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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ul 18. 2024

퍼펙트 데이즈

나를 정의하는 하루

© 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

나를 정의하는 하루


도쿄 시부야구의 여러 공중화장실들을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새롭게 리뉴얼하는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 이를 기념하기 위해 프로젝트는 빔 벤더스에게 단편 영화 제작을 의뢰한다. 일종의 홍보 영화를 일반적인 홍보 영화 같지 않은 수준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 달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빔 벤더스는 이 제안을 받고 단순히 이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장편 영화를 역제안하게 되었고 바로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가 그 작품이다. 아주 가끔 이렇게 공공의 홍보를 위한 프로젝트성 영화가 그 의미를 넘어서 온전한 한 편의 영화로서 관객들과 만나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아마도 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꼽으라면 이제 '퍼펙트 데이즈'를 어렵지 않게 꼽을 수 있겠다. 특별히 이런 제작 뒷이야기를 말하지 않아도 빔 벤더스의 이번 영화는 다시 한번 거장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지혜로운 작품이다.


© 티캐스트


영화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일을 하고 있는 히라야마 (야쿠쇼 코지)의 일상을 담담히 따라간다. 총 며칠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대부분의 비중은 첫 하루에 할애한다. 그 하루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히라야마의 일상은 그 하루를 바탕으로 대부분 반복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시간 집 앞 골목에서 청소하는 할머니의 빗자루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 출근하기 전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사서 자신의 자동차로 출근을 하고, 화장실을 청소 일을 하다 중간 점심시간에는 공원에 들러 가볍게 점심을 먹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사진으로 남긴다. 퇴근 후엔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 들러 목욕을 마치고 자주 가는 술집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끼는 화초들을 관리하고 책을 읽다 잠이 든다. 


© 티캐스트


이런 일상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작은 변화들이 생기는데(이를 테면 동료 청소부 다카시로 인한 에피소드나, 조카가 예고 없이 집으로 찾아오는 등),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평화로운 일상이 외부로 인한 충격으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이나 긴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작은 외부의 일탈 같은 일들마저 히라야마의 넓은 일상의 품으로 포용하는 구조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그린 이야기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평범한 하루가 소중하다는 걸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매일 똑같아도 괜찮아'라는 쉬운 결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똑같아 보이는 것들이 어떻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는지 되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히라야마가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나무를 촬영하는 것 같지만, 사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잎의 모양 그리고 그 나무를 비추는 빛이 어떤 찰나도 같을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빛이 반짝이는 걸 일본에서는 '고모레비 KOMOREBI'라고 부르는데, 이 영화의 엔딩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고모레비와 관련된 짧은 소개 쿠키도 만나볼 수 있다).


© 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가장 많이 생각해 보게 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무엇들로 '나'를 정의할 수 있을까. 사회에선 어떤 직책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커리어로 남은 한 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동료나 친구가 누구인가 역시 나를 정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 속 히라야마처럼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책을 보고, 어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어떤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지가 결국 나를 정의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이미 그런 요소들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음에도 종종 그런 것들의 무색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책을 읽는 가는 분명 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가끔은 이런 것들이 정말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지, 또 이런 것들이 아니라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나를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매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반복된 일상의 지탱하는 힘과 똑같을 수 없는 찰나의 연속이라는 삶의 모순은 어렴풋하지만 힘 있는 위로가 됐다. 나는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지 히라야마의 일상을 통해 되돌아보고 재발견할 수 있었던, 일상의 청소 같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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