 이번 여행 초반부에 가장 기대하고 있는 여행지 중 하나인데 이르쿠츠크에 예정보다 하루 늦게 도착할 경우 호수를 보러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집에 와서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목사님께도 이 일을 말씀드리니 이르쿠츠크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 1시간이니 비행기를 타고 가라면서 표 값을 대신 내주시겠다고 했다. 너무 감사했지만 이미 숙식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에 그렇게까지 받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르쿠츠크행 항공편도 토요일밖에 없어서 비행기로 간다고 해도 딱히 일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중인 남편을 카톡으로 열심히 방해하며 장장 4시간 동안 머리를 싸맨 뒤 내린 결론은, 바이칼 호수를 여행한 후 모스크바까지 횡단 열차를 타고 가려던 계획을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으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3일이 넘게 걸리는 여정을 6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3등석도 너무나 타보고 싶었고 비행기를 타게 되면 추가로 비용도 많이 들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야 했다. 


나는 알혼섬에 다녀오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다음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한국에서 미리 사 둔 기차표를 취소하고 모스크바행 비행기표를 결제했다.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 같아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앞으로 여행을 하면서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하겠다 싶었다. 어떻게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만 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고민하고 의논하고 해결해가는 과정 자체가 여행이다. 여행지의 풍경을 보는 일은 사진으로, 영상으로 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은 내가 집에서 나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그 상황에서 무엇을 중심에 두고 어떤 결정을 하는지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더 알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각종 예기치 못한 일들은 여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여행을 여행답게 만들어가는 요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