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20주년에 쓴 글
결혼 기념일을 앞두고 아내에게 뭔가 갖고 싶은거 없냐고 물었는데, 그런거 없다고 한다. 꽃이라도 사오려 했는데 아내가 선수를 쳐서 이미 사왔다. 그래도 뭐 원하는거 없냐고 반복해서 물어봤더니 그리스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아내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커다란 것을 받는데 있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억지스러운 구석이 없다.
결혼식을 올린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10년도 아니고 20년을 비교적 무사히 보냈으니, 뭔가 의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전처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몇년 전 나는 전처를 우연히 만난일이 있다. 나는 어딘가를 급히 가고 있었다. 햇볕은 따뜻했고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무슨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위를 하는 인파 사이에서 누군가 "희권씨" 하고 반갑게 부르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키가 나보다 약간 작고 갈색의 단발머리를 한 미인이 내게 다가오더니 "와 오랜만이야!" 하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가, 그게 누군지를 깨닫고는 더욱 당황했다. 내 전처 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럴수가?
나는 당황 했지만 정말 그녀가 반가웠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는 서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기에 이야기 나눌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대화하는 그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의 건강과 일상에 대해 물었다. 나는 어깨에 살짝 닿을 듯 말듯 한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과 하얀 얼굴, 그리고 나를 보며 짓던 건강하고 밝은 웃음. 경쾌한 목소리,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따뜻한 햇볕, 모든 것들을 또렷이 기억한다. 봄날이었고 그날 우리의 주위는 따뜻한 색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있고, 그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다 했다는 것, 함께 나눌 미래는 이제 우리에게 남지 않았다는 걸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서로의 행운과 행복을 진심으로 빌며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잠시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날씬한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나서는 어머니에게, 왜 내가 그녀하고 헤어졌는지? 왜 내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하고 물으려 하다가 다시 또 깨어났다. 나는 내가 꿈을 꾸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꿈은 보통 흑백이지만 가끔은 총천연색의 꿈을 꿀 때가 있는데, 그 꿈이 그랬다. 그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딱 이런 꿈을 꿨었다. 이 꿈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내게 지금 살고 있는 결혼이 처음이며 당연히 내게 전처라는 건 없다 라는 사실이다. 꿈속에서 만난 그 사랑스러운 여인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꿈을 가장 잘 해몽 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꿈속의 이미지들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찬찬히 돌아보면 우리는 그 꿈의 의미를 대개 알 수 있다.
이 또렷하고 신기한 꿈에 대한 해석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눈매, 웃음, 동그란 얼굴, 날씬한 몸매, 옷 취향 그 모든 것에서 내가 떠나온 사람들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반영된 것은 아닐지언정, 분명 그 흔적들은, 아름다움과 그 이면의 불완전성 까지도 나의 구체적인 경험들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꿈속의 그녀는 사랑스러웠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온 이상형과는 약간의 거리도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있었기에 꿈속에서 만난 그녀는 온전히 실재하는, 완전한 존재로 느껴졌던 것이다. (I love your perfect imprefection - John Legend 의 All of Me 가사중에서)
그녀는 아마도 내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불완전한 제도인 결혼이란 다리를 건너기 위해 놓고 온 것들을 상징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나는 알파메일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세상은 이상한 것이어서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예쁘고 멋진 여성이 다가올 때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보다 젊고, 보다 어리석고, 약간은 보다 멋졌을때 만났던 모든 여성들은 예쁘고 현명하고 멋진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는 그중에서 가장 예쁘고 현명하고 멋진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20년을 함께 살았다. )
시시한 자기계발서 따위가 남용하고 오용하는 바람에 빛을 잃은 말이지만, 나는 우리가 정말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것은 무언가를 정말로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의 욕망 안에서 우리의 것이 아닌 욕망을 덜어내야 가능한 것인데, 그건 정말 어렵다. 우리는 어렸을때 떠나온 천국을 항상 꿈꾸지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자는 드물다. 그곳을 떠나온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의 그림자일 뿐인지 구분하는데도 세월과 댓가가 필요하다. 이렇게 불완전한 인간이심지어 다른 불완전한 인간과 평생을 나누겠다는 약속은 언제든 바람처럼 날아가버릴 수 있는 불완전한 약속에 불과 할때도 많다. 그러나 언젠가 날아가버릴 망정 그 약속을 하고 가보지 못한 삶이라는 사막을 건너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인간이다.
