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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Mar 31. 2020

아내와의 주행 연습

그냥 학원 다닐까? 40만원 정도 하던데..

아내와의 주차 연습 에서 계속..



자긴 처음부터 잘했어? 아내의 말에 처음 운전대를 잡았던 때를 떠올려본다. 2005년 초에 면허를 땄으니, 벌써 16년이 흘렀다. 글쎄.. 난 처음부터 잘했던 것 같은데..? 사실 잘 기억이 안 나. 처음엔 분명히 나도 못했을 텐데.


그나저나 시험은 어디서 볼 거야? 고민이야, 강남은 차가 많아서 무서운데. 어차피 서울에서 계속 운전할 거니깐 거기서 보는 것도 좋을 텐데. 연습하고 면허를 따느냐, 면허를 따고 연습을 하느냐 문제잖아. 당연히 전자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너무 무서우면 좀 차량이 적은 곳에서 시험 보는 것도 방법이지. 생각해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첫 번째 연습

직장인이라 주중 낮에 시간을 내는 건 어렵고, 주말에는 차가 많아서 어렵고. 주행 연습에 아이와 함께 나가기도 그렇고.. 역시 핑계는 끝이 없지. 이번 주에는 꼭 하자. 차일피일 미루던 주행 연습을 위해 주말 아침 부모님 댁을 찾았다. 엄만 잠깐 나가서 아빠랑 운전 연습 좀 하고 올게. 응, 다녀와.


어디로 가면 좋을까. 운전하기 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은 곳을 떠올려 본다. 멀리 가도 거기 교통상황이 어떨지는 모르니까 그냥 가까운 곳에 가자. 저번에 갔던 그 책발전소 근처 어때? 부모님 댁에서 멀지 않은 위례신도시로 출발.


일단 내가 먼저 해 볼게. 신도시라서 도로는 대체로 널찍널찍하고 말끔했다. 네모반듯하게 구획도 잘되어 있고, 신호가 난해한 곳도 없고. 연습하기 나쁘지 않네. 자, 그럼 여기부터 자기가 해봐. 긴장할 필요 없어, 너무 무섭다 싶으면 비상등 켜고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갓길에 멈추면 되니까.


격려하며 운전대를 넘겨주었지만 긴장한 건 나였다. 아내가 초보 운전이라면, 나는 초초보 선생이 아닌가. 사이드를 살짝 덜 풀고 출발하는 것부터 깜빡이를 급하게 켰다가 느리게 끄는 것까지 아내의 모든 움직임에 신경이 쓰였다. 보조석엔 페달이 없는데 나도 몰래 자꾸 헛발질하며. 사이드 보고 들어온 거지? 나도 같이 볼게. 어어...어...휴...


무서워? 아냐, 괜찮아. 티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의 초조함이 훤히 드러났나 보다. 나의 불안감이 아내에게 영향을 주는 것 또한 점점 분명히 드러났다. 자긴 어때? 원래 긴장 안 됐는데 자기가 너무 긴장하는 것 같아서 나도 긴장돼. 미안..


결국 급체한 나는 그다음 날까지 복통에 시달렸다.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되게 무서웠나 봐. 그러니깐, 자기가 옆에서 너무 긴장한 게 느껴져서 나도 너무 무서웠어. 맞아,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 지 한번 생각해볼게..



두 번째 연습

한 주 뒤, 우리는 다시 위례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연습하기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말하는 내게 아내가 활명수를 건넸다. 전에 내가 체했다는 얘기를 들으신 장모님께서 챙겨주셨단다. (감사합니다..)


저번에 뭐가 제일 힘들었어? 자기가 너무 불안해해서 무서웠어. 미안.. 그거 말고는 뭐가 문제였을까?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데, 계속 운전해야 하니까 힘들었어. 그리고 옆이나 뒤에 차가 나타나면 갑자기 엄청 더 긴장되더라고. 아, 그럼 오늘은 코스를 딱 정해놓고 거기만 돌아보자!


우리는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적당한 도로를 물색했다. 자, 여기에서 출발해서 쭉 한 바퀴 돌아보자. 같은 자리에서 멈추면 끝. 내가 먼저 돌아볼 테니까, 옆에서 한 번 봐봐. 시범이라기엔 너무나 평범한 주행이 끝나고, 아내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특별할 것 없는 좁은 도로를 빠져나가는 동안, 해주고 싶은 말이 왜 그리 많은지. 전에 말했듯이 도로에서는 흐름이 중요해. 규정 속도를 지켜야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게 도로 흐름에 맞게 빠져주는 거야. 안 그러면 되게 위험하거든. 생각해봐 자기가 달려가는데 앞에 갑자기 차가 멈추면 어떻게 되겠어. 좌회전 차선으로 들어갈 땐, 뒤에서 오는 차가 방해되지 않게 쭉! 빠져주고. 그렇지.. 쭈욱~!


커브를 돌거나 좌회전이랑 유턴할 때 핸들링이 불안한 이유가 뭘까? 이번엔 내가 다시 한 바퀴 돌아볼게. 다른 건 보지 말고 핸들을 어떻게, 얼만큼씩 움직이는지만 봐봐. 생각보다 많이 안 돌리지? 도로가 이렇게 휘었지만, 속도가 높을 땐 핸들을 조금만 움직여도 충분히 돌 수 있거든. 또 하나, 좌회전하고 난 뒤에 핸들을 반대로 열심히 돌릴 필요가 없어. 앞으로 가는 동안 보통 핸들은 자연스럽게 가운데로 돌아오거든. 아예 놓으면 안 되지만 살짝 놓아준다는 느낌으로.


