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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Aug 31. 2021

독립만세

나를 지배하던 다이어트 지옥 안녕

오늘 즐거웠던 일은 '12시에 만나요'라는 유튜브에서 레몬 차 거름망을 알려주신 것. 최소 환경부 장관 후보에는 노미네이트 되셔야한다.


오늘 슬펐던 일은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후, 연락온 사람은 회사사람 뿐이었다는 것. (아, 우리 엄마도 물 많이 마시라는 문자를 보냈다.)



하도 무서운 뉴스가 많아서 '화이자' 백신을 안 맞게다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다.

회사의 다른 팀 동료는 3시에 맞고 다시 들어와서 야근하다 집에 갔는데, 나는 회사는 안 가길 잘 한 것 같다. 슬금슬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더니, 이내 어지럽기 시작했다. 나름 휴가를 낸 덕분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는데, 모조리 취소하고 집에 드러누웠다. 고칼로리 배달음식을 시켜놓고 본의 아니게 개만 약올리며 나 혼자 잘 잡쉈다. 뒤늦게서야 칼로리가 끔찍하다는 생각에 '그래, 오늘은 1일 1식하지뭐.'라고 다짐했다.


이리 저리 뒹굴다보니 강아지 산책시간이 다가왔고, 강아지 생수를 먹인다는 핑계로 편의점에 들렀다. 잠시 둘러보던 나는 '그래, 맥주는 못 마시니까 안주는 쟁여둬야지. 집에 놔둬야지.'라고 되뇌이며 봉투가 필요할만큼 여러개를 담았다. 복순이것은 고구마 간식하나, 나는 여러봉다리가 터져나갔다. 분명히 나중에 맥주안주라고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봉다리는 거의 초토화되어있었다.

이게 무슨 일.

넷플릭스 이 앱을 없애던지 해야지.

심심하니 주워먹는 꼴이 마치 TV에 나오는 섭식장애 다큐 주인공같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소화가 안되어 괴로웠다.

소화제를 먹으려고 꺼냈다. 이거 백신 맞은 날 막 먹어도 되던가.

괴로움에 몸을 뒹굴었다.

얌전한 개, 복순이가 내 곁을 떠나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더더욱 내 꼴이 우스웠다.




돌이켜보면, 내 41세 평생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내 시간과 돈을 지배한 테마는 '다이어트'이다. 실제 안 해본게 없고(누구나, 그, 그렇죠?) 대략 작은 오피스텔 값은 날렸다. 그 결과는 짜릿하다. 요요라는 대단한 친구 덕에, 나는 20여년동안 수직상승하여 몸이 불어나는 것 같다. 나잇살이라고도 하지만, 내가 놓아버려서라고도 하지만, 그건 다들 모르는 소리다. 내 옷장의 옷들은 한 사람이 입었다고 하기 어려운 난이도의 사이즈들이 즐비하다. 분기별로 정리해도 아쉬움이 남은 옷들은 주로 작아서 못 입는 옷들인데, 누군가의 말처럼 걸어두고 다이어트에 몸 바쳐 노력하다가 두 배로 불어난 뒤 안 보이는 곳에 숨겨 보관하고 있다. 슬퍼서.



누군가 말했다.

인생을 숙제처럼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뭐 그렇게 해야하는 게 많냐고. 즐겁고 재미있게 살라고. 축제처럼 살라고.

짜릿하고 섹시한 그 말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적어도 식생활에 관해서 나는 저 멋진 말을 자기 편한 식으로 아무렇게나 해석해온 것 같다. 신경쓰지 말고 대충 살자. 생각나는 대로 대충 주워먹자. 때려 먹자. 부어라, 마셔라. 혹은 뇌를 풀고 오도독 오도독.

내 식생활은 생각없는 인생처럼 보인다. 좋은 재료 쟁여서 좋은 요리 해보겠다는 마음 같은 것은 3일에 한 번정도 돌아오는 제정신이고, 당장 집 앞 편의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드는 모든 것들을 습관적으로 흡입하고, 속이 아파 뒹굴고, 피부가 따가워 뒹군다. 이 것은 축제처럼 사는 게 아니다. 이것은 부랑자처럼 사는 것이다.


지겹지도 않은지 나는 이 비효율적인 악순환을 2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생각없이 퍼져 살다가 갑자기 급한 마음에 의학에 의존하거나 엄청난 비용의 프로페셔널 트레이너를 만난다. 차도가 보인다. 다시 옷이 맞는다. 놓는다. 고삐 풀린 생활을 시작한다. 두배로 불어난다. 내 자신이 밉다. 다시 내가 싫어진다. 우울감이 찾아온다. 다시금 다이어트의 왕도를 검색한다.


문득, 이렇게 오래도록 이 노래의 끝을 다 알면서도 굳이 찾아부른 내가 놀랍다. 지겹지도 않은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자존감 박사라도 될것처럼 모아 읽고 들어온 강의 중 한 토막이 생각났다.

'왜 그랬냐고 물어봐라'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가 그런 정크 푸드에 습관적으로 손을 뻗던 이유가 뭘까.

그냥 심심해서였다.

그냥 맥주 한 잔에 과자 봉지 하나가 제일 손쉬워서였다.

참 시시하다.




나는 오늘까지만 이 주제로 슬프려고 한다.

나는 내일부터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살거니까.


나는 심심할 겨를 없이 살것이다. 무료하게 누워 넷플릭스를 보면서 뭐든 바삭한 걸 주워 먹는, 미국 시골 은퇴 노인 같은 생활은 오늘 쓰레기통에 던진다.


나는 적어도 20년, 내 강아지 복순이랑 행복하게 살 것이고, 그러려면 좀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소화제나 찾으며 기어다니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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