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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Jul 18. 2024

사자와 코끼리

어떤 종으로 거듭나려나?


한 시기가 끝나고 다음 시기가 온다. 한 묶음으로, 한 아름으로, 뭉텅이로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계획해 펼쳐내려던 것들, 내 달력의 일정들이 있었는데... 누군가 살며시 노크한다. 슬쩍 편지를 끼워넣는다. 전화벨이 울린다. 그들은 요청하고 나는 승낙한다. 그들은 말한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과 감정과 생각을 내어준다. 그 힘의 자장에 들어서면 그날의 내가 펼쳐진다. 힘의 교차에 가빠지고, 생기돋고, 호방해지고, 움츠러들고, 허탈해지고, 씁쓸해진다. 그리고 아기처럼 팔딱이며 세포막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신체를 느낀다. 이곳과 이들과 이것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사건의 발생 속에서 이전의 감각은 또 흩어지고 희미해진다. 그렇게 나는 기대하고 준비하고 행동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변화한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한 단위가 마무리되었다고 느낀다.


어떻게 변화하는가? 사자가 된다, 코끼리가 된다. 근래 읽고 있는 김범 작가의 언어로 말하자면 말이다. 사자를 보고 사자를 만나기에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사자가 되었다.


너는 사자를 보았기 때문에 사자가 되었고

그는 코끼리를 보았기 때문에 코끼리가 되었다

네가 사자를 본 적이 없었던들,

사자가 어떻다는 것을 들은 적인 없었던들

네가 어찌 사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순수한 피만이 흐르던 네 안의 우윳빛 살 속

그 안에서 네가 본 사자가 너를 뜯어먹고 자라 강해지고

네 몸을 빌어 사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너는 뜨거운 수풀 속을 헤매거나

흙바닥에 드러누워 가뿐 숨을 몰아쉬고

커다란 갈기를 흔들어 파리를 쫓다가는 큰발로 땅을 차고 달리는 것이다.

김범 <사자>, 2002


이곳은 사자들의 세계, 저곳은 코끼리들의 세계, 저기는 토끼들, 개미들, 베짱이들, 고양이들, 공작들, 독수리들과 공룡들의 세계. 나는 주로 사자들을 만나고, 독수리를 사랑하고 또 개와 어울리네? 몸은 사자, 날개는 독수리, 꼬리는 개인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려나, 그런 생명은 어떤 얼굴을 가졌으려나?




표지: 김범 <말 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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