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은지 Jun 05. 2021

박사과정,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기

<무라카미 하루키. (2015). 양윤옥 역.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현대문학. 제4회, 제6회>


현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그 작품들에 아낌없이 시간을 들였고,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을 써내려고 노력했다는 정도입니다. 나의 어떤 작품도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라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잘 못 쓴 것이 있다면 그 작품을 쓴 시점에는 내가 아직 작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 단지 그것 뿐입니다. 유감스럽기는 해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부족한 역량은 나중에 노력해서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잃은 기회를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박사과정이다. 이 과정의 끝에서 내가 얻게 될 것은 ‘박사학위’라는 타이틀. 그 때의 내가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었을텐데’ 하며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는 지금의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어떻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제6회에서 온천물과 가정용 목욕물의 차이를 예로 들며, 같은 온도이더라도 실제로 맨살에 느껴지는 그 차이에 대해 ‘실감’이라고 표현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감각을 나도 분명히 느낀 적이 있다. 요즘 나는 학위 연구의 일환으로 지역 비즈니스 사장님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대전의 한 사진관에 인터뷰를 하러 갔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사진관을 알고 있었다. 보정을 아주 예쁘게 해주거나, 요즘 유행하는 느낌의 사진을 찍어주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이 곳의 사진들은 자연스러움과 따뜻함 그 자체였다. 누구나 쉽고 흔하게 찍을 수 있는 사진 같으면서도, 다른 사진관의 사진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나는 사장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느낀 ‘실감’을 확신할 수 있었다. 


‘No Love, No Life’라는 비전과 함께 오랜 시간 사람들 곁에 머무는 동네 사진관이 되고 싶다는 이 곳은, 사진을 잘 나오게 하기 위해 억지로 고객들과 친해지려 한다거나 일부러 재밌게 대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가만히 기다린다. 그러면 평소 땡깡을 부리며 울던 아이들도, 카메라 앞이면 얼어버리는 어르신들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사장님은 일상에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영화를 보며, 시를 읽으며, 음악을 들으며,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끊임없이 배운다고 했다. 업에 대한 사장님의 마음가짐이나 진실한 태도는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여왔고,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사진을 접했을 뿐인데도 ‘실감’할 수 있었다. 눈으로 명확하게 보이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그렇기에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통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본인이 업을 해나아가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자부심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루키는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수십년 동안 자신만의 소설을 쓰는 절차를 지켜냈다는 사실을 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스스로를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이 멋있다. 나 역시 스스로 ‘실감’하고 ‘실감’을 줄 수 있는 박사가 되고 싶다. 그저 결과에 대해서만 자부심을 느끼기보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내 연구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다. 내 연구 주제가 가치있다는 믿음,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두번째는 과정의 성실함이다. 정성스럽고 참되게, 자신에게 떳떳하게 그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필요하다.


언젠가 디펜스가 끝나고 정말 아쉬움 없이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 연구를 완성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 날을 상상하며,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고 신중하게, 내 피부로 느껴지는 실제적인 감각을 믿으며 이 길을 걸어나가려고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