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 Feb 08. 2023

기업 내 지식인의 길


숟가락만으로 다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이 있다.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같이 써야 하는 백반식이 있다. 백반식은 흰 밥과 여러 가지 반찬으로 구성된다. 비빔밥 식사는 단순하지만 백반식에서는 반찬을 따라 젓가락이 움직이는 빈도가 더 많아지고 이동 경로도 길어질 것이다. 젓가락 이동이 많아지는 이유는 음식이 여러 개의 반찬으로 세분화되어 식탁 위의 복잡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지식 근로 집단에도 있다. 식사에서는 젓가락질이 많아진다고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조직 활동에서 복잡도는 그렇지 않다.

지식 근로 집단이 성장하기 위해서 전문화가 필요하다. 전문화란 지식 범주를 더 협소하게 나누어 한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할 때 확보되는 경쟁력이다. 그러나 전문 지식 범주를 세분화하여 조직을 작은 단위로 나눌수록 정보 공유와 통합이 희소해진다. 이때 지식 근로자들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일을 하게 된다. 전문 분야에서의 지식 생산 활동과 분야 외부 전문가들과의 지식 교환 활동이다. 전문 분야에서는 개인 몰입 형태로 일을 하고, 분야 외 사람들과는 회의나 전화, 메일 등 정보 교환 형태로 일을 하게 된다. 집단이 전문화되어 여러 개의 전문 조직으로 세분화되고 분업화될수록 마치 식탁 위 반찬 수에 따라 젓가락 질이 많아지듯 정보 교환비용(social transaction cost)이 증가하게 된다. 그렇다고 전문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지식 근로 집단은 외부 경쟁자와 지식과 정보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지식 근로자들의 전문성이 상승하는 동안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느 시점부터 전문 분야 몰입량보다 지식 정보 교환비용이 커지면서 전문화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전문화는 세부 분업화로 이어지고 세부 분업의 결과로 정보의 교환과 통합을 위한 비용이 증가하므로 이 추가 비용을 줄이기 위한 효율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지식 근로 집단은 전문화 이후 불가피하게 효율화로 다시 경쟁하게 된다. 문제는 효율화 역시 쉽게 한계에 봉착한다는 점이다. 효율화는 투입 대 생산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생산비율을 올린다는 것은 작업 환경에서 불필요 요소를 제거하고 변수(variable)로 작용하는 것들을 통제할 때 얻어진다.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상수(constant)로 작용하는 것들이 많다. 사람이 말하는 속도, 이동 속도, 타이핑하는 속도, 물류 이동 시간, 반드시 지켜야 할 프로세스, 주어진 물리적 공간과 제약, 사회, 지정학적 여건 등은 상수의 범주에 드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조리사 1명이 일하는 라면집에 가스레인지와 냄비가 하나씩 있을 때, 조리사 4명을 더 투입한다고 해서 라면 생산량이 5배로 증가할 수 없다. 가스 레인지와 냄비 수 같은 설비가 상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조리사 1명이 5분간 조리하는 라면 끓이기에 조리사 5명을 투입한다고 해서 라면 조리 시간은 5배 빨리 지지 않는다.  라면을 5분간 끓여야 다 익는 프로세스가 상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두 사례에서 효율성의 한계는 명료하다. 이때 상수로 간주되는 것들에 통제력을 얻기 위해서는 변수를 통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전문화 효율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는 효과성을 다시 짚어야 한다. 약사가 정량의 약을 더 빨리 조제하거나 정시에 더 많이 조제하는 것은 효율(efficiency)이다. 별개로 약효가 더 잘 듣게 하는 것은 효과(effectiveness)이다. 이 둘은 서로 대립적이어서 한 번에 확보되기 어렵다. 지식 근로 집단의 고효율에는 강한 규칙과 통제가 따른다. 그러나 고 효과는 통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러 번의 시도와 머뭇거림, 시장이 아닌 내부에서의 작은 실패들을 통해 효과가 발생한다.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실패 요인을 제거하고 실패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게 되므로 성공을 향해 가는 길에 실패는 필수불가결하다. 이때 성공은 실패를 통해 배운 것에 대한 보답이다.


