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웨스트. (2018). 이한음 역. 스케일. 김영사. 10장: 지속 가능성의 대통일 이론.
연구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단순히 개인의 호기심을 해결하는 것을 연구라 할 수는 없다. 연구의 목적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함이다. 연구를 통해 창출된 지식은 다른 연구의 재료가 되거나 실무에서 활용되어야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각자 나름의 소명의식을 갖고 박사과정을 진행해오고 있겠지만, 나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러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논문을 출판하고 졸업 요건을 위한 실적을 채우고, 박사 학위를 받는 것. 그것이 전부인 걸까?
스케일링의 법칙에 따르면, 연구를 통해 밝힌 내 생각의 씨앗을 싹틔우고 세상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네트워킹을 통해 초선형 스케일링을 이뤄내야 한다. 즉, 소속된 커뮤니티가 크면 클수록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개인 수준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크기를 확대 (scale-up) 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에게는 학회나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실무에 지식을 퍼트리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유명해진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비슷한 관점을 지닌 사람들을 찾기 위한 채널로 나는 페이스북이나 브런치와 같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접점들이 생겼고, 이를 통해 연구 과제의 기회나 스피치를 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소속된 커뮤니티는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인가? 규모의 경제에 의해 생산성과 효율이 높아지는 걸까? 스케일링의 법칙을 맹신하면 커뮤니티는 오히려 본래의 목적을 잃고, 주류에 편승하려는 말단의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 아닐까? 생각의 씨앗을 퍼트리기에 적당한 크기가 있는 건 아닐까?
경제학자 E.F.슈마허는 역시 그의 저서 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식물, 동물, 작업 도구, 조직, 심지어는 나라까지 크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그 성질을 완전히 잃거나 망가지게 되는 크기까지 성장할 수 있다”, “큰 조직들은 아주 불량하고 부도덕하게, 또는 아주 어리석고 비인간적으로 움직이기 마련인데 이는 그 조직 내의 사람들이 본래 그래서가 아니라, 단지 그 조직이 크다는 데서 오는 하중 때문이다.”
초선형 스케일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말단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의 목적은 세상을 탐구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이 소모된다면? 개인의 작고 작은 노력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혁신을 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