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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l 16. 2024

돌치레 _ (D + 1034일, D + 409일)

육아일기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처음으로 수영장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에 부지런히 준비하는데 둘째의 다리에 빨간 발진이 보인다.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크기. 반응을 보니 가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 나중에 연고나 좀 발라줘야겠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리조트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에 도착해 재밌게 놀아주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의자에 앉혔는데 발진이 급속도로 퍼져있었다. 허벅지가 특히 심각했고 선명하게 붉었으며 부어올라있었다. 하지만 둘째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기에 그냥 예정대로 시간을 보냈다. 밥도 잘 먹고 기분도 좋아 보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피부과에 들려 진료를 받으니 알레르기성 발진으로 보인다며 약을 처방받았다. 증상이 시각적으론 심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알레르기라니 안심이 되었다. 약을 좀 먹이면 낫겠지 생각하며 재웠다. 


 다음날은 처형네 가족과 청양 알프스를 가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 준비해 도착하니 사람도 많고 정신이 없다. 둘째는 추운 날씨에 아기띠에 안겨있었다. 나름 따뜻하게 입히고 패딩으로 한번 더 안아 컨디션은 나빠보이지 않았다. 가끔 계속 안겨있느라 지루해서 찡찡거리긴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청양 알프스가 첫째가 놀기에도 수준이 좀 높아 점심은 장모님 농막에 가서 먹었다. 다들 둘째의 발진을 보며 걱정했다. 붉게 부풀어 오른 게 아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둘째의 컨디션이 괜찮고 가려워하지도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시간을 보내다 재우려는데 둘째의 이마가 뜨끈하다. 체온계로 재보니 38.6도. 열이 나기 시작한다. 집에 있는 해열제를 먹이고 재웠다. 뭔가 심상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내가 오늘은 둘째 옆에서 자겠다고 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내의 표정이 어둡다. 해열제를 먹인 후 열이 좀 내려갔는데 새벽부터 다시 열이 난다고 말이다. 체온계로 재보니 39.5도. 해열제가 듣긴 하지만 온도가 높다. 더구나 발진까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근처 소아과를 가자니 하필 새해 첫날, 1월 1일이라 제대로 연 병원이 있을까 싶다. 증상을 보아하니 만약에 대비해 입원이 가능한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세종에 있는 입원이 가능한 소아과는 새벽부터 접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료를 위해 말 그대로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다.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고민 끝에 내가 40분 거리의 대전에 있는 큰 병원으로 둘째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심란한 마음으로 둘째를 차에 태웠는데 아침에 먹은 해열제에 효과가 있는 모양인지 다시 컨디션이 좋아졌다. 대전 병원으로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온라인 예약은 이미 다 차 있었기에 병원 오픈시간인 9시 전에 도착해 최대한 빨리 현장 접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8시 40분쯤 도착해 접수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사람이 한가득이다. 9 진료실까지 있는 큰 규모의 소아과는 새해 첫날부터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부모들로 가득했다. 다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오늘 진료를 하는 의사는 세명인 것 같았다. 9시가 되니 진료실 앞 대기 스크린이 켜졌다. 예약인원 72명. 순간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가만히 둘째 이름을 찾아보니 15번째로 접수가 되어있었다. 예약인원은 오전과 오후를 포함해 온라인으로 예약한 사람을 모두 보여주는 것 같았다.


