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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권 Mar 05. 2024

백척간두 일보전진


백척간두에 앉아 있는 그대여(百尺竿頭坐底人)

깨달았다고 하지만 아직 진짜가 아닐세(雖然得入未爲眞)

백척간두에서 한발 더 내딛어야(百尺竿頭須進步)

시방세계가 온몸을 드러내리라(十方世界現全身).


백척간두 진일보라는 말은 소화되지 않고 식도에 붙어있는 알약처럼 몇년 째 머리속어디에 걸려있던 화두인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천천히 내 나름대로 풀어보고 싶어졌다.  이 말은 1000년전에 장사경잠(長沙 景岑)(748~834)라는 송나라 스님이 경덕전등록 景德傳燈錄이라는 글에 남긴 것이다. 강화도에 있는 큰 절인 전등사의 이름은 아마 여기서 온 말이 아닐까 추측한다.


간두는 장대요, 일척은 팔꿈치 정도의 길이니 백척간두는 30미터 정도 위의 장대위에 올라서 있는 형국이다.

백척간두는 흔히 위태로운 지경을 묘사하는 용어로 쓰인다. 말뜻만 봐서는 위태한 지경에서도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권하는, 포탄이 쏟아지고 있는 전장에서 돌격할 것을 요청하는 지휘관이 하는 것 같은 말이다. 그러나 이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온 이 화두가 기껏 위태로운 지경에서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나아가는 만용을 찬양하는 것일리는 없다.  


여기서 백척간두의 의미는, 내 생각에는 외적인 위태로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위태로움에는 머물러서 생기는 위태로움과 앞서나가기에 생기는 위태로움이 있는데, 여기서는 앞서서 나가기 위해 오히려 자신을 위태로운 지경으로 만들라는 권유다. 깨닫기 위해 정진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백척 간두에 자신을 위치 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돌궐을 부흥시켰던 톤유쿠크(Tonyuquq)라는 사람의 비문에는 성을 쌓는자 망하고, 길을 뚫는자는 흥한다는 말이 새겨져 있는데, 이와 상통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백척간두 일보정진이란 말이 최근 몇년간 머리속을 맴도는 것이, 중년의 안정이라는 자기기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위험신호 처럼 느껴진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한다는 것은 그저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용기를 내서 길을 걷는다는 것도 아니고, 쓸데 없는 만용으로 자신을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삶의 목적이 깨달음에 있다면, 깨닫기 위해 정진하지 않는 삶은 곧 죽은 삶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살아 있으라, 삶의 목적을 위해 나아가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는게 가장 안전한 길이다. 그리고 어딘가를 도달하기 위해 작심을 사람에게 있어,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머문 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일상의 행복, 머무름의 미학을 찬양하기도하지만, 내것이 아닌 욕망에 휘둘리다가 값싼 힐링을 빌미로 머물러 있는 소극 적인 삶이 주는 만족이란 짧고, 덧없는 것이다. 백척간두 일보정진이란 말은 오히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위해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심지어 위험한 지경도 두려워 하지 않아야 비로소 우리가 우리의 온전한 삶을 찾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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