두 번째 연습은 무척 순조로웠다. 너무 잘하는데? 오늘은 뭐가 다른 것 같아? 음.. 코스를 정해놓고 도니까 확실히 덜 불안한 것 같아. 자기 속은 괜찮아? 응, 활명수 먹길 너무 잘한 것 같아. (ㅎㅎㅎㅎㅎㅎㅎ) 아니, 저번에는 정말 운전 못 하겠다 싶었거든. (ㅎㅎㅎㅎㅎㅎㅎ)


우리는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대학교에 들렀다. 여긴 쫓아오는 차가 없으니까 천천히 코너링 연습을 몇 번 더 해보자. 작은 캠퍼스의 좁은 도로엔 드문드문 차들이 세워져 있어, 골목길 주행을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시험 볼 땐 별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는데, 핸들을 조작하는 감을 익히는데 좋을 것 같아. 두 바퀴만 더 돌아보자. 앗?! 스..스톱!!


왜? 오.. 조금 전에 부딪힐 뻔했어. 저 뒤에 있는 차 옆을 지날 때는 안전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어. 잠깐 내려봐. 나는 차 밖에서 아내에게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밖에서 보니까 어때, 아까랑 비교했을 때 확실히 좁아졌지? 언뜻 보기엔 같아도 그렇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항상 조심해야 돼. 그리고 이렇게 세워진 차에서는 언제든지 사람이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너무 행복했다. 가르치는 기쁨이 이런 것인가! 오늘 정말 좋았어. 연습을 마치고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주행 연습을 생각하면 거의 천지개벽이랄까. 자기, 조금만 더 연습하면 바로 시험 봐도 되겠다. 거의 완벽한 연습이었어. 아 참, 활명수를 챙겨 먹은 것도 너무 좋은 선택이었어. (ㅎㅎㅎㅎㅎㅎㅎ)



세 번째 연습

두 번째 연습이 끝난 후, 자신감을 듬뿍 얻은 아내는 주중에 아버님과 함께 강남면허시험장에서 코스 하나를 돌았단다. 어땠어? 괜찮았어, 생각보다 차가 별로 없더라고. 그랬구나, 아버님은 뭐라고 하셨어? 그냥 지금 들어가라, 저 차 따라가라, 그런 얘기만 하고 특별히 다른 얘긴 안 했는데? 그러셨구나..


며칠 뒤, 우리는 역사적(?)인 세 번째 연습을 위해 강남면허시험장을 찾았다. 시험 코스 중에 제일 어려운 코스가 어떤 거야? 아내에게 물어보니 단박에 하나를 꼽았다. 그럼 오늘 거길 한 번 돌아보자. 내가 먼저 한 번 해볼게. 세월이 흘러 운전이 너무 자연스러워진 16년 차 무사고 운전자의 심심한 시범. 오늘은 막상 설명할 게 별로 없네, 옆에서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알려줘.

면허시험장 앞에서 출발, 잠실새내역을 향해 달리는데 아내가 불쑥 물었다. 난 지금처럼 차들이 옆에 가까이오면 막 부딪힐 것 같아서 너무 긴장돼. 차선을 막 넘어올 것 같아? 응, 맞아.


그렇게 생각하면 무서워서 운전할 수가 없어. 나도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많은데, 기본적으로 다들 제정신으로 달린다고 생각해야 해. 물론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지. 어쨌든 모두 차선이나 신호를 전부 잘 지킨다는 전제하에 운전하면 좀 덜 무서울 거야. 이런 건 다 기본적인 약속이니깐.


시범인 듯 시범 아닌 시범 같은 나의 주행이 이어졌고, 아내가 나의 운전을 몇 차례 지적했다. 아냐, 그렇게 하면 감점당해. 오잉, 왜? 블로그 후기에서 봤는데, 그렇게 운전하면 여차여차해서 감점 당한 데. 그렇구나.. 많이 찾아봤구나..


다음은 아내의 차례. 유턴할 때 건너편 교차로에서 우회전 받고 들어오는 차를 조심(잠..잠깐만.. 저 차 보내고 그 뒤로 붙어서 가자.. 지금이야.. 쭈욱~!)해야 된다는 것과 차선을 바꿀 때는 충분히 가속을 해야 하(ㄴ드아아아아.. 괜찮아.. 비상등 켜주자.. 저 차 많이 놀랐을 거야)는 것 외엔 별로 조언할 것이 없는 완벽한 연습.


진짜 잘했어, 정말 최고야! 응, 나도 알아.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갑자기 잘할 수 있지? 저번에 자기랑 연습하고 나서 자신감이 좀 생긴 것 같아. 너무 자신 있으면 안돼. 아휴.. 알아!




아내는 아버님과 두어 번 더 연습한 후, 도로 주행 시험에 단박에 합격했다. 이번에는 블로그 후기에 큰 도움을 받은 듯하다. (주차는 유튜브, 주행은 블로그.. 만세!)




이렇게 돌아보니, 말을 너무 많이 했네. (쓴 것보다 열 배는 많이 했을 텐데..) 늘 그렇듯, 미안하고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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