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삐의 딜레마 #01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 언제 이렇게 말을 잘하게 된 걸까. 덩달아 깊어지는 고민. 어떤 말을 어디까지, 어떻게 해줘야 할까.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기꺼이 이해해주려나. 일상대화가 가능해졌다고 갑자기 어른과 같이 대할 수는 없는 노릇. 심지어 어른이라도 사람마다 달리 대해야 하지 않나.
그중에도 가장 어려운 것은 잘못을 고쳐주는 말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할 때, 분명히 했던 말을 다시 해야 할 때, 분명히 아이도 알고 있는 내용을 또 말해줘야 할 때. 어려운 이유는 이글이글 요동치는 감정. 그렇지만 잘못을 고쳐주는 말의 목적은 내 감정의 표출이 아니다. 그래 알아. 그 사실을 백만 번쯤 곱씹어도 티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감정이 1g이라도 섞이는 순간, 아이는 메시지보다 톤에 집중하곤 서운함을 느낀다.
- 나: {여차저차} 해야지.
- 너: 아빠 미워.
- 나: 왜?
- 너: 무섭게 말해서.
억장이 무너진다. 그치만 무섭게 말한 게 아니라고 말해봤자 듣는 사람이 무서우면 무서운 거다. 왜 무서웠을까. 감정이 섞였으니까. 평소랑 다르게 말해서. 여지가 없게 말해서. 본인을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이유야 어찌 되었든 무섭다는 것은 분명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너를 무섭게 하고 싶지 않고, 그것을 통해 어떤 행동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그럴 목적으로 말한 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에서, 부모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휴...
사실 아예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은 거의 이해하고 있다. 머리로 이해하고 있지만, 귀찮아서, 하기 싫어서, 재밌어서, 계속하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머리와 달리 몸을 움직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지적했을 때 아이는 감정이 앞선다. 특히 나의 감정이 짙게 드러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무섭고 섭섭해서 서럽다. 본인의 잘못은 쉬이 잊혀진다. 왜냐면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바로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내 말의 온도 때문이니까.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느냐 만큼이나,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이건 비단 아이와의 대화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학교, 군대, 직장에서도 그런 경우는 많았다. 그렇다고 내용을 바꿀 수는 없다. 안된다는 말을 '그렇게 안 하면 좋겠다' 등의 완곡어법으로 말해선 안된다. 왜냐면 그건 내가 하고자 하는 말도 아니고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으니까. 나중에 '안된다고 했잖아'라고 말하면 아이는 불쑥 화가 난다. '아까 분명히 안 하면 좋겠다고 했지 하지 말라곤 안 했잖아.' 말장난하는 게 아니라, 아이는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 아이에게 필요한 건 빨간불과 초록불이지 노란불이 아니다.
그리하여 일단 말을 길게 하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간결하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그건 하면 안 된다. 그건 지금 당장 해야 한다. 해야 하는,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최대한 간결하게 말하기. 수만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한 두 가지만 꼽아서 이야기한다. 그중에 하나는 반드시 아이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너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자 책임이고, 당장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의 마음과 몸이 잠깐 편할지 몰라도 길게 봤을 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나로써는 너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아니야... 이렇게 길게 말하면 안돼... 그러나 넋두리가 끝없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휴...
간결하게 말한다고 해서 아이가 갑자기 말을 잘 듣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의 소중한 감정을 덜 소모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이유는 여차저차 설명한 것과 같다. 아이는 오해하거나 꼬투리 잡고 싶어도 그럴 것이 없어져서 좋고, 나는 감정을 더 잘 컨트롤할 수 있어서 좋다.
형식이 간결해지면 감정이 담길 여지도 줄어들겠지만, 감정이 끓어 넘칠 때에는 일부러 다른 감정을 담기도 한다. 덤덤하게 말하려 해도 차가운 목소리가 될 것 같으니, 다정함 한 스푼을 되려 추가하는 식. 표적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오조준을 하듯. 물론 생각 만큼 많이 담긴 어렵지만, 무섭다는 핀잔을 피하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랄까.
자주 실패하지만, 단호하면서도 다정할 수 있다. 무서운 것과 단호한 것은 다르다. 짜증을 내면 짜증이 나고, 화를 내면 화가 난다. 단호해야 다정할 수 있다. 빈틈과 여지를 줄 수록 아이는 더 헷갈리고, 서운해할 수 있다.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말하자. 마음 약해지지 말자. 일관성을 유지하자. 예외가 많아질수록 아이는 규칙을 읽을 수 없는 아이가 된다.
그렇지만 오늘도 아이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내 맘을 후벼판다.
- 너: 아빠, 딱! 한 번 만! 응?
- 나: 안돼.
- 너: 아빠 미워.
- 나: 왜?
- 너: 무섭게 말해서.
ps.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고 화해하고 육퇴 후 미안한 마음을 쓸어 담으며 내일은 조금 더 잘해주어야지 다짐하는 아내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