 9시부터 시작된 진료에 사람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했고 40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되었다. 세종에서는 새벽에 접수를 하지 않으면 네다섯 시간 대기는 흔한데 멀더라도 대전에 오니 확실히 접수대기가 짧다. 간호사가 둘째를 호명하자 짐을 챙겨 들어갔다. 아기를 달래느라 준 과자 부스러기에 콧물자국, 둘째와 나 둘 다 만신창이다.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설명하고 발진도 보여주니 일단 염증검사를 하고 상세설명을 해주겠다고 한다. 둘째의 손가락에 바늘을 찔러 피를 뽑아 검사를 한다. 날카로운 통증에 둘째는 울기 시작한다. 안아주며 달래고 다시 진료실 앞에 가니 이번엔 바로 안으로 들여보내준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다형홍반. 면역력이 약해져서 나타나는 병이며 흔하진 않은데 길면 2주에서 한 달까지 증상이 지속된다고 한다. 붉은 발진은 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컨디션이 나쁘면 입원을 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데 염증수치가 그렇게 높지 않고, 가려워하지도 않으며, 밥도 잘 먹고, 해열제를 먹으면 열도 내려가니 일단 이틀 후에 다시 오는 걸로 예약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 처방받은 약은 교차복용 할 수 있는 해열제 두 개와 발진약, 그리고 가려워하면 추가로 먹이라는 약까지 네 개였다. 피부과에서 단순 알레르기라고 했었는데 규모 있는 소아과에 와서 병명을 확실히 알고 염증 수치까지 설명해 주니 뭔가 안심이 되었다. 진료실에서 열을 쟀을 때 37도 후반 수준이었기에 가뿐한 마음으로 집에 왔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증상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붉은 반점은 상체를 넘어 얼굴까지 퍼지기 시작했고, 가려워하기 시작했다. 벅벅 긁어도 가려움이 여전하니 짜증 내며 울기 시작하고 안아 주더라도 증상이 심한 허벅지를 손으로 잡지 못하게 한다. 손을 데면 다리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열은 39도까지 오르더라도 해열제를 먹이면 내려갔다. 다만 온몸에 퍼진 발진은 아내와 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퀭한 얼굴에 울긋불긋한 몸을 보면 마음이 아렸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밥은 잘 먹는다는 것이었다. 퉁퉁 부은 손으로 밥은 또 얼마나 열심히 먹는지. 밥까지 못 먹었으면 당장 입원하러 갔을 거였다.  


 가려움은 새벽에 절정이었다. 잠이 들었다가도 간지러운지 몸을 계속 뒹굴뒹굴 뒤척였다. 어찌나 벅벅 긁는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둘째는 새벽 내내 잠을 뒤척였다. 


 그다음 날이 아침이 되어도 증상이 나아지는 건 없었다. 열은 계속 났고, 붉은 반점은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으며 허벅지에는 멍과 같은 자국이 생겼다. 첫째가 걱정된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젠 발바닥까지 퉁퉁 부어서 일으켜 세우면 짜증을 내었다. 걷질 않고 기어 다녔다. 그럼에도 밥은 잘 먹었기에 짜증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시간을 보냈다. 안아주면 한결 나았기에 계속 안고 있었다. 허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안고 있는 게 나았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붓기도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컨디션도 좀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희망을 가지며 둘재를 재웠다. 새벽 내내 가려운지 벅벅 긁고 뒤척였지만 열은 확실히 내린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증상이 확연히 좋아졌다. 퉁퉁 부었던 손과 발의 붓기가 많이 내려갔고 가려움도 줄어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잘 걸어 다니고 잘 웃으니 바라보던 아내와 내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특히 얼굴에 있던 반점이 사라진 게 컸다. 옷을 입혀놓으면 보기에 안쓰럽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며 증상이 좋아진 것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의사도 크게 걱정할 건 없어 보인다고 했다. 멍과 같은 자국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추가적으로 약은 5일 치를 더 줄 건데 아마 충분할 거고 그전에 증상이 좋아지면 더 먹이지 않아도 되고 병원도 올 필요 역시 없다고 했다. 2주가 지나도 발진이 사라지지 않으면 방문하라는 말과 함께 진료실을 나섰다.  


 경과도 좋았고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도 좋았기에 가뿐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발진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 뒤 증상은 점점 완화되었고 이틀이 지나니 발진까지 다 사라졌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증상이 심해 입원해서 스테로이드 주사까지 맞은 아이들도 많았는데 다행히 그 정도까지 일이 커지진 않았다. 무엇보다 입원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3~4일 정도를 좁은 병실에서 아파하는 둘째와 있어야 한다고 상상하니 막막한 느낌이 든다. 어떤 블로그를 보니 자꾸 수액주사 바늘을 빼려고 해서 진땀을 뺐다고 하던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첫째의 돌치레는 코로나였고 둘째는 다형홍반이다. 며칠을 고생했지만 그래도 경과가 좋아 다행이다. 둘째는 감기도 자주 걸리고 아픈 곳이 많은데 어릴 때 병치레가 잦으면 커서는 건강하다고 하니 작은 희망을 걸어봐야겠다. 


 우리 아기들 아프지 말자 아빠도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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