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꿈의 의미
한겨울에 입사를 했는데 어느덧 겨울이 왔다. 두 번째도 아니고 벌써 세 번째 겨울인데, 뭐가 그렇게 아직 분통이 터지나 싶고. 제법 익숙해진다 싶으면 새로운 분통이 찾아오는지. 분명히 반복은 아닌데 지긋지긋했고 분명히 낯선 일들인데 전혀 설레지 않았다. 퇴근과 함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시절도 이젠 지나버렸다. 금방 온다던 너는 안 오고,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려 꺼낸 노트엔 낙서만 가득.. 자꾸만 미운 마음이 들어 미운 글씨를 써내려갔다. 나쁜 놈, 벌 받을 놈, 평생 불행할 놈, 당장 뒤질 놈..
쓰는 일을 통해 훌륭해지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건 어떤 유난이라고 볼 수도 있었는데, 좋은 노트와 펜을 쓰면 기가 막힌 문장이 나올 거라는 믿음은 얼마나 신실했나.. 그 어리고 예뻤던 마음을 생각하니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나는 나에게 남은 화려한 문방사우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건 내 첫 고오급 펜, 저건 내 첫 고오급 만년필, 이건 첫 브랜드 노트 커버..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오지 않는 너에 대한 미움, 그보단 모든 나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한 미움이 조금씩 희석되어가며 고개를 딱 드는 순간, 눈이 내리는 거라. 그것도 펑펑! 그 기분은 뭐랄까. 간질간질하면서도 나랑은 전혀 관계 없는 위로를 받은 깔끔한 기분이 드는 게, 기대하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받은 프라이탁 키홀더를 받은 기분이었다. 요새 키홀더를 누가 쓴다고. 세상 쓰잘데기 없이. 하지만 프라이탁은 좋으니까.
이토록이나 무해한 선물이라니. 내리는 결정에 마음을 빼앗겨 집중력을 잃는 순간이 지나가고 지나온 여자친구와의 북해도 여행이 찾아오더니 묘하게 연애 같던 친구와의 첫눈 데이트로 생각이 옮겨졌고 문득 차를 가지고 있던 여자친구가 눈을 끔찍이 싫어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눈이 오는 즐거움을 조금 감춰야만 헀는데 그렇게 숨긴 채 기뻐하는 일조차 퍽 즐거웠던 것 같다. 어떤 좋음은 나쁨이 쌓여야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눈을 싫어하기 싫어 불편해도 면허조차 따지 않고 있는 거란 유난스러운 마음… 이 마음이 언제까지고 지켜졌으면. 그러니까 이런 시간을 맞을 수 있는 거겠지. 별 거 아닌데도 완전한 저녁에 기여하는 순간.
이루든 이루지 못했든, 누군가의 꿈은 반짝반짝 빛나는 기억 하나만으로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무한히 재생되어 퍼져나갈 수 있다. 간직만 하고 있다면 이렇게 언제고 툭 하고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선물을 받은 후 너는 디저트처럼 등장하겠지. 그렇게 고개를 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