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멍키> -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초고수들의 격전지인 중원 무림에서 제대로 된 문파도 갖지 못한 주인공이 고수들을 연달아 무찌르며 성장해나간다. 권모술수를 헤치고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에 점점 이입하게 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쉬이 덮지 못하게 된다. 허구의 이야기가 그럴진데 무대가 현실의 최고수들의 중원 무림인 실리콘 밸리이고 등장인물들이 IT 업계의 거물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악동 기질이 있는 저자는 기깔난 글솜씨 까지 있다. <카오스 멍키>는 그런 책이다. 첫 장을 펴게 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쉬이 덮지 못하게 되는 책.
나는 이 책을 IT 무협지로 분류하지만, 서점에서는 이 책이 어떻게 분류됐을까? 보통은 경제/경영 혹은 IT/컴퓨터 분야에 놓여지는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3개의 챕터 중 챕터 1은 저자가 골드만삭스의 퀀트, 실리콘 밸리의 광고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창업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챕터 2는 자신의 스타트업인 애드그로크의 굴곡사를 다룬다. 이 두 챕터에서 저자는 직설적인 화투로 실리콘 밸리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과 행동 강령을 설파한다.
‘아이디어는 단지 팀의 자질을 판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아이디어 자체에는 가치가 없었다.
설마 그럴까 싶다고? 당신의 아이디어가 뭔가 가치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어디, 가서 팔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값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보라.
실행할 수 없거나, 실행할 팀이 없는 아이디어는 똥구멍이나 소신과 같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초기 스타트업의 역사는 내가 겪은 상황과 같은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모두들 법적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전화로 뒷거래를 진행하고, 투자자나 공동 창업자의 등 뒤에 칼을 꽂고, 순진한 직원을 유혹해서 속여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위해 일하게 하는 것이다.’
챕터 3에서는 이야기의 결이 많이 바뀐다. 괴팍하게 정글을 뒤엎던 카오스멍키는 갑자기 페이스북과 사랑에 빠진다.
‘나는 페이스북 전의 내 삶이 어땠는지 거의 기억할 수조차 없었고, 페이스북에 내 삶을 모두 바치느라 일으킨 파괴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두 아이를 내팽개쳤고, 두 여성의 소중한 사랑을 걷어찼고, 두 척의 보트를 방치했고, 회사 일에 헌신하느라 취미나 여가생활도 전무했다. 이 책에서 페이스북에 대해 내가 쏟아낸 비판에 속지 말기 바란다. 냉소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가슴 아파하는 이상주의자가 있다. 지금 신랄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면, 그건 바로 어느 시점에서는, 루시퍼가 타락하기 전 가장 자랑스러운 대천사였듯, 나 또한 페이스북을 위해 살고 숨 쉬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건 위주였던 글의 구성도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광고 기법에 대한 설명으로 좀 더 치우친다. 여타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소셜네트워크의 광고 형식과 다양한 광고 제품들에 대한 전문적이면서도 충실한 설명은 이 책이 IT/컴퓨터 분야로 분류되는 것 또한 납득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이유이며, 이를통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궁금증을 해갈시켜준다.
대학의 대강의실에서 쓰이거나 새해 벽두에 맑은 마음으로 읽은 책은 아니나,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되새겨볼만한 말들을 많이 담고 있다. 읽고 나면 ‘어쨋든 열심히 하면 잘 되지 않을까’ 라는 환상은 깨어진다. ‘일을 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고정된 시스템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아닌, 이를테면 영민함과 실행력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실리콘 밸리의 생존 수칙 등 얻을 것도 많지만, 역시 가장 큰 재미는 우려되는 수준의 실명 비판이다. 저자도 약간은 걱정이 되었는지 책의 말미를 다음과 같은 글로 맺는다.
