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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ji Forrest Lee Apr 07. 2022

봄이를 만나기 하루 또는 이틀 전

한 편으로 쓴 임신일기


결국 이날이 왔다.


출산휴가만 시작하면 여유롭게 그동안의 임신 생활을 돌아보며 글로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휴직 이후 일주일이 넘도록 제때 마무리하지 못한 잔업들을 하느라 시간이 가버렸다. 그다음으로 2021년이 가기 전에는, 또는 2022년이 시작된 첫날 정도에는 뭔가 소회를 적어둘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흘러 결국 유도 분만 전날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자책은 하지 않는다. 오늘이라도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기특할 뿐이다.


와, 근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써야 할까? 10개월 동안 머릿속으로 이거랑 이건 꼭 기록해놔야지 했던 것들은 많은데 막상 이 글이 끝날 때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Chapter 1.



4월 24일


봄이가 우리에게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전날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집에 오며 만약 임신이 확인된다면 그 순간 내 감정이 어떨지 상상해 봤다. 순도 100%의 기쁨과 환희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그냥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런 엄마도 있는 거잖아?


아무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첫 소변으로 검사했다. (이게 제일 정확하다길래) 결과는 선명한 두 줄. 화장실에서 나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풍에게 I'm so pregnant! 이렇게 외쳤다. 왜 때문에 영어로? 나도 몰라.


우리 둘 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리송했던 것 같다. 어제 미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두길 잘했다.


사실, 이 직전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긴 했지.


임신을 두고 엄마와 줄다리기를 한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결혼 허락에 대해서 까다롭게 굴어서 나를 힘들게 하더니 결혼을 하고 나니 애는 언제 낳을 건지 닦달 아닌 닦달을 해서 또 나를 힘들게 했었다. 나는 아예 안 낳겠다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 볼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 오히려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아서 더 힘들다나. 애를 낳고 안 낳고는 나와 내 남편의 일인데 왜 거기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암튼 그래서 그 문제만 언급되면 둘이 사이가 냉했다가 다시 심경 토로를 하면 좀 이해하는 것 같다가 다시 은근히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말로 내 속을 긁어놨다가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목소리가 좋지 않길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신지 물어봤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하는 말 "너는 다른 안부는 전할 것도 없어."



???



아무리 손주가 보고 싶어도 그렇지. 자식한테 너무 심한 말 아닌가. 상처받았다. 아기를 낳지 않는 딸은 잘 지내는지 못 지내는지 알고 싶지도 않은 존재인가? 진심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참 너무했다.


그래서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 나에게 제일 먼저, 강하게 들었던 생각은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였다. 내 임신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이다. 그런데 그 일로 나를 너무 상처 줬기 때문에 엄마에게 그 기쁨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꼬였나? 글쎄.



4월 26일


하지만 나는 결국 이틀 만에 엄마에게 말하고 말았다. 사실 그 사이에 엄청 오래 고민한 것 같은데 기록을 보니 이틀 만에 알렸더군. 그만큼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고 감정을 겪고 풍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그리고 나란 인간의 입이 그만큼 가볍기도 하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께 출근 전에 연락을 드렸고 출근해서는 선생님들에게도 바로 말씀드렸다.



4월 27일


평일 저녁인데 뜬금없이 시부모님께 같이 저녁을 먹자고 말씀드렸고 식사 자리에서 신나게 하루 일과를 얘기해 주시는 두 분께 뜸도 못 들이고 폭탄을 던졌다. 정말 말 그대로 두 분의 젓가락 든 손이 10초 간 정지되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고 하셨다.



4월 28일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로 임신을 확인했다. 아직 아기는 보이지 않고 아기집만 보였지만 말이다. 초음파를 보여줘도 이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가영이는 봄이가 점으로 찍힌 그 초음파를 보고 벌써 귀엽다고 하는데.. 이해도 공감도 되지 않았다 ^^;; 어떻게 그럴 수 있지?








Chapter 2.



임신 초기 증상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나처럼 모르는 이들을 위해 알려주도록 하겠다.


미친 듯이 졸리다.


하는 일이 없다면 하루 종일 자는 것도 가능하다.


너무너무 피곤하고 뭘 해도 기력이 없다.


집에 들어오면 시체처럼 누워있어야 한다.


핸드폰도 볼 수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책 읽기였다!!



하지만 난 휴가를 내고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지. 음, 본격적으로 피곤했던 건 여행을 다녀온 뒤였던가? 몸이 힘들기도 했지만 휴식보다 더 절실했던 것은 부모가 된다는 예정된 미래에 대한 마음 정리였다. 풍이랑 같이 강릉에 다녀왔다. 그래서 마음 정리가 됐는지? 그럴 리가. 마음은 지금도 왔다 갔다 한다. 그 여행의 진짜 의미는 아마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직장에서 요구되는 일들을 평소처럼 해내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잠시 떠나있을 시간을 확보한 것 아니었나 싶다.



