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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 Mer Nov 25. 2022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 <윤희에게>

영화 <윤희에게>


어느 새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지나왔고 겨울이라고 하기엔 아직 일러서, 다가올 겨울이 기대되는 계절입니다. 이렇게 쌀쌀해진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이맘때쯤 되면 문득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요.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윤희에게>라는 영화요. 영화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일본의 오타루라는 작은 도시에서, 누군가 보내지 못한 편지가 우연히 발송되면서 시작됩니다. 그 편지를 받은 대상은 영화의 주인공인 윤희의 딸, 새봄입니다. 엄마인 윤희에게 온 편지를 몰래 읽어본 새봄은, 윤희를 설득해 편지를 보내온 오타루로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합니다.


영화 <윤희에게> 포스터


너에게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한테 그런 용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용기를 내고 싶어.



다시 시작할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실은 지난 4주간 글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도저히 완성된 글이 써지지를 않더라고요. 쓰려다 그만둔 글들만 잔뜩 모여서 이 상태로는 도저히 편지를 보낼 수 없겠네, 이번 주만 쉬어야지 하다가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다음 주에는 꼭 써야지, 결심만 하다가 결국 4주나 미뤄지고 만 것이지요.


이상하게도 한 번 쓰는 것을 멈추고 나니까 다시 쓰는 것이 참 어려웠어요. 이미 이렇게 글을 쓰는 걸 멈추었는데, 좀 더 쉬어도 별 차이 없지 않을까? 매주 꼬박꼬박 성실히 써도 모자랄 판에 말도 없이 이렇게 쉰다고 누군가 좋지 않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다시 시작하지 않을 이유, 쓰는 것을 미룰 이유는 계속해서 수도 없이 떠오르고, 다시 쓸 이유는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관성의 법칙이란 것도 있잖아요.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중력을 가진 모든 존재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힘이요. 그래서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할 때에는, 현재의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려면 어떠한 힘이 가해져야만 하는 것 같아요.


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특히 무중력 상태의 실험실조차 아닌 현실에서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면, 현재 상태와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마찰력이라는 또 다른 힘이 존재하거든요. 잘 움직이고 있던 물체도 계속해서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마찰력 때문에 멈추는 만큼, 멈춰있는 물체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보다 큰 힘이 가해져야만 마찰력을 이겨내고 움직일 수 있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멈추었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게 당연하기도 할 거예요. (물론 저는 문과이므로 설명에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힘과 용기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야 할까요? 누군가는 스스로의 의지가 강력하고 넘쳐나는 사람이라서 혼자서도 잘 시작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의지가 나약해서 그런지 참 어렵게 느껴졌어요. 앞서 말했던 영화의 주인공에게의 주인공, 윤희와 쥰 역시 현재를 관성에 따라 살아나갈 뿐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용기를 내지 못해요. 서로에게 보낼 수많은 편지를 쓰지만, 결국에는 부치지 못하죠. 그러던 그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분입니다. 그 도움이 "용기를 내고 싶다"는 작은 의지에 힘을 가해서 그들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고요. 겨울에 시작한 이야기는 두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주인공들이 멈추어 있던 겨울을 지나 봄, 즉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것을 예고하며 끝납니다.




종종 참여하곤 하는 리츄얼 모임에서도 느끼는 건데요, 리츄얼을 꾸준히 하시는 분도 멋지지만 그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중간에 멈추었다가 다시 돌아와서 시작하는 분들을 볼 때였습니다.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잠시 멈추었다가도 어느새 돌아와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누군가 글을 잘 보고 있다는 작은 응원을 전해주실 때마다, 멈추긴 했지만 꾸준히 쓰려고 시도했던 조각글들을 볼 때마다, 제 안에서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해서 힘을 받은 것 같아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란 건 정말 멋지지 않나요? 저도 누군가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보태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만약 멈추어두었던 무언가가 있다면, 아주 작은 용기와 함께 제가 전하는 응원으로 시작하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가을과 겨울 사이, 지금은 다시 시작하기 참 좋은 계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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