‘끝으로 이 책을 위한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이 되어주고 내 인생의 2년을 함께해준 페이스북의 옛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은 이 책이 출간되면 나를 죽일 놈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남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보다 더 나쁜 유일한 일은 아예 화제에 오르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2116년, 사람들은 대체 페이스북에 대해 뭐라고 평하게 될까? 분노에 차서 친구 끊기 버튼을 누를 때, 그 점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건 침대맡에 두고 읽기에는 너무 위험한 책이다. 700 페이지에 달하는데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덮을 수 없게 만드니까.
p.20
페이스북에서 목격한 바에 따르면 수천명에 이르는 사람들과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에 영향을 주는 고차원적 결정은 직감, 당시 작용하는 정치역사학적 상황, 그리고 바쁘거나 인내심이 없거나 무심한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무자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 같다.
P.51
스타트업과 대기업, 특히 페이스북에서 쌓은 경험을 되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교활한 성격과 외양만을 이용해서 삶에서 성공을 누려온 평범한 바보들에 둘러싸여 인기경연대회를 닮은 대기업의 사내 정치판 사이를 헤쳐나가는 것보다는, 엄격한 시장과 변덕스러운 운수에 내 몸을 맡기는 편을 백 배나 선호했던 것 같다.
P. 74
현명한 초기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YC는 우리가 지닌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보다는 팀 자체에 큰 관심을 기울였따. 아이디어는 단지 팀의 자질을 판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아이디어 자체에는 가치가 없었다.
설마 그럴까 싶다고? 당신의 아이디어가 뭔가 가치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어디, 가서 팔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값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보라.
실행할 수 없거나, 실행할 팀이 없는 아이디어는 똥구멍이나 소신과 같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것이다.
P. 244
스타트업을 위한 교훈을 소개한다.
어떤 미팅에 참석하든 간에, 상대에 관해 사소한 사항까지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게 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인간관계의 경우 더욱 그렇다. 적어도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드인으로 이어진 업계에서는 그렇다. 알아봐두는 김에, 당신과 함꼐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전에 조사를 끝내두어야 한다. 잔뜩 치장한 이력서의 행간을 읽어내자. 어떤 기업에서 1년도 일하지 않고 나왔다면 첫해 몫의 베스팅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문제의 지원자 혹은 회사, 어쩌면 둘 모두가 별 볼일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4년을 정확히 채우고 이직했다는 것은 화이트칼라 실리콘밸리의 근무시간카드를 교대시간에 딱 맞춰 찍는 따분한 인물이라는 의미다.
P. 301
수도꼭지 옆에 있는 큼직한 양동이 두 개에는 일회용 칫솔과 작은 치약튜브가 들어 있었다.쓰레기통을 들여다보니 칫솔 포장지가 몇개 버려져 있었다. ‘정말 쓰긴 쓰는군.’ 똥을 누며서도 코딩을 하고 회상에서 칫솔까지 챙겨줘야 하는 사람들이라. 그들은 확실히 내 관심을 끌었다.
P. 394
완벽은 종종 선의 적이며, 모든 벽에 나붙은 페이스북 포스터가 외치듯, 완벽보다 완성이 낫다. 제품을 지나치게 빨리 출시해서 죽어간 회사의 수는 극히 적다. 상황이 나빠봐야 창피한 꼴을 한번 겪을 뿐이다. 그러나 출시할 용기가 없어서 죽어가거나 지레짐작, 주저, 내부적 우유부단함의 혼수상태에 빠진 회사는 무수히 많다. 삶이나 사업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가만히 있기보다는 행동을 택해야 한다.
P. 461
페이스북에 입사하고서 채 몇 달이 되지 않았을 즈음이었다. 새로운 곳으로 옮겨온 데 따르는 흥분이 가시고 나자, 자동차의 속도계가 두 자릿수에 머물 때의 따분하고 욕구불만에 가까운 느낌이 쌓여갔다. 광고부의 제품개발 속도는 느렸고 머뭇거리는 느낌이었다. 타기팅팀은 이미 삐쩍 말라버린 데이터라는 레몬에서 즙을 짜내려 했다. 고쿨은 관리자로서 아무 ㅈ침을 주지 않으면서도 계속 광고부 사람들을 밀어붙였다. 페이스북 직원들은 분명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스타트업 시절 경험했던 레이싱카의 레이서는 아니었다. 나는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베스팅 일정에 매여 있는 IT 계의 보상 체계를 감안하면, 실제로도 그랬다.
P. 471
나는 회사 안을 돌아다니며 저커버그의 스텐실 초상과 선전 포스터를 둘러보았다.