두 번째, 변화의 속도다. Agility는 달리는 속도가 아니다. 빨리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민첩함이다. 가속화와 고도화, 세계화와 탈세계화, 동시화와 비동시화가 혼재하는 지금,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지도록 도울만한 그런 통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환경에서 어제의 변수 조건은 오늘 상수화되고, 오늘의 상수 조건은 내일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활용해 온 작업 시스템과 조직 시스템, 그리고 예측 시스템이나 이론들은 금세 진부해지고 현실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사실을 분별하는 능력과 전환 역량이 성패를 가르는 시대가 왔다. 전문화, 분업화된 지식 근로자들이 각기 유효한 방향을 찾아내고 변화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 내 권한이 분산되어야 한다. 미국 벤처 정신의 상징인 레이 크록의 지적처럼 이제 권한은 가능한 한 가장 낮은 곳까지 이동해야 한다.


세 번째, 조직 구성원들이 혁신의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 비즈니스에서 혁신은 비소비자를 소비자로 전환하는 활동이다. 혁신에 성공하면 신규 시장이 열리게 된다.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기업 혁신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술 혁신, 조직 혁신, 시장 혁신이다. 이 각각의 영역에서 혁신촉진자(catalyst)들이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프로세스와 효율, 로드맵, 책임과 역할론, 일정 등으로 감독되지 않아야 한다. 유럽 3대 경영대학원인 스페인 이에게 경영대학원 교수인 패디 밀러(Paddy Miller)의 조언처럼 혁신 효과가 발화하여 일파만파 확산되기 전까지 이들은 단지 한 사람의 임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조금 더 자유로운 권한을 얻어 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들이 촉발하거나 이끌어 내는 한 번의 홈런 같은 혁신과 여러 번의 안타 같은 혁신 둘 다 중요하다.

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앤드럴 피어슨(Andrall E. Pearson)에 따르면, 초기의 아이디어 생성기를 제외하면 기대와 달리 혁신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놀이하듯 만들어지기보다는 엄청난 실행 노력과 지구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네 번째,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그들의 본능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특별한 후각을 지녔다. 그들은 어디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지를 찾아낸다. 1인 미디어에 눈을 뜬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1 조회수에 약 1 원을 주고 광고비를 조금 더 주는 유튜브 수익구조 안에서 정규 수익을 얻는다. 그들에게는 유튜브 1인 방송으로 중견기업 사장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법에 대한 이론이 없다. 그러나 디지털 콘텐츠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사냥법을 익혔다. 그리고 종편 TV와 함께 지상파 공룡들과 경쟁하고 있다. 유능하고 우수한 방송 전문가들로 구성된 KBS는 2019년 이후 5년간 매년 천 억대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며 비상경영계획을 발표했다. MBC는 2019년 상반기 광고 매출이 목표의 40%에도 미치지 못한 것을 공개하며 역시 비상경영을 선포한 상태다. 같은 선상에서 앞으로 많은 산업 영역에서 경력자와 고 숙련공 들은 가치를 잃어갈 것이다. 산업혁명기 방적기의 등장으로 고숙련 수제 면방적공들은 명예와 직업을 함께 잃었다. 그 대신 방적기계 앞에 서서 꼬인 실타래를 풀고 기름을 바르는 유지보수공이 되어 어린이 보수공들과 인건비 대 효용성으로 경쟁해야 했다. 아직 기성세대 IT리더들은 유튜브에 동영상 올리는 법을 모른다. 민첩해져야 하는 이유다.


끝으로, 미래 비전과 가치를 늘 재장전해야 한다. 고도화 시대란 다시 새로운 시대로 시프트를 의미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표현과 같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 기업에 고용된 지식 근로자들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이 격정적인 속도로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거칠지만 도전해 볼만한 미래를 향해 그들의 가슴을 열어야 한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나무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나눠주는 등의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어라." - 생텍쥐페리

작가의 이전글 발전했으면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