5월 15일


첫 입덧. 이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 날 스승의 날이라고 채윤, 한슬, 지현이가 우리 동네까지 찾아왔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유명한 파스타 가게에 가서 평소 좋아하던 파스타를 입에 넣었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바로 화장실로 직행해서 토해버렸다. 아, 이게 바로 입덧이구나.


다음 날 아침에도 토는 이어졌다. 뭘 먹으면 토하지만, 뭘 안 먹어도 토한다. 안 먹고 하는 토가 더 최악이다. 신물만 나오기 때문에 위와 식도가 다 타는 것 같다. 눈도 시뻘개진다. 그러니 먹어야 한다.



5월 25일


출퇴근할 때 광역버스를 편도 1시간씩 탄다. 원래 살짝 흔들리는 버스의 승차감을 좋아하는 편인데 입덧을 하니 아주 고역이 따로 없다. 버스에 타자마자 의자를 적당히 젖히고 머리를 옆 좌석에 기대고 눈을 감는다. 도착할 때까지 사탕을 몇 개고 입에 물고 안간힘을 다해 버틴다. 입덧에는 사탕이 도움이 된다!! 마른 크래커도 좋다는데 나는 사탕이 제일 좋았다.



이날은 차가 좀 밀려서 더 오래 타고 있었던가? 내릴 때 즈음에 정말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잘 참고 내렸다. 사무실까지 5분만 걸어가면 화장실에 가서 토할 수 있다. 욱욱 거리는 헛구역질을 삼켜가며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결국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서 우왁 토하고 말았다. 하필 그날 아침으로 국에 밥을 말아 먹었던 것 같다. 하아.. 선생님들에게 연락드려서 휴지와 비닐을 부탁드렸고 하이와 즌즌이가 내려와서 치우는 걸 도와줬다. 1층 전자담배 가게 사장님 죄송합니다. 깨끗이 치웠어요.






Chapter3.



12주.


12주만 지나면 된다 그랬다.


예외라는 것도 있을 법 하건만 정말 거짓말처럼 12주가 되니 입덧이 멈췄다. 기운도 좀 났다. 나란 여자, 쉬운 여자.






Chapter4.



사람들이 나보고 임신 체질이라 그런다.


입덧도 심하지 않고, 음식도 안 가리고 잘 먹고, 늘 달고 살았던 소화불량도 없고, 체력도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다고. 임신 당뇨라든지 요통이라든지 변비라든지 어지럼증이라든지 아무튼 임신에 동반되는 여러 가지 증상도 거의 없다. 내가 봐도 내 신체는 좀 임신 체질인 것 같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남이 나한테 '너 좀 임신 체질인 거 같아'라고 말하면 열받는다. 힘들거든???


그리고 몸은 임신 체질일지 몰라도 마음은 영 임신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임신기간 내내 정말 많이도 울었다. 슬퍼서 울고, 화나서 울고, 외로워서 울고, 무서워서 울고.


그전에도 나는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지만 임신한 뒤로 우는 건 차원이 달랐다. 처음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을 땐 분명 이유가 있었는데 점점 그냥 눈물이 나서 운다. 달래주고 위로해 줘도 감정이 달래지지 않는다. 게다가 엄청 서럽게 운다. 막 꺽꺽거릴 정도로 주체가 안된다.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른다. 12주쯤 끝난 입덧과는 달리 눈물바람은 40주까지 계속됐다. 풍도 처음엔 나를 임신 전과 같이 생각해서 이런 눈물바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라는 걸 점점 받아들여 가는 것 같았다.


외로움과 무서움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봐야겠다.


물론 임신한 부부도 싸운다. 서로에게 섭섭한 일이라는 건 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내가 몸이 이렇게 힘들고 호르몬이 미쳐 날뛰는데 너는 나를 일반인처럼 대하고 예전처럼 평등한 관계를 바란다? 그러면 몇 배는 더 서럽다. 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간다.


"난 지금 임신해서 너무 힘들잖아. 그런데 어떻게 예전처럼 똑같이 해주길 바래? 나를 더 배려 해야지."


"그러게, 누가 임신하래?"


다시 한번 말하지만 풍은 결코 저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나의 힘듦을 주장해야 하는 순간마다 저 말을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 자꾸 상상됐다. 그리고 뒤이어 드는 생각은 '아, 결국 이 아이랑 나랑 우리 둘뿐이구나. 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일이구나. 쟤는 도망가도 나는 도망갈 수 없구나. 외롭다. 무섭다.'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만일 정말로 남편이 아이를 바라지 않는 상황이었거나 미혼모 같은 경우에는 정말 얼마나 더 외롭고 무서울까 싶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 미혼모에 대한 안타까움과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커졌다.


약간 다른 차원의 무서움도 있다.


