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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Aug 02. 2023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졌다는 것

대단할 건 하나도 없습니다만

꽤 오랜 시간, 취미에 대해 말할 때가 있으면 '사진을 찍는다'고 해왔다. 스스로를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정체화하는 부분도 있다. 어딜 갈 때면 카메라를 챙기고, 나름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다녀온 뒤에는 함께 했던 사람들과 사진을 나눈다. 돌아온 날에는 늘 그 자리에서 보정을 한다는 나름의 루틴도 있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대단한 사진 작가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그건 으레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사진이라는 취미가 없기 때문에 잘 몰라서 그렇게 느끼는 걸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이 됐건, 나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사진이 취미에요'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란 걸. 



장비가 부족해요- 정도는 먼저 떠오르지도 않는 수준이다. 애초에 지금 있는 장비도 활용을 못하는 만큼 좋은 장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내가 찍는 사진은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기초'도 빠져있는 사진들이다. 사진은 거의 대부분 오토로 찍고, 초점도 자동으로 맡긴다. 그러다보니 초점이 나간 사진이 나오기도 일쑤다. 수평이 맞지 않는 사진도 꽤나 나오고, 나중에 돌아보면 이건 뭘 찍은거지 싶은 것들 투성이다. 원본 사진만 놓고 보자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유나 '사진이 취미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일 거다. 정말 진지하게 사진을 다루는 분들에겐 분노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10대 시절부터 10년 넘게 사진을 찍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화소를 논하는 것 조차 무의미한 휴대폰들로 사진을 수천 장 넘게 찍었다. 그 때 대부분은 하늘이었다. 맑은 하늘을 좋아했던 당시의 나는 맑은 하늘만 보면 계속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까불고 다니다 보니 집에서 굴러다니던 작은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를 받을 수 있었고, 그걸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생 시절엔 학교에도 매일 들고가서 친구들이나 교정의 풍경을 담곤 했다. 10대 시절에만 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대학생 때는 돈을 모아 DSLR을 샀다. 캐논 EOS 100D라는 제품이었다. 아마 당시에 나왔던 제품들 중 가장 저렴한 모델이었을 거다. 그나마도 조금 썼던 중고를 사서 몇 만원 싸게 구매했더랬다. 유럽여행을 가서 열심히 찍었고, 그 이후에도 매번 들고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저렴이 렌즈를 2번 정도 구매했고, 그 과정에서 단렌즈와 줌렌즈의 차이를 배우기도 했다. 그래봐야 망원렌즈도 아니고 표준렌즈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벅차는 시간이었다. 


그 카메라는 몇 년 뒤 숨을 거뒀고, 취업을 한 뒤일 때라서 조금 더 비싼, 소니의 미러리스를 샀다. 아직도 이 친구를 들고 다닌다. 과거 때처럼 어느 시절에나 카메라를 매고 다니며 렌즈를 들이밀던 열정은 줄어들었지만, 오토모드에 놓고 연사를 찍어대며 그 중 하나라도 건지면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다니는 것만큼은 여전하다. 10년 째 카메라를 들고 다녔지만 여전히 내게 직접 카메라 촬영 세팅을 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나름의 핑계는 있다. 나는 전문적으로 출사를 나가지 않고 일상에서 찍다 보니 일일이 세팅을 할 여유가 없었다는 점, 몇 번 시도를 해 보았지만 오토모드가 더 잘 찍히더라는 점 등이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늘 사람들에게 말할 땐 부끄러워진다. "전 세팅도 잘 할 줄 몰라요..."라고 말하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니까. 조리개를 열고, ISO를 조정하고, 셔터 스피드를 바꾸는 것이 가져오는 개념은 알지만 그걸 현실에 적용하기엔 아직 나는 여러모로 모자른 인간이다. 실력이든, 열정이든, 노력이든.



