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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장독대에 20조원 붓기

- 한국 R&D의 평가시스템 부실에 대하여

by Soarer


GDP 대비 4.2%라는 어마어마한 R&D 비용이 이렇게 낭비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공학 분야에 한정해서 보자면 부실한 평가시스템이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기업은 시장에서 평가받지만, 대학 연구의 평가는 정부만이 담당합니다. 부족한 인력으로 큰 예산을 굴리고, 공정성/투명성을 강조하다보니 논문 수, 학회 참여 등의 정량화 가능한 수치로 밖에 연구 성과를 평과할 수 밖에 없겠죠. 수억짜리 과제들은 주제와 상관없는 논문으로 정량 실적이 채워지고, 아무도 보지않는 수백페이지 보고서로, 1년에 한 두번, 하루전에 보고서를 받은 평가자들이 30분동안 평가받게 됩니다. 평가자-피평가자간의 협업을 단순히 부패라고 치부할수만은 없는 것은 거대한 R&D 예산에 비해 평가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R&D 사업운용자가 한 해에 맡는 연구과제는 40~50개가 됩니다. 여기서 피평가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구요. 거기서 카르텔이 생기고, 그 안의 연구자들은 계속 실적을 쌓아 쉽게 5공3책 모두 채워 연구비 수주해서 여행다니고 다른 연구자들은 턱없이 부족한 연구비에 쩔쩔매는거죠.



돈이 든만큼 제대로된 성과라도 나오면 다행인데, 공학 분야에서 기업과 대학의 기술격차는 좁힐 수 없는 수준입니다. 정부의 강요로 기업이 산-학 협동 과제를 만드는데, 여기서 기업들은 실제 결과물을 바라지 않습니다. 똘똘한 대학원생 찾아서 선점하려는 용도 정도로 활용하죠.


정부 당국자들은 연구 결과물이 안나오더라도 공학 분야 인력 확충을 위해서는 이런 시스템이라도 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인력 양성이라도 잘 되어야 할텐데. 저 수백페이지짜리 보고서와 숫자채우기용 논문을 써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답답합니다. 그들은 회계 공부도 해야 합니다. 정부 과제는 영수증 처리가 굉장히 깐깐하거든요.


단기간에 돈을 쏟아부어 평가 자원을 충분히 늘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연구자마다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이 작은 나라에서 관련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평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이 체계를 근본부터 변화시키지 않으면 연구비는 연구자 여행비로 계속 유용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로봇물고기는 실체라도 있었죠.


ps 1. 국내에도 힌트가 될 만한 시스템이 있긴 합니다. 국내 한 기업의 1조5천억짜리 연구비는 이름 소속 모두 가리고 딱 2쪽짜리 제안서를 현업 전문가들이 초도 평가합니다. 성과 평과도 정량 평가 안하구요
ps 2. 국가 주도 R&D 시대에 비대해진 정출연도 방향을 운영 방안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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