현대사회의 인간이란 매우 우아하고 고상해 보인다. 몸을 써서 해야 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내 자리에 앉은 채로 디지털 화면을 보면서 하지 않나. 내 신체는 잠들고 정신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대다. 실제로 그런 영화들도 많이 있고.


그런 세상에서 임신과 출산이란 인간이 아무리 잘난척해도 어쩔 수 없이 동물이라는 것을(이 말이 좀 거북하다면 생명이라고 바꿔서 이해하시길)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이벤트다. 하나부터 열까지 육체적이다.


조그만 두 세포의 결합이 내 몸속에서 분열하고 또 분열하며 고작 열 달 만에 나랑 똑같은 인간이 되고 내 몸속에서 몸 밖으로 끄집어내진다. 이게 나만 이상한가?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 중에 이런 원시적이고 동물적이고 육체적인 일이 또 있는가? 단연코 없다.


남자들은 경험하지 않는다. 또는 여자들 중에서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모두 이 과정을 통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 경험 안에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존재처럼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의 태생은 다 원시적이고 동물적이고 육체적이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임신과 출산이다. 별로 들은 적도,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이 일을 그냥 내 몸으로 겪어내려니 나라는 존재와 임신 경험 사이의 충돌이 거셌다. 내가 유난스러운 사람인가?


임신 기간 내내 유지된 이 불편한 불일치감이 어쩌면 나의 젠더 정체성과 연결된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다. LGBTQ+ 첫걸음이라는 책을 읽고 난 뒤 젠더 정체성을 조금 더 스펙트럼적으로 이해하고 나서 말이다. 나는 대체로 나를 여성으로 정체화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성 기능, 특히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내 정체성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임신 전에 이것을 알았다고 해서 절대 임신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은 아니다. 나와 남편으로 이루어진 가족으로 살다가 아이와 함께 팀워크를 맞춰서 사는 인생을 바랄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10개월간의 부조화를 견딜 수도 있는 것이니까. 여하튼, 이건 내 추측이지만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Chapter5.



내가 나의 임신에 대해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으로부터는 순수한 축하와 관심을 참 많이도 받았다. 어찌 보면 남의 일이니까 더 심플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선배 엄마들의 공감과 축하가 압도적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리는 순간 내 주변을 둘러싼 관계의 지형도가 엄청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멀어졌다고 생각한 이들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훨씬 더 강하게 결속되었다. 가치관, 관심사, 커리어 등에서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지만 결혼하지 않았거나 출산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대화가 점점 짧아졌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먼저 출산한 친구들이 선물도 보내주고 안부도 자주 물으며 신경 써줄 때, '나는 얘네가 임신했을 때 이렇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는데.. 참 미안하다.'라고 생각했다. 어떤 친구에게는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괜찮아. 나도 그랬어. 근데 내가 출산을 하고 나니까 그다음부터는 마음이 달라지더라.'라고 했다. 새로운 차원의 내리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출산 선배들에게 덜 미안해하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출산 친구들에게 덜 섭섭해하며, 혹시 나중에 그들이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면 내리사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내가 출산 준비에 쓴 돈의 양이다. 내 돈으로 산 봄이 물건이 거의 없다. 특히 옷은 단 한 개도 내가 산 게 없다. 다 물려받거나 선물 받았다.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선물을 받고, 전화로 문자로 편지로 각별한 격려와 관심을 받았다. 봄이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고 나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의 임신과 출산이 이렇게 사회적인 경험인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체 뭐라고 이렇게 사랑을 받나 싶은 생각과 동시에 내가 그래도 이제까지 썩 괜찮게 살았나?라는 근자감도 들었다. 너무 감상적일지 모르지만, 그냥 참 감사했다. 잃어가던 인류애의 회복이다. 내 배속에서 열심히 꿈틀거리고 있는 이 존재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나는 당최 아직도 짐작이 안 가는데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다. 이 축하와 축제의 분위기에 정작 주인공인 내가 제일 동화를 못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나 대신 잔치를 열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 어쩌면 모든 사람의 임신과 출산은 이렇게 주변에서 잔치를 열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도 언젠가 그 역할을 하게 될 날이 오겠지.






어디 보자.


이제 대충 하고 싶은 얘기, 아니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은 다 꺼내놓은 것 같다. 낮에 쓰다가 중간에 멈추는 바람에 애매하게 타이밍 놓쳐버린 또 하나의 글이 될 뻔했지만, 이것만큼은 그렇게 버려둘 수 없다는 심정으로 다소 꾸역꾸역 다 썼다.


지금 시간 23시 41분이다. 이제 8시간 뒤면 병원으로 간다.


내일 하루는 도대체 어떤 스펙터클한 날이 될까.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날 중에는 가장 엄청난 일이 벌어질 예정이다.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오늘 밤은 기도를 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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