수백장을 찍고 돌아온 날 사진을 고르며 스스로가 갑갑해질 때가 있다. 고작 이 정도 사진밖에 찍지 못할 거라면,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왜 사진찍기라는 취미가 있다고 말하고, 또 생각하는 걸까? 취미라고 하기엔 아직 발걸음도 떼지 못한 수준이라면 접는 게 낫지 않나? 내가 '사진을 찍는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저 '사진 찍는 나'라는 것에 취한 걸까? 이 모든 건 일종의 허세인걸까? 예전처럼 카메라를 열심히 들고 다니지도 않는데, 그럼 그냥 그렇게 천천히 접어도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안다. 내게 사진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하늘이 좋아 수천 장의 하늘 사진을 찍었던 중학생, 자기가 마주하는 모든 모습을 기록하던 고등학생, 혼자서 '이것도 출사'라며 돌아다니면서 제멋대로 셔터를 누르다가 돌아왔던 대학생 시절, 그 모든 시절에 내게 사진은 '잘 찍기 위함'이 아니었다. 좋은 사진이나 멋드러진 사진을 찍으면 좋겠고 나름 사진 중 잘 나온 걸 볼때마다 한없이 뿌듯하지만, 내게 사진이란 그 결과물보단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 나는 멈춘다. 어딘가에 시선을 보내고, 그거를 카메라라는 기기에 담아낸다. 그 짧은 몇 초의 시간을 위해 나는 늘 주변을 헤맨다. 길을 걷다가 하늘을 보고, 하늘이 예쁜 날에는 그 모습을 찾아 공원으로 달려 간다. 길거리를 걷다 괜스레 바닥의 문양을 보고, 특이한 간판을 보고,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보고,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붉게 져가는 노을을 보고, 나무를 보고, 도보 블럭 사이에 핀 꽃을 보고, 거울처럼 세상을 비추는 물 웅덩이를 보고, 환하게 웃는 친구를 보고, 달라진 동네 풍경을 본다. 


내게 사진 찍기는 '세상을 관찰하는 일'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다른 풍경이 있었음을 발견하는 일이고, 무심결에 지나는 길에서 재미있는 모습을 찾는 일이다. 렌즈를 통해 바라 보는 세상엔 평소엔 보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하다. 여행을 가면 그 재미는 배가 된다. 이 나라의 신호등이 어떻게 다른지, 마트엔 무슨 물건이 진열되어 있는지, 지하철과 가로등은 어떻게 생겼는지, 바닥엔 어떤 재미난 무늬가 있는지 찾느라 매 순간 멈춰 선다. 그냥 걸어갔으면 평범했을 모습도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여서 렌즈를 들이대며 각을 만들어 보면 재미있는 틈이 발생한다. 



사진을 찍기에, 나는 보지 못했을 모습을 본다. 그냥 지나갔을 공간도 사람을 세우면 특별해진다. 처음엔 '뭣하러 사진을 찍어'라며 손사래를 치던 이들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보여주면 어느새 그들도 사진 찍히는 재미에 발을 들인다. 그 이후엔 이 곳에서 이렇게, 저 곳에서 저렇게 사진을 신나게 찍을 수 있다. 다양한 포즈와 표정의 사람을 담아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나름대로 열심히 보정해서 전달했을 때 상대의 기뻐하는 반응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보잘것 없는 사진임에도 누군가를 기쁘게할 수 있고, 누군가의 '프로필 사진'이 될 수 있다니, 선물을 받은 느낌이랄까.




사진을 찍는 취미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한참 뒤에 찾아온다. 어느 날 무슨 일에선지 과거 사진을 뒤지는 날이 오면, 나는 행복해진다. 그 날 찍은 사진이 못 나온 건 아쉬운 일이지만, 몇 년이 지나 들여다 본 사진은 잘 찍혔는지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그 사진을 통해 마주하는 당시 나의 시선이 반갑다. 그 때 나는 이것을 보았고, 좋아했고, 기록했더랬다. 그 때의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더랬다. 그 때 나는, 너는, 우리 사회는... 그 기록은 언제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잘 찍은 걸 보면 과거의 나를 보며 대단한데라고 생각하며 괜히 우쭐대기도 하고, 못 찍은 걸 보면 뭘 이런 사진을 찍었냐고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함께 했던 사람에게 사진을 보내주며 그 시절을 함께 나눌 수도 있다.



내게 사진은, 그런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나는 별 거 아닌 장비를 들고 다니며 어디에나 렌즈를 들이대댄다.

사실은 오토 모드에 자동 초점을 맞춰 놓고 버튼만 누르는 수준이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 건 내가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게 해주니까.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에 나는 이 세상 구석구석을 꼼꼼히 뒤져보는 관찰자가 되고, 기록자가 된다.


그 기록이 좋든 나쁘든 상관 없다. 좋으면 더 좋겠지만, 나빠도 괜찮다. 

이건 나를 위한 기록이고, 함께하는 이들을 위한 기록이니까. 

그 기록을 보고 나는 다시 오늘을 살 힘을 얻어내니까. 

'재난이 나면 외장하드부터 챙겨야지'라고 생각하는 이유 역시, 내 삶이 그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 천, 수 만 장의 사진 속에 내가 바라본 세상이 겹겹이 새겨져 있으니까.

그냥 지나치면 모르고 관심두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던 세계가 그곳엔 있으니까.

그 모습에 희망을 품고 기뻐했던 내가 있으니까.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다고 하기엔 우스운 나도 여전히 사진을 찍는다.

내게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물론, 사진 연습은 앞으로도 더 할 생각이다. 

더 잘 찍을 수 있게 되면,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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