사랑이란 감정이 나를 갑자기 찾아와 내가 익히 알지 못하던 곳으로 나를 몰아갔을때 나는 사랑이 나를 사로잡는 감정인지, 상대에 대한 헌신의 약속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행히도 한때 그토록 확실하던 감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약속은 존재조차 기억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결혼이라는 약속에 회의와 두려움을 갖는 사람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과 약속을 피하는 것이 현명한 것은 아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을 꿈꾼다. 비록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약점이 우리의 사랑을 영원하지 못하게 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영원을 꿈꿨던 사실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리고 혹시 아나, 우리는 정말로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어린 아이들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보다 현명하다. 두려움 없이 사랑할 줄 알기 때문이다.
꼭 그것이 세상의 법으로 연결되는 결혼이 아닐지라도 괜찮다. 아직 기회가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나는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감정이 찾아왔을때, 두려워 하기보단 기뻐하고,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속에 부질없는 계산을 하기 보다는 평생을 헌신하겠다는 약속안에 자신을 던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록 삶이라는 항해는 수많은 파도와 숨어있는 암초가 기다리는 것이지만, 좋은 남자가 되려 노력하는 남자가, 좋은 여자가 되려 노력하는 여자를 만나 같이 떠나는 항해는 충분히 모험을 감수하고 떠날만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남자, 좋은 여자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일단 나는 원래 좋은 남자가 확실히 아니었으며, 원래부터 그런 게 있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일 수 없고, 우리가 감당했던 리스크가 실현되어 결혼 생활이 불행해 졌다면, 굳이 꾸역꾸역 그것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큰 인사이트를 얻은 스승이 몇 있는데 그중 한분이 남겨주신 지혜는 우리는 언제든 그 딜을 엎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 딜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그게 최선이 아니라면 언제든 엎을 수 있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결혼 생활도 잘 할 수 있다라고 믿는다.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결혼생활도 잘한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혼자서도 잘 사는 법이다. 그러니 해보지도 않은 결혼생활에 대해 막연히 거부하는 자들, 결혼해서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가 실체를 알지도 못하는 막연한 싱글라이프를 꿈꾸는 자들, 모두가 어리석다.
서로를 사랑하되, 서로가 아쉽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서로를 위할 수 있다. 남이 아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함께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최선의 삶이기 때문이어야 한다.
겉보기로 화목한 가정, 다정한 커플의 연기를 하는 것은 사회가 강요하는 타인의 욕망에 춤을 추는 것이다. 언젠가는 두 사람을 이어준 화학적, 생물학적 동기가 닳아 없어져 버릴 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기다림의 자세(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 중에서)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언젠가 서로를 이어주던 끈이 사라지고 회한밖에 남을것이 없다면, 그때 최선의 방법을 찾아 행하면 된다. 미련이나 쓸데없는 의무에 얽매어 불행을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인생을 살아가기로 약속 하는건 분명히 멋진 일이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다. 그게 오랜 시간 지속 되었다면 기뻐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노력 보다는 행운의 결과이기에 그 행운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나는 감사할 일이 많은 사람이고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기도를 드린다면 그건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 어딘가 높은곳에서 정말로 우리를 들여다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은 사람과 20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을 그에게 감사함이 마땅하리라.
나와 전처의 만남 장면은 분명히 어디서 많이 본 것이었는데, 세월이 지나서 깨달았다. 씨네마 천국의 말미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사진은 아내와 부산에서 G star 게임쇼 뒷풀이 파티에 참석했을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