전진하고 대담하게 행동하라! 감당 못할 일을 해라! 충격을 줘라!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똑같아진다.
만인이 숭배하고 감히 의문을 제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지도자가 내린 석판에 새겨야 어울릴 법한 이상 때문에 유발되는 끝없는 투쟁, 앞서 언급한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를 기준으로 선별된 지도계급, 그리고 방앗간이 원하는 대로 인간 가루를 갈겠다는 의지를 지는 사람에게 주는 풍부한 보상?
양쪽 모두 같았다.
자신의 체제가 존재 가능한 유일무이한 시스템인 양, 현재의 생산 체제에 아첨하는 (대부분) 순종적인 언론?
여기도 있었다.
시스템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가족과 개인생활을 희생하는 일병, 시스템 내에서의 전진이라는 시점에서만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들?
페이스북 인민공화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P.601
“맞습니다. 저는 분명 여기서 친구도 적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목표는 언제나 페이스북에 최선의 광고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정말이지 진심이었다. 나는 페이스북 전의 내 삶이 어땠는지 거의 기억할 수조차 없었고, 페이스북에 내 삶을 모두 바치느라 일으킨 파괴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두 아이를 내팽개쳤고, 두 여성의 소중한 사랑을 걷어찼고, 두 척의 보트를 방치했고, 회사 일에 헌신하느라 취미나 여가생활도 전무했다. 이 책에서 페이스북에 대해 내가 쏟아낸 비판에 속지 말기 바란다. 냉소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가슴 아파하는 이상주의자가 있다. 지금 신랄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면, 그건 바로 어느 시점에서는, 루시퍼가 타락하기 전 가장 자랑스러운 대천사였듯, 나 또한 페이스북을 위해 살고 숨 쉬었기 때문일 것이다.
P.608
그들은 조직에서 가장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혁신력이 떨어지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야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기회를 좇아 조직을 떠나버린다. 우유 위에 뜬 맛있는 크림을 계속 떠내듯 능력 있는 인재가 계속 떠나는 탓에, 남은 중간관리자층은 수년간 크림을 떠내고 남은 결과물로 전락한다.
제 아무리 병적인 조직에서도, 부하직원의 성공은 상사의 평판과 성공에 득이 된다. 또한 동료 관리자와 동맹을 맺고 우정을 쌓아야 한다. 자기주장을 밀어붙여야 하는 영업부나 사업개발부의 경우 더욱 그렇다. 조직 내에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직원이 있으면 면전에다 대고 바보라고 하거나 직접 해고해버리는 대신, 그들의 관리자에게 피드백을 주고 그들의 무능함을 우회해서 일을 할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의 무능이 나나 내가 속한 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냥 시선을 돌려서 내가 조율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
P. 642
그리고 한 가지만이 세상을 바꿀 만한 거대한 성공을 이룩한다. 하지만 성공의 이유는 상황이 벌어진 뒤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따. 기억상실증 증세가 있는 테크 언론계는 기업이 어떻게 그런 성공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관한 화려한 가짜 스토리를 지어낸다. 굳은 확신에 차서 제품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서부터 흠 하나 없고 매끄러운 기술적 실행에 이르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꾸며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반쯤 장님인 이가 저지른 성공 확률이 희박한 ‘도박’이 확신 가득한 선지자가 실현한 당연한 ‘혁신’으로 탈바꿈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오면 위기를 타개할 성공작이 나오지 않고, 딜러는 남은 칩을 거둬가고, 회사는 망하게 된다. 로고는 기업의 필멸성을 상기시키듯 재활용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그러고 나면 모든 언론은 왜 그처럼 확신에 찬 천재가 실패를 맞이하게 되었는지 아연해하며 재능의 무상함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P. 655
끝으로 이 책을 위한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이 되어주고 내 인생의 2년을 함께해준 페이스북의 옛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은 이 책이 출간되면 나를 죽일 놈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남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보다 더 나쁜 유일한 일은 아예 화제에 오르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2116년, 사람들은 대체 페이스북에 대해 뭐라고 평하게 될까? 분노에 차서 친구 끊기 버튼을 누를 때, 그 점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