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그 키 큰 멀대 같은 남자에게 받은 도시락이다.
뭔가 꺼림칙했지만,
점심에 먹을 걸 챙겨오지 않았으니 받아 먹었다.
정말 뭐길래 내가 좋아하는 반찬까지 아는 거지?
이상하지만… 배가 고프니까 먹었다.
함께 교실로 들어가는데
그 사람이 들어가기엔 옆 교실로 가는 걸 보니
뭐, 다른 반인가 보다.
묘하게 반이동 하면서 마주치긴 했지만,
시선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오늘도 그냥 흘러갔지만
난 평범하지 않았다.
내일 보자고 하는데
나도 내일 보는 건가?
종례시간이 되고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 나간다.
앞으로는 가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가 붙잡는 듯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제서야 골이 났는지 뾰루퉁해지며
잡고 있는 걸 올려다봤는데
아까 그 자식이다.
"......!!!"
"정신 좀 차리지, 뭐 이리..."
계속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 천천히 걷는 그녀의 뒤를 따라오다가
약간 넋이 나간 사람처럼 걷길래 잡아봤는데,
모르는 척 걸었다니.
"...으이씨! 내가 뭐! ....아"
이런 게 어디선가 있긴 했었다.
느낌이 낯설지가 않다.
근데 순간 돌아온 현실에는
그 앞에 있는 사람은, 모르는 남이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곤
"미...미안"
빠른 속도로 걸어간다.
오만가지 생각이 난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러는 내 자신이 이상하다.
그런데 그 느낌은 익숙한데? 뭐지...
혼자 이래저래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그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고는
그가 받자, 또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눈길이 느껴지는데
눈을 보면 안 될 것 같고
익숙하고 그리운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조금씩 뛴다.
도시락을 받아 들고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도망치듯 돌아서는 뒷모습.
익숙한 걸음인데, 낯설다.
손에 남은 체온이 생각보다 오래 식질 않는다.
그 애는 늘 그랬다.
다가와선, 금세 도망치듯 가버린다.
아니, 예전엔… 그랬던가?
문득 어릴 때가 스친다.
작은 손으로 내 팔을 잡고,
“같이 가자!”
소리치며 앞장서던 그 모습.
지금은—이제는,
내 손에 도시락을 쥐어주고 뒷모습만 남긴다.
...기억하고 있어.
사고 전, 그 날.
온몸이 얼어붙을 만큼 찬 밤공기와
손끝까지 퍼져버린 비명.
네가 날 봤었어.
마지막으로.
울먹이며—내 이름을 부르던, 그 순간.
그게 자꾸 떠오르는데,
너는 이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
그래서 내가 감정을 묻은 거다.
말하면 무너질 것 같아서.
눈을 맞추면 울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조용히 네가 좋아하는 반찬을
하나씩 기억하고
그 도시락에 담아서
책상 위에 올려뒀을 뿐인데.
너는 또 내 앞에서
그 도시락을 건넸다.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아주 조금은 떨리는 손으로.
...잊었는데.
왜 내 눈을 그렇게 피하는 거야.
왜,
그때처럼 가버리는 거야.
내일은.
내일은
그 도시락을 그냥 들고 가지만은 말아줘.
부탁이야, 연이야.
내가—이름을 부를 수 없는 너에게.
거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학교가 안 보일 때쯤
걸음이 천천히 느려진다.
차박, 차박, 차박.
내 발걸음이 멈췄을 때
뒤에는 조용했다.
…따라오지 않는 건가?
왠지 모를 아쉬움에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후두둑, 후두둑.
어디선가 맺힌 감정들이 떨어지듯
뺨 위로 고요히 쏟아진다.

연이 ->해진이-> 연이 시점으로
등장하는 시선교차신입니다.
처음 인물의 이름이 나왔죠?
다음화에서 아마 재미있어질거에요.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